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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 한국외교의 향방은? ②
[[제1589호]  2018년 4월  7일]


흔히 사람들은 우리 외교에는 크게 세 가지의 선택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첫째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진영에 남아있는 것. 두 번째는 지정학적인 운명으로 생각하고 중국 영향권으로 이동하는 것. 세 번째는 영세중립을 택하는 일이다.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북한이 2~3년 안에 붕괴된다고 장담하던 대통령이 있었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이것은 핵무기의 완성이나 ICBM의 발사시험 이전 시절의 얘기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지금은 핵의 위협이 성공적인 ICBM의 발사로 미국의 수도까지 도달할 것으로 기대되는 시대이다. 이러한 변화된 환경 하에 우리 외교가 어떠해야 할 것인가의 기로에 서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우리의 외교가 단순히 미국 편이냐 중국 편이냐 또는 중립이냐의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는다. 지금은 6.25 이후 줄곧 우리 외교의 근간이었다라고 할 수 있는 미국 주도의 냉전적 외교정책에 쉽게 편승함으로써 우리의 외교적 임무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 결정적 징후가 이른바 코피작전(the Bloody Nose)의 집행 여부이다. 그렇다고 중국의 패권주의에 편입할 수는 더욱 없는 일이며, 영세중립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여기에 이른바 중강국가로서의 진가를 발휘할 기회가 도사리고 있지 않은가 생각해 본다. 그것은 바로 적어도 한반도 외교 국방정책에 관한 한 우리의 국익을 위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큰 틀 안에서의 미국의 대북정책 안에서도 그 시기, 방법, 속도 등에 있어서 가능한 한 우리의 안보와 그것을 위한 외교에 목소리를 내는 일이다. 우리나라가 가장 실질적으로 배워야 할 좋은 예가 이스라엘의 외교국방정책이 아닌가 생각한다. 매년 수십억 불의 경제적 군사적 원조를 받으면서도 역대 미 대통령들이 늘 이스라엘의 목소리를 심각하게 듣지 않을 수 없게 만든 외교 인프라 말이다. 그들의 목소리가 그 몸집에 비해서 훨씬 컸던 것은 단순히 그들이 동원할 수 있는 미국 내의 로비의 영향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역대 이스라엘 정부 수반을 비롯한 전 국방외교체계의 목소리가 미국 국민의 동감과 지지를 얻어내는데 충분했기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 어떤 고위층 인사의 우리가 동북아에서 미국과 중국 사이의 균형을 도모하려 한다는 발언은 그 시기로 보나 표현에 있어서도 매우 부적절한 것으로서 상대방 측으로부터 빈축을 산 적이 있었으나 적어도 대북정책에 관한 한 우리 영토와 주민에게 운명적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는 현안에 대해 우리의 목소리를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효율적으로 내야 한다는 뜻이다. 무엇에 대해서 어떻게 언제 얼마만큼 우리 목소리를 낼 것인가는 그때그때의 현안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겠으나 지난 70년간처럼 조용한 외교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하겠다. 그 중간에 있을 수 있는 수많은 접촉과 대화, 연구 자료와 메모 랜덤, 그리고 비공식적 채널을 통한 의사전달(학술연구와 발표, 세미나, 콘퍼런스, 워크숍 등)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많은 경우에 정상 간의 접촉을 통한 신뢰와 우정이 많은 대외정책의 공조와 성공을 가져왔음을 우리는 역사에서 배운다. 가장 출중한 예가 제2차 세계대전 때 전쟁 참여를 몹시 주저하던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을 설득하기 위해서 취한 영국의 처칠 수상의 장기적이고 집요한 대인적 접촉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접근과 접촉은 갑자기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외교의 최전선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인데 과연 우리는 그러한 유능한 외교 전사들을 충분히 배출하고 있는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겠다. 상대국의 언어는 물론이요 문화와 예술, 역사와 현안에 대해서 가장 절제되고 세련된 표현을 통한 담소와 협상능력이 우리 외교관의 필수자격 요건이라면 우리 외교관들은 과연 몇 명이나 이 기준을 통과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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