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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어떤 우체국장 이야기
[[제1658호]  2019년 9월  28일]

직장생활 하던 때의 일이다좁은 골목길에 삐딱하게 세워 놓은 트럭과 트럭 사이의 틈새를 빠져 나오려다가 내 차의 오른 쪽 문짝이 심한 상처를 입게 되었다차폭감(車幅感)을 제대로 계산하지 못한 운전미숙의 소치(所致)이므로 아무도 원망할 수가 없었다.

어디에 가서 수리를 할까 하다가 역시 가양동에 있는 단골 카센터로 차를 몰았다집에서30분은 족히 되는 거리였지만 이 카센터는 원래 대전 시내 한복판인 선화동에 있었는데 몇 년 전에 고속터미널과 구() ‘대전탑을 지나 한참을 달려가야 하는 가양동으로 이전을 하였다주인양반이 아주 수더분하고 정직한 모습이 마음에 들어 가까이 지내온 것이 어느새 만10년이 된다.

저녁나절 퇴근하면서 차를 찾으러 가는 길이었다마침 내가 근무하는 학교 앞에서 출발하는 버스노선이 가양동까지 이어져 있으므로 버스 편을 이용하였다대략50분 정도가 걸려서 목적지에 닿았는데 목적지에 거의 다다를 무렵에서야 지갑을 연구실에 두고 온 것을 알게 되었다.

지난10년 동안 피차간에 주고받은 신용거래로 미루어 볼 때외상거래도 가능하겠지만 주인이 애써 수리한 자동차는 당장 찾아가겠다고 하면서 수리비는 다음에 주겠다는 것이 좀 염치없는 말 같아서 한순간어떻게 해야 하나하는 당혹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가양동에 내리고 보니 마침 큰길가에 우체국이 눈에 띄었다시계를 보니 막 오후6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가느다란 기대감을 안고 우체국으로 들어섰다창구에 앉은 여직원에게 다가가서, “현금 좀 인출할 수 있을까요?” “업무가 마감됐습니다.” “한번 카드로 시도해 보면 어떨까요?” “업무가 다 끝났다고 했잖아요?”(왜 말귀를 못 알아듣느냐는 뜻이다.)

다소 무안감을 느꼈지만 어쩔 수 없이 출납창구 앞에서 서성이고 있는데 우체국장석에 앉아 있던50세 정도가 되어 보이는 얌전하고 선하게 생긴 양반이 내 앞으로 다가온다. “손님얼마가 필요하신데요?” “우선10만원만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통장을 제게 맡기시고 출금전표를 써 주시지요. (창구에 있는 직원에게이 손님에게10만원을 지급해 드려요.” (허리를90도 각도로 굽히고) “고맙습니다정말 감사합니다.” “손님이 통장을 찾으러 다시 우체국에 들르시겠습니까아니면 제가 우편으로 보내드릴까요?” “사실은 저희 집이 이 동네가 아닙니다. (명함 한 장을 건네주면서수고스러우시지만 우편으로 보내주시면 좋겠습니다.”

나중에 고마운 전화라도 한통 걸 요량으로 우체국장의 책상 위에 놓인 명패에 적힌 김명규(金明圭)란 이름을 수첩에 메모하였다이틀 후에 직장으로 배달된 등기우편물을 받고 나서 나는 우체국장에게 베풀어 준 친절에 감사하다는 짧은 편지를 자필로 써 보냈다.

그 일이 있은 후 약 달포 후에 엔진오일을 교체하기 위해 다시 가양동에 갔다가 우체국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우체국에 들어서니 우체국 직원들은 모두들 분주한 시간이었다우체국장 앞으로 다가가서 정중히 인사를 하였다. “이 앞을 지나는 길에 우체국장님 생각이 나서 잠시 들렀습니다.” “어서 오십시오이리 앉으시지요.미스 리여기 시원한 것 한잔만 가져와요.”

피차간에 안부를 묻는 두 사람 사이가 어느새 사귄지 오래된 지인처럼 가까워져 있었다눈이 마주치는 직원들마다 한 결 같이 나에게 밝은 눈인사를 하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일전에 내가 보낸 편지가 사무실을 한 바퀴 돌았음을 짐작케 해 주었다우체국장 한 사람의 작은 친절이 이토록 여러 사람을 기쁘게 해 줄뿐만 아니라,우리 사회를 밝고 아름답게 그리고 건강하게 해 준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

목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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