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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3.소유냐 존재냐?
[[제1630호]  2019년 2월  16일]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 불교에서는 인간의 5욕을 재물욕, 색욕, 명예욕, 식욕, 수면욕으로 규정한다. 성경은 욕심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에 이른다고 한다.(약 1:15)

에리히 프롬의 저서 「소유냐 존재냐」(To have or to be)에서는 현대 산업사회의 근본 문제를 소유에 집착하는 삶의 태도에서 찾는다. 하버드대 전 총장이자 경제학자인 로렌스 서머스는 “렌터카를 세차하는 사람은 없다”란 말로 내 것과 남의 것에 대한 차이 즉 ‘소유’의 의미를 설명했다.

중국 우화 한 토막을 들어보자. 어떤 사람이 너무 가난하여 향촉(香燭)을 바치진 못했지만 평생 동안 신선을 지극정성으로 받들었다. 그의 봉사에 보답할 마음으로 신선이 그를 찾아가 보니 너무 가난하게 살아 측은하게 여겼다. 그래서 손가락을 뻗어 뜰에 놓인 낡은 맷돌을 가리키며 주문을 외웠더니 그 맷돌이 황금으로 변했다. 신선이 그 가난한 사람에게 물었다. “이 황금 덩어리를 너에게 주겠다. 가지겠느냐?” 하지만 그는 사양했다. 신선은 그가 마음씨도 맑고 탐욕도 없구나 싶어 기쁜 마음으로 말했다. “네가 재물도 좋아하지 않으니 그러면 참된 도(道)를 전해주겠다.” 그때 그가 한참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아닙니다. 저는 다만 신선님의 그 손가락을 갖고 싶습니다.” 광담조(廣談助)에 실려 있는 이 고사에서 점석성금(點石成金/돌을 다듬어 금을 만든다)이란 말이 생겼다. 소유지향적인 사람의 모습을 본 것이다.

「소유나 존재냐」란 책 안에는 산책 중 본 꽃에 대해 서로 다른 반응을 소개하고 있다. ① 일본 시인 바쇼(芭蕉/1644-1694)의 배귀(俳句=하이쿠)에 “자세히 살펴보니(존재양식)/냉이꽃이 피어있네(존재본위)/울타리 밑에”(그대로 두고 본다) 이 시는 존재 자체를 그대로 보는 입장에서 쓴 것이다. ② 19세기 영국시인 테니슨(Tennyson)의 시를 보자. “갈라진 암벽에 피는 꽃이여/나는 그대를 갈라진 틈에서 따낸다/나는 그대를 이처럼 뿌리 채 내 손에 들고 있다/작은 꽃이여-그대가 무엇인지/뿌리뿐만 아니라 그대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면/그때 나는 신이 무엇이며/인간이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으리다라” 여기서 시인은 소유본위로 움직여 자기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려 꽃을 뿌리 채 파내어 들고 있다. 전형적인 소유지향적인 사람의 모습이다. 꽃을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캐내어 내 손 안에 들고 서 있는 것이다. ③ 이제 괴테가 쓴 「찾아낸 꽃」을 읽어보자. “나는 홀로/숲속을 헤맸다/아무것도 찾지 못한 채/정처 없이//나무 그늘에서 찾아낸/한 송이 꽃/별처럼 반짝이는/아름다운 눈동자 같은//꺾으려는 손을 보고/꽃은 상냥하게 말했다/어째서 나를 꺾으려 하세요/곧 시들어버릴 텐데, 나는 그것을/뿌리 채 파내어/아름다운 정원에다 심으려고/집으로 그것을 가져 왔다/그리고 조용한 곳에/꽃을 다시 심었다/이제 그것은 많이 자라/꽃이 피게 되었다.”(소유충동을 느꼈으나 다시 존재욕구로 승화되어 뽑았으나 옮겨서 다시 심는(존재중심) 쪽으로 발전된다. 존재→소유→다시 존재로 발전된 것이다.

무심히 걷다가 작은 꽃에 이끌려서 꽃을 대하는 각각의 태도로 구별되는 모습이다. ① 파쇼는 있는 그대로의 꽃을 바라보았다.(존재지향), ② 테니슨은 보게 된 꽃을 뿌리 채 뽑아들었다.(소유지향), ③괴테는 꺾는 것은 꽃을 죽이는 거라 생각하고 뿌리 채 파내어 다시 심어 그 생명을 파괴하지 않았다.(존재지향) 삶의 태도와 입장이 이렇게 달라진다. 존재지향은 지금, 여기(hic et, nunc)의 삶에 만족하는 것이다. 그러나 소유지향은 시간(과거-현재-미래)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괴테의 「파우스트」는 「존재」와 「소유」 간의 갈등을 표현하고 있는데 괴테는 ‘존재’의 특징을 간명하게 표현하여 이렇게 시 「재산」을 썼다. “나는 알고 있노라/내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음을/다만 내 영혼으로부터 거침없이 흘러나오는/사상만이 있음을//그리고 사랑에 가득한 운명이/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나를 기쁘게 하는/모든 행복한 순간만이 있음을” 비교하는 한 우리는 행복할 수 없다. 걷는 자 위에 뛰는 자가 있고 뛰는 자 위에 나는 자가 있기 때문이다.


김형태 박사

<한국교육자선교회 이사장

•더드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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