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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우리집 이산가족 상봉이야기
[[제1609호]  2018년 9월  8일]

1989년 여름방학에 우리 부부는 아이들과 함께 3 4일로 여름휴가를 다녀온 일이 있었다. 서울 도봉구 미아동집의 문을 열고 마루에 올라서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황급히 받고 보니 ‘중앙정보부’라고 하면서 “문정일 씨 댁이 맞느냐”고 다그친다. 그렇다고 했더니 왜 여러 날 동안 전화를 받지 않느냐고 다소 질책성의 목소리다. 전 가족이 사나흘 여행을 다녀왔다고 했더니 그간 여러 날 우리 집에 전화를 걸었던 사연을 말해 주었다.

당시 노태우 정부는 1988년 하계올림픽경기의 성공적인 개최를 계기로 해외동포들의 조국방문 프로그램을 추진하였는데 러시아 교포일행을 인솔한 분이 나의 장모님 ‘지희순[池熙順, 1906~1984)’ 씨를 찾아서 컴퓨터를 조회해 보니 사망으로 되어 있고 장남은 미국으로 이민, 차남도 미국으로 이민, 장녀를 검색해 보니 사망, 차녀를 조회해 보니 경기도 광주의 문정일과 결혼, 문정일의 본적지 면사무소로 전화했더니 서울 미아동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알려 주었다고 했다. 여러 날 동안 수도 없이 전화를 걸었으나 아무도 받지 않아 미아동 전화국으로 “이 전화가 현재 사용 중인 전화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하여 오늘도 여러 차례 전화를 걸었는데 겨우 저녁 나절에 통화가 되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하였다.

사람을 찾아달라고 의뢰한 분은 김순이(金順伊) 씨인데 나의 장모님, 지희순 권사가 자신의 이모라고 하였다 한다. 연락처를 확인하기 위하여 순서대로 가족을 수소문하는데 일주일이 지나갔고 이분이 다음날 오후에는 다시 러시아로 돌아가야 하므로 옆에서 보기에 안타까워 도와드리느라 여러 차례 전화를 걸었다고 부연설명을 하였다. 그나마 자신이 중앙정보부 직원이어서 이렇게 인적사항을 샅샅이 추적할 수가 있었다고 상황 설명을 하면서 김순이 씨의 숙소는 송파구에 있는 올림픽공원 근처의 호텔이라고 하였다. 1906년생이신 장모님은 15, 6세 때에 미국인 여선교사의 주선으로 가족이 함께 살던 러시아 시베리아 연해주(沿海州)를 떠나 서울로 유학, 배화고등여학교를 1회로 졸업을 하셨다고 들었다.  

아내와 나는 그날 저녁 황급히 서둘러 호텔로 가면서 그분에게 무엇을 가져다드릴까 하고 의논 끝에 당시 러시아에는 생필품이 부족하다는 소문을 듣고 각종 양념과 조미료, 그리고 인근 상점에 들러 라면종류 몇 박스를 사서 대형 가방에 담고 장모님이 쓰시던 일기장과 보관해 오신 옛날 연해주의 가족사진을 챙겨서 김순이 씨가 기다리는 호텔로 달려갔다. 우리가 가져간 것과 꼭 같은 사진을 그분도 가지고 온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김순이 씨는 모스크바대학 사범대학 출신으로 러시아동포 조국방문단의 인솔책임을 맡은 덕분에 한국 땅에 첫발을 내딛자마자 방문단 일행을 안내하는 중앙정보부 직원에게 사람을 찾아달라고 매달렸더니 그분이 적극 도와주어서 아슬아슬하게나마 이렇게 그리운 친척을 만나게 되었다고 하며 고마워하였다.

김순이 씨의 조카딸 ‘신 이리나(Irena Shin, 1941~ )' 씨는 세인트피터즈버그(St. Petersburg)대학의 영문과 교수로 있다고 하였다. 러시아에 있는 이리나 씨와 통화, 왕복비행기표를 보내어 그를 한국으로 초대했었다. 이리나 씨가 한국에 머무는 약 3주 동안 LA의 큰 처남 유지식(柳池植, 1929~ ) 연세대 영문과 교수도 내한, 합류하여 경주를 비롯, 한국의 명소를 함께 여행하면서 가슴 아픈 회한(悔恨)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가 있었다.

2015년 이후 3년 만에 지난 한 주간 동안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는 1 50명씩 2차에 걸쳐 각각 2 3일로 100명의 이산가족의 상봉행사가 열렸다. TV를 통해서나마 우리는 다시 한 번 남북이산가족의 애환을 가슴으로 느낄 수가 있었다. 이산가족상봉과 관련하여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통일까지는 아니더라도 우선 이산가족 간에 자유로 서신을 주고받으며 전화로나마 자주 그리운 목소리를 마음대로 들을 수 있는 그날이 하루 속히 다가오기를 학수고대해 보는 것이다.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

목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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