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봇’은 구약성경에서 주로 대제사장이 겉옷 위에 걸쳐 입던 조끼모양의 상의(上衣)를 지칭했다. 그러나 에봇은 반드시 대제사장만이 입는 옷은 아니었다. 어린 사무엘이 엘리 제사장 밑에서 자라날 때 ‘세마포 에봇’을 입었었다. 또 다윗왕은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 올 때 기뻐서 ‘베 에봇’을 입고 춤을 추었다(삼상2:18 ; 삼하6:15). 이렇게 에봇은 구약시대 사람들이 입는 의상의 일종이었다.

문제는 기드온이 금으로 만들었다는 에봇이다. 기드온은 금 에봇을 만들어 그의 고향 오브라에 두었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음란하게 위했다’는 것이다(사8:27). 구약성경에서 ‘음란’ ‘행음’이라는 말은 흔히 ‘우상숭배’를 지칭하는 표현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외에 다른 우상 잡신을 섬기는 것을 ‘신앙적 음란’으로 여긴 것이다. 예언서 호세아를 보면 ‘음란’ ‘행음’이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예를 들면,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행음함이라”(호1:2) 등이다. 이스라엘이 범한 우상숭배를 신앙적 행음으로 본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드온이 만든 금 에봇을 ‘음란하게 위했다’는 말은 금 에봇을 우상숭배의 대상으로 섬겼다는 뜻이다. 에봇을 사람이 입는 의상의 일종으로 본다면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 문제를 푸는 데 도움이 되는 기록이 사사기 17~18장에서 발견된다. 사사시대 ‘미가’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집에 신당(神堂)을 만들고, 그 안에 각종 신상(神像)들을 진열해 놓았다. 은으로 새겨 만든 신상, 거푸집(주형)에 부어 만든 신상, ‘드라빔’ 신상 등 각종 우상의 신상들이었다.

그런데 잡다한 신상과 함께 ‘에봇’이 열거되어 있다(사17:4 ; 18:18). 에봇이 우상숭배 대상 중에 하나로 열거된 것이다. 그렇다면 우상숭배의 대상인 ‘에봇’은 도대체 무엇인가? 이 난제에 관하여 만족할 만한 대답을 내어 놓기는 어렵다. 다만 여러 가지 추정이 있을 뿐이다. 그중 비교적 설득력 있는 설명을 소개한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지역에서는 조끼같은 상의(에봇)를 만들어 신상에게 입히기도 했다. 미가나 기드온이 만들었던 에봇은 사람이 입는 옷이 아니라, 신상에게 입혔던 옷이었다는 것이다.

기드온의 고향 오브라는 원래 우상숭배가 극심한 곳이었다(사6:25 이하). 기드온은 화려한 금에봇을 만들었고(그 동기는 분명치 않지만) 그곳 사람들은 우상에게 금 에봇을 입히고, 그것을 섬기는 우상숭배를 범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기드온과 그의 온 가족까지 우상숭배의 ‘올무’에 걸려들고 말았다(사8:27 하반절).

박준서 목사 <경인여자대학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