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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67호]  2019년 12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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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돌아온 탕자 정원재 장로(12)
[[제1659호]  2019년 10월  5일]


예수 영접(3)

19059월에 이르러 한국 정부의 아주 높으신 분인 윤치호가 방문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그는 외무협판(지금의 외무차관)으로 하와이에 와서 직접 시찰하여 이민사회에 대한 실태를 파악하고 일제 간섭 하에 놓여 있는 한국인의 이민문제를 해결할 목적으로 온 것이다

윤치호는 일찍이 미국에 유학하여 밴더빌트대학 신학부에서3에모리대학에서2도합5년에 걸쳐 신학을 공부한 석학이었다그리고 그의 주된 관심은 한국 민족을 구원하는 일이었다그는 그것을 선교적 사명으로 생각했다그의 선교적 사명이란내 겨레를 위해 복음을 전하고 교육하는 것’이었다.윤치호는 사탕수수 경작자 협의회의 대표인 스완지와 위드만 감리사와 민찬호 전도사의 안내를 받아 하와이 전역을25일 동안32개 농장을 방문하고41회에 걸쳐5천여 명의 한인들에게 연설을 하였다

윤치호는 마우이 섬에 있는 농장도 시찰할 겸 여러 곳(카아나팔리라하이나마카윌리)을 다니면서 연설집회를 가졌다원재는 존경하는 윤치호의 설교를 들으려고 거리가 먼 지역이지만 집회에 참석했다그의 설교를 들을 때마다 새롭게 감명을 받고 결단을 하게 되었다정말 농장에서 일하는 한인 노동자들에게 참으로 시의 적절한 이야기였다그중에서도 기억에 남고 가슴에 깊이 새긴 말들이 원재의 농장 생활에 지침이 되었다

첫째는 근면하라는 말씀이다성경말씀에일하기 싫은 자는 먹지도 말라”는 말이 있다또한일할 수 없는 밤이 오기 전에 열심히 일하라”는 것이다

원주민들은 인심 좋고 손님대접하기를 잘하는 민족이었다우리 한국 사람과 비슷한 점이 있지만 그들이 쇠퇴하는 이유로 게으름 때문임을 지적하는 것을 볼 때 옳다고 생각되었다

둘째로 절약하라는 것이었다아무리 땀 흘려 번 돈이라도 헛되이 써버리면 저축할 수 없고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도박이나 음주나 잡기로 탕진하면 여기 와서 고생하며 일한 보람이 없다는 것이었다그리고 돈을 저축하였다가 꼭 귀국을 하라고 권고했다이 대목에서 원재는 꼭 귀국해야 한다는 결심을 새롭게 하였다

셋째는 한민족끼리 화합과 단결을 강조했다한민족끼리 분쟁하거나 비방하지 말라는 것이었다윤치호는 이곳 하와이에 와서도 동족 사이에 분쟁과 상호 비방하는 모습을 보았던 것이다특히 교회 안에서 교인끼리 화해와 협력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본이 된다고 역설했다그리고 일본인들의 단결심을 배워야 한다면서 만일 하와이에서 백인들이 떠난다면 일본인들이 이곳을 지배할 것이라는 말까지 하였다

넷째는 열심히 공부하라는 것이었다무식한 동포들을 계몽하고 서로 도와줄 것을 당부했다마지막으로 마음에 닿는 말씀은 감사한 마음을 가지라는 것이다불만과 불평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농장주에게도 감사하며 겸손하고 친절하여 환심을 살 것이며쓸데없는 불만 불평을 하지 말 것이요더욱이 파업같은 것은 자제할 것을 촉구했다그리고 노동조건과 환경을 바꾸기 전에 우리의 마음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하였다. ‘그렇다내가 이제까지는 남의 탓환경 탓팔자타령을 하면서 탄식으로 세월을 보냈지만 회개하고 범사에 감사하라는 성경말씀대로 살면 앞으로의 삶은 새로워질 것이라는 확신을 갖자’고 원재는 독백을 하였다

윤치호는 하와이를 떠났다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서 주신 말씀은 살아 있어서 내안에 있었다주일날이 기다려져서 교회 나갈 때는 새 양복을 갈아 입고 성경책을 옆에 끼고 가는 것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교회 다녀오는 길에 사진관에 들러 사진 한 장을 찍었다한 주 후 현상된 사진을 보니 참으로 감회가 깊었다집을 탈출할 때에는 동저고리 바람에 상투를 하고 짚신을 신고 나왔었는데 이제는 매일 애독하는 큰 성경책을 한 손에 들고 양복을 입고 모자를 쓰고 구두를 신은 자신의 사진을 보니 새 사람으로 거듭났다는 것이 실감났다

19083월에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미국인 스티븐슨이 암살된 사건이 있었다스티븐슨은1904년 제1차 한일협약으로 고문정치가 시작되면서 외교 고문으로 파견되어 일본 편에서 일한 자였다한국에서 워싱턴으로 돌아가는 길에 샌프란시스코에 들른 스티븐슨은 신문에 일본의 한국보호정책을 찬양하는 글을 썼다글의 내용은 독립할 자격이 없는 한국에 이완용 같은 충신이 있고 일본인으로는 이등박문같은 통감이 있어 다스리는 것은 다행한 일이라는 것이었다이에 격분한 한국인 청년 전명운과 장인환이란 청년이 있었다스티븐슨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오크랜드로 가는 배를 타려고 차에서 내렸다

그 때에 전명운이 그를 권총으로 쏘았으나 발사되지 않았고옆에 있던 장인환이 재차 쏘아서 스티븐슨을 쓰러뜨렸다체포된 두 사람은 재판 석상에서한국의 복록을 받으면서 적국 일본을 두둔함으로 우리 민족을 모욕한 고로 저를 타도한 것이다”라고 말했다이 사건은 하와이 한국 교포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고 두 청년을 담당할 변호사 선임을 위해 모금운동을 벌였다

190910월에 만주 하얼빈 역에서는 안중근 의사가 이등박문을 사살했다안중근은 황해도의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나서17세에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 사재를 털어 학교를 세우기도 했고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하는 등 애국 계몽운동을 벌였다. 1907년 블라디보스톡으로 망명하여 독립군을 모집하여 무장투쟁을 시작했다안중근은19093, 12명의 단지회(손가락을 잘라 혈서를 써서 생긴 이름)를 결성하고 이등박문을 죽일 것을 결심하였다

안중근은10월에 이등박문이 만주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미리 준비한 끝에 실행한 것이었다그는 여순감옥에서 의연한 자세로 재판을 받았고 옥중에서동양평화론’을 쓴 것으로 유명했다하와이에서는 안중근 의사의 재판을 위해 모금하기 시작했다원재는 이 모금운동에 동참하여 소액이나마 성금을 하였다

 

정행업 목사<전 대전신학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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