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장로신문
뉴스오피니언교양피플미션말씀특별기고 | 지난연재물
[제1668호]  2019년 12월  14일
기사검색
전장연 총회 교단 교계 동정 연합기관행사일정 특별기획 포토에세이
장로열전
빛을 남긴 선진들(목사/장로)
노마트톡
통일밥상
통일로 가는 길
한국교회비사
이슬람과 한국교회
Home > 미션 > 빛을남긴 선진들(목사/장로)
[장로]돌아온 탕자 정원재 장로(14)
[[제1661호]  2019년 10월  19일]


사진 결혼

 

한인사회는 근원적인 문제가 있었다그 것은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지 못한데서 오는 것이었다. 1903년과1905년 사이에 여성은 성인 이민자10명중1명꼴이었다그녀들은 모두 기혼여성으로 남편과 같이 왔다결과적으로 독신 남자들이 결혼할 독신 처녀들이 없었다그러다보니 한국 미혼 남성들이 나이는 먹어가고 가정을 이루지 못하는 데서 오는 문제가 심각했다농장 일에 정착하지 못하고 자포자기하며 이곳저곳으로 떠돌아다니는 자도 있었고일본인들이 경영하는 술집이나 매춘하는 곳을 출입하는 자도 있었다더러는 원주민 여자나 타민족 여성과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이루는 자도 있었다

이에 대한 좋은 대안으로 소위 사진 신부나 사진결혼이라는 것이 시행되었는데신랑 신부가 중매쟁이를 통해 사진을 교환하고 신랑신부가 합의하여 신랑이 신부에게 여비를 지불하면 신부는 하와이로 와서 사진에서 본 그 얼굴의 주인과 이민국 건물이나 예배당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것이다한인 남자들이 결혼하기 위해서 직접 한국에 와서 신부를 맞는 일도 있지만 경비가 많이 들고 시간이 많이 걸리므로 그런 경우는 소수에 불과했다

사진을 통해 맺어진 가정은 그저 운명이려니 하고 살았지만 그렇게 행복하게 산 것 같지는 않았다그리고 남자가 아주 오래전에 찍은 사진을 신부에게 보내는 경우가 많아서 현재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에 신부들이 실망하기도 하고신랑과 신부의 나이 차가 심한 경우도 허다했다

한 동리서 같이 온 친구지간의 신붓감이 있었는데한 친구가 신랑을 보더니 자기 아버지뻘 된다고 통곡을 하고 우니까 다른 친구가 그럼 나하고 남편을 바꾸자고 하여 달래면서 바꾸기도 하였다.또 어떤 아가씨는 한국에서 본 사진 속 신랑감이 얼굴도 준수하고 키도 크고 해서 허락을 하고 하와이에 와 보니 신랑은 늙었고키는 작고 영 딴 사람이었다그래서 묻고 캐고 알아보니 이름은 맞는데 남의 사진을 도용했다는 것이다그래서 신붓감은 결혼을 안하겠다고 버티니 그 신랑감은 너무 당황했다신부를 얻어보려고 막대한 자금을 들이고 기다렸는데이 지경이 되었으니.

처녀가 울고불고 옥신각신하는 모습을 보고 같이 배를 타고 온 목사 내외가 하도 딱해서 자기 집에 가서 우선 도우미로 같이 살자고 하며 그 아가씨를 달래서 데리고 가기도 했다

사진결혼은 중매인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언제나 그렇듯이 중매인들은 결혼이 성립되게 하기 위해서 과장을 하거나 미화해서 소개를 한다그래서 하와이 있는 신랑감으로 소위 은행가 실업가 대학생 애국지사라고 소개한다그러면 한국에서 신랑을 소개받는 신부는 큰 기대를 가지고 결혼할 뜻을 품고 태평양을 건너게 된다부자의 아내가 되거나 애국지사 남편을 얻어 조국독립을 위해 보람있는 일을 해 보겠다는 마음을 품고 희망찬 여행을 하게 된다

그런데 하와이에 도착한 신부 후보생들은 부두에서 이민국 직원들의 호명을 따라 소개되는 남자들을 보면 예외없이 가난하고 늙고 구부정하고 주름이 많고 아주 새까만 사람들이었다막상 현지에 와보니 소위 은행가실업가대학생애국지사가 다 일찍이 은행의 이름도 모르던 사람이요기업의 구경도 못하던 사람이요대학교는 고사하고 소학교 문턱도 밟아보지 못한 자요애국심은 고사하고 망국한도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이다얼마나 실망을 했겠는가또 어떤 처녀들은 부두에 있는 선상에서 신랑감들을 바라보았는데 신랑의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아 배에서 내리기를 거부했다그러나 돌아갈 여비가 없는 것을 안 선원들은 강제로 하선을 시켜 이민국으로 보내었는데 그들은 엉엉 울부 짖기도 했다

그러므로 사진결혼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있었다그리고 결혼 후 이혼하는 예도 있었다그러나 대부분 그저 자기에게 닥친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가정을 이루어 나름대로 정착해서 아들 딸 낳고 살았다

대부분 만난 남녀들은 이민국 건물에서 즉시 결혼식을 올렸지만 일부는 만난지 며칠 후에야 결혼식을 올렸다대략 결혼식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신랑은 오아후에 도착해 이민국에 가서 신부가 될 처녀를 만난다바로 결혼 수속을 마친 후 신랑과 함께 신랑이 빌려온 차를 탔다그리고 근처 가까운 여관으로 가서 첫날밤을 지낸 다음 한국식 식사를 한 후 시내로 나가 쇼핑을 했다신랑은 신부에게 꽃다발과7달러가 되는 결혼반지를 선물함으로써 호놀루루에 있는 한인 감리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하기 위한 신랑들은 경비도 많이 들었는데 신부의 여비70달러소개비30달러사진 값20달러 등 최소한100달러 이상이 들었다그러나 대부분의 경우300~400달러가 들었는데그것은 그 당시로서는 큰돈이었다이렇게 사진결혼으로 미국 땅에 온 한국 여성은600~1,000명에 달했다

그런데 결혼에 성공한 신부들이 영어를 할 줄 모르니까 생활하는데 어려움이 많이 있었다.원재는 주위에서 사진결혼이 있을 때에 그 문제에 관심이 없었다왜냐하면 고국에 아내가 있을 뿐만 아니라 고국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그는 한 남자가 억지로 홀아비 생활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이라는 것을 깊이 느끼고 있었다만일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다면 어떠한 타락의 나락으로 떨어졌을지 상상할 수 없었다

 

정행업 목사<전 대전신학대 총장>

[ 저작권자 ⓒ 장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저작권문의
이번호 많이 본기사
기드온의 ‘금 에봇’
타락한 천사, 사탄, 루..
[장로] 평생을 교회·..
147. 철종의 가계도 ..
<94-총회총대5>
332. ‘기도합니다’와..
59. 초락도 금식 기도..
“사나 죽으나, 선하게 ..
<94-총회총대4>
331. ‘고범죄’에 ..
만평,만화
어지러운 세상중에 예수오심을 .....
성서주일, 여호와를 인정하는 것.....
예수 오심을 기다립니다!
공지사항
[정기휴간]5월 10일자
[9월 28일자] 추석연휴 휴간..
회사소개구독신청 지사 Contact Us Site Map

한국장로신문의 모든 콘텐츠(기사) 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ㆍ복사ㆍ배포 등을 금합니다.
청소년보호책임자: 이승담 | Copyright (c) JANGRO.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