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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 왜 국회는 저 모양 저 꼴이 되었는가? ②
[[제1597호]  2018년 6월  2일]

제헌국회와 그 후 몇몇 대 국회를 빼놓고는 국회가 국민의 순수한 대변자의 역할보다는 현대판 입신양명과 출세욕에 가득 찬 정치꾼들의 각축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해서든지 일단 국회에 진입만 하게 되면 수입은 상장회사의 중역급 이상의 세비를 받을 뿐만 아니라 7~8명의 보좌 인력을 고용할 수 있고 후원회를 조직하여 연평균 2억 원의 정치자금을 걷을 수 있게 된 구조도 한몫을 한 것으로 생각한다. 사실 현존하는 정치자금법과 정당 국고보조금제도는 직업적 정치꾼들이 국회의원직과 국고보조를 받는 정당을 통해서 생계가 가능하게 되어있다는 말이다. 원래 정당의 국고보조금은 부정한 정치자금을 차단하기 위한 대안으로서 선의에서 시작했으나 이제는 이런 국고보조금이 국민의 뜻과 상관없이 출세욕에 불타는 직업적 정치꾼과 간판만 있는 정당들이 살아남는데 한몫을 해온 셈이다. 이처럼 국민의 의사를 전달하는 일보다도 정당의 정쟁 일을 주로 하면서도 다시 당선되어 국회의원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 원인은 이러한 비민주주의적 정당의 창당을 할 수 있도록 되어있는 현 제도 때문이라 하겠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정당들은 국민들이 직접 참여해서 만들었다고 하기보다는 직업적 정치인 내지는 정당인들이 직업적으로 만들고 운영해왔다. 현 정당법은 일정한 숫자의 당원과 일정한 숫자의 지구당을 확보하여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하면 정당으로 인정한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정당은 각종 선거에 후보자를 입후보시킬 수 있고 단 한 명이라도 당선되면 원내 교섭단체의 구성요건인 20명이 되지 못한 경우에도 정당의 국고보조금을 받는다. 이러한 구조 안에서 직업정당인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다음번 선거에 누가 다시 후보자로 나올 것인가의 문제가 더 심각하다. 민주주의적 정당이라면 당원들의 의사(투표, 예비선거)로 결정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우리나라의 정당들은 일단 여당이나 야당으로서의 위상을 어느 정도 확립하고 나면 그후부터는 국민의 뜻이나 의사보다는 그들이 속한 정당 안에서 하는 역할이나 위치에 따라서 그들의 공천여부를 결정해 왔다.

그래서 이런 야심을 가진 정치지망생들은 누구보다도 눈치 빠르게 그런 공천을 좌지우지하는 세력권에 진입을 시도하게 되고 그것이 성공하면 그들은 이미 국민의 대변자라기보다는 정당의 조직원(the organization man)으로 쉽게 변질되고 만다. 그래서 오늘의 국회는 단지 대립하는 여·야간의 다툼 이외의 다른 목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비이성적인 여·야간의 도가 넘는 정쟁을 거의 앵무새처럼 비판 없이 양비론적으로 보도해온 우리 언론 때문에 대부분의 우리 국민은 진짜 왜 저들이 저런 행동을 하는지를 알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지금의 국회는 국민이 바라고 원하는 의제는 거의 두 달째 하나도 취급하지 않고 민생과는 거리가 먼 안건을 가지고 국회 밖에서 싸우고만 있어도 다음 선거공천만 받으면 다시 정치생명이 연장되고, 이러한 반복으로 전국적 지도자급에 들어가게 되어있는 기존정치 구도는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국민의 삶보다도 자기 정당의 정치적 생명이 걸린 여·야간의 패키지협상’(package deal)에 매달린다. 국회에서 국민의 생사화복을 다루는 이러한 중대한 안건들을 개별적 사안의 시급성과 중대성에 맞게 사안별로 검토하지 않고 뭉뚱그려 한꺼번에 흥정하려고 한다. 국회가 존재하는 유일한 이유는 간접민주주의 정치과정에서 주권자인 국민을 대신해 그 주권을 대행해 달라는 위임 행위를 수행하는 일 때문일진대, 국회의 모든 과정은 모름지기 정당이 아닌 오직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를 전달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야만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조창현 장로 <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펨부록)정치학 교수 · 전 중앙인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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