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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미국에서도 통한 수석 합격
[[제1594호]  2018년 5월  12일]

1957년 실질적인 소년가장이 된 나와 여동생 둘이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당장 먹고 살아갈 것이 문제였다. 나는 가정교사를 시작했다. 우리 3남매가 살고 있는 집에는 친구들과 선후배들의 출입이 잦았다. 부모가 계시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우정을 통해 위안을 삼았다. 돈 벌랴, 공부하랴, 여동생들 돌보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정도였다. 대학교 시절 중 가장 힘든 생활이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새로 창설된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 진학했다. 유수한 교수진과 장학금을 받게 된다는 것이 매력으로 작용했다. 이공계 출신으로서는 유일한 응시생이었는데 결과는 또 수석 합격이었다. 이공계 출신에게는 상당히 불리한 시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석 합격을 한 것이다. 행정대학원에는 외국 교수들과 해외유학을 마친 쟁쟁한 교수들이 포진해 있었다. 이곳에서 마음껏 학문을 포식할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런데 어느 일간지의 사회면에 나에 대한 기사가 큼지막하게 실리게 되었다.

과학 신동, 기술자에 대한 천시 항의 행정대학원에 수석 입학

사실 당시만 하더라도 기술자에 대해서는 대우가 별로 좋지 않았다. 경무대의 이승만 대통령이 이 기사를 읽고 공보비서 최치환 씨를 통해 미국 유학을 제의해 왔다. 최치환 씨는 미시간주립대학교에 편지를 써서 나의 사정을 충분히 설명하고 유학을 받아줄 것을 요청했다.

나는 이런 사실도 모르고 학교생활에 몰입했다. 가장 어리다는 이유로 과대표를 맡고 있었다. 나는 통계학 분야에 뛰어난 자질을 보였다.

행정대학원에서 1년간 공부한 다음 미시간주립대학교로부터 유학 제의가 들어왔다. 존 한나 총장이 실력 있는 한국 학생 한 사람을 특별 장학생으로 추천해 달라는 편지를 보내온 것이다. 나의 성적표는 곧 미국으로 보내졌고, 한나 총장은 유학 승인서를 보내왔다.

1960324일 조국을 떠나 미지의 대륙 아메리카에 도착했다. 미시간주립대학교는 정책적으로 많은 수의 우수한 학생들이 장학생으로 모여 있는 곳이었다. 솔직히 두려웠다. ‘과연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것인가. 더구나 나는 영어도 짧은 편인데.’

미시간주립대학교에는 학위 과정에 곧바로 입학이 허락되는 것이 아니었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학생들이 함께 자격시험을 봐야만 했다.

“A학점을 얻으면 석사과정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박사과정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A학점을 받을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은 것입니다. B학점을 받으면 석사과정부터 시작할 것입니다. C학점을 받으면 재시험을 볼 자격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D학점을 받으면 학교를 떠나야 됩니다.”

미시간주립대학교의 교수로부터 자격시험에 대한 설명을 듣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만약에 D학점이라도 받게 된다면 이 얼마나 창피스런 일인가 나 혼자만의 수치라면 그래도 참을 수 있지만 나를 믿고 추천해 준 조국에 대하여 얼마나 큰 죄를 짓는 일인가.’

첫 시험을 앞두고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엄청난 스트레스로 인하여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내가 떨어지면 이것은 국가적 망신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제 와서 무슨 공부를 어떻게 해야 된단 말인가.’


정근모 장로

한국과학기술원 석좌교수

한국전력공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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