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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 평생을 교회·독립운동·사회개혁에 몸바치신 낙평 김응록 장로(11)
[[제1310호]  2012년 2월  25일]

해방 후 공산치하에서 반공투쟁과 복음선교활동

 

부흥강사 김응록 장로

낙평 김응록 장로는 신앙생활은 물론 일제하에 혹독한 투옥과 온갖 살인적인 고문을 감내하며 애국애족의 독립운동을 하면서도 복음선교를 위해서 다방면으로 활동하였다. 특별히 교회의 영수로 장로로 교회 건축과 기독교정신에 입각한 국민생활 개조운동을 선도함으로 신앙을 생활로 실천하였다. 그리고 하나님 사랑과 나라사랑 내지 이웃사랑을 모범적으로 보여주신 분이었다. 그에게는 조국과 민족사랑 그리고 교회사랑은 둘이 아니고 하나였다.

 

이른바 1910년 한일합방이라는 일제의 대한민국 강점 후 36년의 기나긴 민족적 만행이 끝나고 1945년 8월 15일 해방의 기쁨을 만끽하면서 만주에 망명하여 민족독립운동으로 온갖 정열을 쏟던 김응록 장로는 그동안 그리던 조국으로 돌아와 고향땅을 밟았지만 그리고 망명에서 돌아와 온 민족이 그렇게 그리던 해방의 기쁨을 누릴 것을 기대했지만 그것도 잠시 또 다른 혹독한 고난의 계절을 맞이하게 되었다.

해방과 더불어 뜻하지 않게 소련군이 진주하면서 또 다른 탄압이 기다리고 있었다. 일제의 탄압에서 풀려났으나 숨돌릴 틈도 없이 소련에서 공산당 훈련을 받고 돌아온 김일성 공산 치하에 한국교회는 신앙적 수난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같은 수난 속에서도 김응록 장로는 그냥 있을 수 없다고 판단하여 가는 곳마다 젊은 청년들을 모아 놓고 신앙의 열정을 쏟아놓기도 하였다.

 

독립운동으로 애국애족과 사회개혁으로 교회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명성이 높은 그는 하나님 사랑에 있어서도 복음전도 활동에 남다른 열정을 인정받았다. 성경말씀에도 깊은 통찰과 감동적인 말씀으로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달란트로 그동안 일제하에 소원했던 복음선교를 통한 교회부흥에 뛰어들었다.

 

김응록 장로는 1945년 8월 15일 해방 이후 평양과 인근 교회들로부터 초빙을 받아 설교를 하는 일이 빈번했는데 공산 치하에서도 평양과 인근 지방 교회를 순회하면서 간증 중심의 부흥회를 인도하는 그를 북한의 정보원이 항상 미행하였다.

김응록 장로가 부흥사로 초청받아 설교를 하실때면 “하나님을 배반하는 불의의 집단은 반드시 망한다”고 하는 공산집단을 향한 강력한 메시지를 빼놓지 않았다. 그러므로 어느 집회든지 몇 명의 공산당 보위부 정보원이 반드시 미행하였다. 그런 관계로 김응록 장로는 경찰서에 자주 수감되었다.

 

그런데 어느 경찰서에 수감되었을 때 서장이 아침 일찍 출근하여 김응록 장로가 수감된 감방에 와서 “장로님 지난 밤에 과히 불편하지 않으셨습니까?”라고 인사를 하였다. 그때 마침 한 내무서원이 아침 점명을 하면서 “김응록 동무”라고 하자 서장은 그 서원을 보고 “말 좀 주의해” 하고 책망하며 “장로님 죄송합니다”라고 정중히 사과를 하였다. 비록 수감된 죄수의 몸이었지만 일제하에 독립운동 등 애국애족운동의 민족 지도자로 마을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불굴의 신앙으로 교회 공동체의 많은 성도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그를 공산당 간부도 함부로 다룰 수 없었던 것이다.

