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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조금 더 위였습니다(A Little Higher)”
[[제1661호]  2019년 10월  19일]

미국의조지 워싱턴(1732-1799)' 장군이 군에서 은퇴하고 민간인의 신분으로 있던 어느 여름날그가 살고 있던 동네에 홍수가 범람하자 재킷 차림의 간단한 복장을 하고 물 구경을 하러 나갔더랍니다물이 넘친 정도를 살펴보고 있는데 육군중령의 계급장을 단 군인 한 사람이 그에게 다가왔습니다.

어르신미안합니다만제가 군화를 벗기가 어려워서 그런데요제가 이 냇물을 건널 수 있도록 저를 업어 건네주실 수 있을까요?” “그렇게 하시구려!” 이리하여 중령은 어른의 등에 업혀 그 냇물을 건너게 되었습니다등에 업힌 중령이 어른에게 묻습니다.

어르신께서도 군대에 다녀오셨나요?” “다녀왔지요.” “사병이셨습니까?” “장교였습니다.” “혹시 위관급이셨습니까?” “조금 더 위였습니다.” “아니 그러면 소령이었나 보네요.” “조금 더 위였습니다.” “그럼 중령이셨군요.” “조금 더 위였습니다.” “아니 대령이셨단 말씀이십니까?” “조금 더 위였습니다.” “아니 그럼 장군이셨네요어르신저를 여기서 내려 주세요.” “냇물을 건너기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소마저 건네 드리리다.” “어르신께서는 그럼 준장이셨습니까?” “조금 더 위였습니다.” “혹시 중장이셨나요?” “조금 더 위였습니다.” “그럼 최고의 계급인 대장이셨단 말씀이세요?” “조금 더 위였습니다.”

이때 막 냇가를 다 건너게 되자 워싱턴이 중령을 바닥에 내려놓았습니다자신을 업어 준 어른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육군 중령은 그 텁수룩한 어른이 당시 미합중국의 유일한 오성장군이던조지 워싱턴 원수(元帥)'임을 알아보고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그가 훗날 미국의초대대통령'이 된 것은 우리 모두가 잘 아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우리는 흔히 그 사람의 옷차림새를 보고혹은 사는 동네나 아파트를 보고아니면 그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를 보고 사람을 평가하는 우()를 범하기 쉽습니다위의 이야기는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는 교훈을 말해 주는 일화입니다.

이 이야기 속에 재미있는 사실이 들어 있습니다원래 이 글은 신일고등학교에서 내가 담임을 했던 이규형(李奎炯, 1957~ ) 영화감독이 그가 일본에서 활동하던1997년경에 쓴 글을 어느 스포츠신문 칼럼에서 본 내용입니다당시 이 감독의 글은 산문형식 위주였는데 나는 당시의 원고를 대화체로 각색을 하여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글이 지구를 한 바퀴 돌아 어느 날 캘리포니아헤멧(Hemet)에 사는 친구 박사가 보내오는 메일 중에 이 글이 들어있지 않았겠습니까또 얼마 후에는 경북대학교 명예교수가 보내오는남산편지를 통해서 이 글이 접수가 되었고 이어서 가톨릭대 명예교수 박사가 보내온 메일을 통해 이 글이 본고향인문 장로의 품'으로 돌아왔으니 얼마나 재미있고 신기한 일인지요이 글의 제목 뒤에 붙인 영문 부제(副題), “A Little Higher”는 내가 객기로 붙여본 것인데 이 글을 내게 보내준 세 사람의 이메일에는 모두 이 영문 부제가 달려있었습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유사한 메시지를 전해주는 한 가지 일화가 떠오릅니다어떤 흑인 한 사람이 백인 교회에 가서 예배드리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그 흑인은 어느 주일 아침에 목욕을 깨끗이 하고 제일 좋은 옷을 입은 다음성경과 찬송을 들고 백인교회에 들어가려고 하였으나 문전에서 박대를 당했습니다그는 자신이 백인이 아니고 흑인인 것에 뼈저린 아픔을 느끼면서 그 교회의 바깥뜰 계단에 엎드려 통곡을 하며 기도했습니다기도하는 중에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흑인이 그에게 부르짖었습니다. “주님제가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주님의 교회에 들어갈 수가 없나요?” 주님이 그를 위로하셨습니다. “형제여나도 이 교회에 들어가 본 적이 없다네.” 그렇습니다사랑이 없는 곳에 주님이 계실리가 없다는 뜻이지요종교적 의식과 경건의 모양이 있다 하더라도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면 주님의 영광을 가리게 된다는 메시지를 우리가 교훈으로 배우게 됩니다.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

목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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