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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7.성탄절: 공감의 시간
[[제1623호]  2018년 12월  22일]

우리는 성탄절이 오면Merry Christmas!, Happy Holiday!, Merry Christmas and Happy New Year같은 말을 주고받으며 성탄을 축하하고, 절기를 즐긴다. 물론 성탄은 복음(유앙겔리온/Good News)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자세히 성탄의 숨은 의미를 찾아보자. 다음의 이야기를 통해 성탄절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깊은 의도를 느껴 보자. 결혼한 되는 부부가 모처럼 결혼기념일을 맞아 둘이서만 여행을 가기로 계획했다. 드디어 기다리던 당일이 왔다. 짐을 야무지게 꾸리고 가방을 들쳐 메고 집을 나서려는데 벨이 울렸다. 딩동!부모님이었다. 시골에 사시는 시부모님이 모처럼 날을 잡아 며칠 동안 묵으러 오신 것이다. 이럴 어쩌면 좋은가? 남편이 아내에게 무어라 해야겠는가? 남편이 아내에게 말은 오직 한마디돌아뿌겠제?(돌아버릴 같지?)

그랬다. 아내의 마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답답해하는 아내의 마음을 읽어주는 말은 한마디였다. 아내도 안다. 시부모님이 오셨는데 어찌 모른 체할 있으며, 아무리 오랫동안 세운 계획이라 해도 취소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는 것을. 그걸 남편이 구구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아내는 안다. 안다. 그럴 , 상황을 판단하는 머리는 남자보다 여자가 훨씬 빠르게 움직이는 법이다. 어리석고 미련한 남편은 그럴 설교 한다. 우짜겠노, 다음으로 미루자!, 니가 참아라., 부모님하고 함께 가자.온갖 대안을 제시한다. 해결책이다. 미련한 남자일수록 이럴 해결책을 제시한다. 남자는 문제가 생기면 해결책을 제시하려고 발버둥을 친다. 그레이의 유명한 화성에서 남자, 금성에서 여자 나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지혜로운 남자는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여자의 마음만 읽어준다. 아내의 마음, 상처 받아 훼손된 아내의 마음만 읽어준다. 마음만 그대로 읽어주면 결정은 아내가 내린다. 어쩌겠어요. 다음으로 미루는 수밖에…” 이런 말이 아내 입에서 저절로 나오게 된다. 남편은 그때까지 기다릴 알아야 한다.

남자들은 선천적으로 공감(共感) 못한다. 공감 줘야 사람에게 흔히설교 한다. 그런데 공감 대신 설교를 들으면 기분이 나쁘다. 이미 그걸 알기 때문이다. 당위성도 원리도 원칙도 이미 안다. 굳이 설교를 듣지 않아도 알고 있기 때문에 공감만 주면 된다. 상한 마음, 다친 마음, 아파하는 마음! 마음을 같이 아파해 주고, 읽어주기만 하면 되는데 미련한 사람은 그것을 못한다. 자꾸 가르치려 하고, 설교하려 하고, 심지어 짜증과 신경질을 내기도 한다.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 나오는 유정은 열다섯 , 친척 오빠에게 강간을 당해 울고 있을 , 그의 엄마가 그랬다. 공감해 주기는커녕, 집안 부끄럽다고 입을 닫게 했다. 같이 아파해 주기는커녕 남부끄럽다고 비밀에  부치라며 윽박질렀다. 유정은 엄마가 밉다고 했다. 죽을 때까지 용서하지 않겠다고 이를 갈았다. 공감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공감이 필요할 , 받지 못하고 내동댕이쳐졌기 때문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중심으로 살다가 사람을 놓칠 있다. 사람의 마음을 읽고 공감해 주지 못하고 일만 때가 있다. 그래서 공감 대신 설교하고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짜증을 내기도 한다.

성탄절! 낮고 작고 가난한 사람들, 볼품없는 사람들을 사랑하셔서 그들과 함께 공감해 주기 위해 우리에게 가까이 오신 예수님을 생각한다. 하늘의 높은 보좌에 앉으셔서는 도저히 인간들과 공감이 되겠기에 인간의 몸을 입고 인간들의 눈높이에 맞게 땅에 내려오신 예수님이시다. 부유한 자리, 호화로운 궁궐에 앉아서는 얘기가 되겠으니, 냄새 나고 누추하고 차가운 구유에서 나시기까지 한없이 낮아지신 예수님이시다. 바로 공감을 위해서다. 그분의 삶은 공감이요, 체휼(몸으로 실천한 긍휼)이었다. 우리와 공감해 주시려고, 공감의 삶을 사시려고 인간의 육신을 입고 오셨다. 우린 그날을 성탄절이라고 부른다. 이제 조용히 눈을 감고 묵상해 본다. 내가 동안 공감해 주지 못한 사람은 누구인가? 지금 내가 공감해 주어야 사람! 그에게 다가가서 마음을 읽어주어야 사람이 누구인가? 곰곰이 생각해 보는 조용한 크리스마스가 되기를 기대한다.

김형태 박사

<한국교육자선교회 이사장

더드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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