 

한번은 서평양에 있는 기림리교회에서의 일이다. 기림리교회를 시무하던 지형순(池亨淳) 목사님이 이틀간 부흥설교를 부탁하셨는데 그때가 1947년 가을, 김응록 장로의 나이 65세 때였다. 지형순 목사는 당시 대부흥사로서 보위부 정보계로부터 주목을 받던 목사님인데다가 당국의 감시와 주목을 받고 있는 김응록 장로를 특별 강사로 모셨으니 정보원이 더 많이 올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교회 안은 김응록 장로의 복음간증을 듣기 위해 운집한 사람들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시간이 되자 지형순 목사는 김응록 장로를 소개하기를 “장차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실 김응록 장로님께서 등단하셔서 말씀을 전하시겠습니다”라고 강사 소개를 하였다.

소련에서 철저한 공산당 교육을 받고 돌아와 온 나라를 장악하고 있는 김일성이 주도하는 공산당의 서슬이, 시퍼런 칼날이 온 나라를 공포의 도가니로 만들고 있는 상황에서 지형순 목사의 그 같은 말은 부흥집회에 사찰 나와 있던 정보원과 경찰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음이 틀림없었다. 소개가 끝나자 기골이 장대하고 남달리 용모가 준수한 김응록 장로는 그 누구도 근접할 수 없는 위엄으로 강대상 앞에 우뚝 서서 엄숙한 어조로 성경 말씀을 암송함으로 설교하기 시작하셨다.

 

그리고는 “하나님을 배반하는 자 또는 불의한 자는 망한다”고 하면서 공산주의자들을 신랄하게 공박하였다. 이어서 “진짜 김일성 장군은 내 나이 정도인데 젊은 녀석이 어떻게 자기가 김일성이라고 거짓말을 하는가”라며 가짜 김일성을 정면으로 호되게 꾸짖으셨다. 공산당 정권을 한 손에 쥔 김일성을 향하여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은 죽기를 각오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말이었다.

 

예수님 당시 전대미문의 폭군 헤롯을 향하여 여우라고 공박한 예수님의 말씀이 있은 지 2000년 만에 김 장로는 예수님의 바로 그 말씀을 김일성을 향하여 서슴없이 외친 것이다. 김응록 장로는 백성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나라와 민족을 해롭게 하는 것을 보고 통분해 죽기를 각오하고 크게 책망한 예레미야의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한 것이다. 이같이 김 장로의 위엄있고 자신감이 넘치는 복음 선포에 모두 숨을 죽이고 마음으로 “아멘”을 할 뿐이었다.

 

김응록 장로의 말씀이 끝난 후에 지형순 목사가 방금 김 장로의 강력한 메시지에 감동하고 고무된 성도들을 향하여 “자! 다 일어서서 애국가를 다 같이 부르자”며 선창하시니 전 교인과 참석자 모두가 흥이 나서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를 우렁차게 부르고 예배를 마쳤다.

 

그 일이 있은 지 삼일 후에 지형순 목사는 교회에서 새벽기도회를 인도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대기하고 있던 보위부 정보원에 의해 연행되어 평양감옥에 수감되셨다가 제동탄광으로 이송되어 혹독한 수난을 당하던 중 9·28 인천상륙작전에 이어 북진하는 국군에 밀려 후퇴하는 급박한 상황에서 당황한 공산군은 후퇴하면서 1947년 가을 부흥회 후 연행되어 그동안 감옥에서 탄광에서 숱한 고난의 길을 걸어온 지형순 목사를 총살로 순교의 피를 흘리게 하였다. 그날이 바로 1950년 10월 20일이다.

지형순 목사의 아들이 성광교회 담임을 역임한 지종호 목사이고 그 아들이 지민섭 목사(영세교회 부목사)로 할아버지의 순교신앙을 이어오고 있으니 “순교의 피는 교회의 씨앗(자양분)이다”라고 한 초대교회 유명한 교부 신학자 터틀리안의 명언은 순교자 지형순 목사의 후손을 통해서 계속 메아리치고 있다.

 

김종희 목사<순교자기념선교회, 경신중·고등학교 명예교목, 서울노회 전 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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