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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68호]  2019년 12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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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믿음으로 한국 땅에 뛰어든 배위량 목사 (27)
[[제1662호]  2019년 10월  26일]

배위량의 제2차 순회 전도 여행(9)

배위량은1893420일 목요일에 밀양으로 들어왔다그가 밀양에 들어와 느낀 점을 일기에 기록했지만밀양에 대한 정보를 많이 전달하지는 않는다그러나 그는 영남루에 대해서밀양에는 유명한 건물이 있는데그것은다락’(Tarak, )이라고 불리는 높은 지붕 아래에 한층 높게 지어진 마루로 되어 있다이것은 남부 지역 최고의 건축물로 알려져 있는데영남루(Yung nam, 嶺南樓)라고 불린다는 말로 일기에 남긴다당시에도 영남루는 밀양을 대표하는 건축물이었던 것 같다

영남루는 보물 제147호로1365(공민왕14)에 건축된 누각으로 경상남도 밀양시 중앙로324(내일동)에 지어진 밀양도호부 객사의 누정이다임진란 때 소실 되었다가1637(인조15) 재건축했고 마지막으로1844(헌종10다시 건축하여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영남루는 밀양강을 내려다보는 남향의 절벽 위에 서 있다영남루는 마지막으로 지어진1844년대의 조선시대 후기의 건축양식으로 지어졌다.

영남루는 밀양강이 휘돌아 흐르는 빼어난 경관과 함께 뛰어난 조선 후기의 건축미가 조화를 이루어 아주 절경을 이루고 있다.  

영남루의 이런 역사적인 배경 때문에 배위량이 영남루를남부 지역 최고의 건축물이라고 말한 듯하다

배위량은 다음의 일기를“421일 금요일 정오삼거리(청도)”라는 표제어를 붙여 썼다.

 

 

배위량은 밀양에서 경험한 일의 많은 부분을 청도에서 기록했다아마도20일 밤 유천에 도착하는 바람에 일기를 쓸 수 없는 형편이었을 것이다위의 일기에서 보다시피 배위량은 밀양에 대한 첫 인상을 좋게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그는 밀양에서 전도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지 못했지만밀양에서 신앙 서적을 많이 팔았다밀양에서 그가 말로 전도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지 못했지만신앙 서적을 통한 문서 전도를 했다그가 남긴 일기에 밀양 사람들에 대하여 긍정적인 인상을 남겼다배위량의 순회 전도가 밀양에 하나님의 복음이 전해지는 터전이 된 것을 위의 배위량 일기에서 유추할 수 있다

필자가 처음 영남루를 방문했을 때 밀양의 지리와 역사를 알지 못하고 방문한 필자의 뇌리에 강으로 둘러싸여 있는 밀양의 아름다운 모습이 호반의 도시처럼 매우 아름다워 인상이 깊었다밀양에 처음 방문했던 배위량은 밀양의 아름다움에 하루 이틀 묶어 갈 수 있었을 텐데 아마도 그의 뇌리에는 대구를 어서 방문하고자 하는 마음이 앞섰던지 밀양에 묵지 않고 유천까지 여행한 후 유천에서 하루를 묵었다

필자가 배위량 길을 처음으로 찾아 나섰던20151114일에 밀양을 방문했을 때 배위량이 밀양에 묵지 않고 유천에 묵었던 것을 생각하면서 밀양에서 유천을 찾아가고자 밀양읍 사무소에 들려 문의하니 상동역에 가서 물어 보라고 하여 밀양역에서 상동역까지 갔다상동역 역무원들에게 유천을 찾아간다고 하니 옛날 유천역은 없어지고 대신에 상동역이 이곳에 생겼다고 한다유천은 이 지역 이름인데경상남도 밀양시에 속한 유천과 경상북도 청도군에 속한 유천이 있다고 했다옛날 유천역 가까이 있었던 일본식 여관에서 배위량이 하루를 묵었다고 하는 말을 전해 듣고 그 여관을 찾아보고자 상동역에 일하는 역무원에게 문의하니 역 앞 상점에 가서 문의해 보라고 한다하지만 그분은 그것에 대하여 잘 모른다고 하면서 자기보다 더 그곳 역사와 지리를 잘 아는 사람을 소개해 주었다그는 어릴 때부터 그곳에서 나서 자란 분이었다그분에게 문의하니 옛날 유천역 앞에 일본식 여관이 있었는데그 건물이 헐리고 그 자리에 새로운 건물이 들어섰다고 한다그러면서 옛 유천역사(驛舍)의 위치를 알려 주었다그러나 그곳을 찾아간 필자의 생각에는 그곳은 경부선 철로가 유천역을 지나가던 시절에 세워진 역사이겠지만배위량이 유천을 처음 찾았던1893년에는 경부선 철도가 아직 놓여지기 전이었기에 그곳에 역사가 있지도 않았을 것이고 당시에는 아직 여관이 없었던 시절이라 그곳에서 배위량이 잠을 잤다고는 생각하기 어렵다고 생각되었다그래서 여러 사람에게 찾아가 문의했지만배위량을 아는 이도 없었고 역관을 아는 이도 없었다그래서 필자는 옛날 역관(驛館)이 있었던 곳을 찾고자 밀양시에 속한 유천뿐만 아니라청도군에 속한 유천까지 샅샅이 뒤지고 살피며 다녔다

당시 유천 역관이 있던 건물 자리를 찾아야 그곳에서 가까운 주막에서 잠을 잤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그래서 유천의 토박이들을 찾아가 문의하고 또 문의하였지만아는 이가 없었다.다행히 그 지역 주민 중에 어떤 친절한 분을 통해 그 지역에서 나고 자라 나중에 그 지역민과 결혼한 어느 할머니를 만나 그분을 통해 유천 역관 자리를 알게 되었다.  숲을 지나 찾아간 옛날 역관 자리는 과수원이 되어 있었다그곳을 찾은 우리는 고된 길을 걸어 그곳까지 찾아온 배위량과 그와 함께 했던 순회 전도단을 생각하면서 감격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역관 자리에 당시에 일반 여행자들도 잠을 잘 수 있었는지에 대한 것은 그 할머니를 통해서도 알 수 없었다필자의 생각에 배위량은 그 역관 안에 있는 숙박시설에서 잠을 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되었다왜냐하면 배위량이 유천의 숙박시설에서 잠을 잘 때 일어난 이야기를 아래와 같이 쓰고 있기 때문이다.

 

 

 

역관이 있는 곳에 있는 숙박 시설은 공무를 담당하는 관리를 위한 객사(客舍)나 객관(客館)이었고 그들이 공무를 수행할 때에 그곳에 묵었기에 외국인에 대하여 우호적인 분위기가 아닌 그 당시에 배위량 일행이 객사나 객관에 묵기 보다는 일반 여행자들이 묵는 주막에서 묵었다는 개연성이 훨씬 크기 때문이고 그리고 배위량이 적은421일의 일기에 다투는 민간인에 대한 기록이 보이기 때문에 배위량 일행은 유천 역관 자리에서 잠을 잤기 보다는 유천 주막에서 잠을 잤다고 생각된다당시 유천 주막은 유천 시장 강 건너 밀양시에 속한 마을에 있었다.

배재욱 교수

<영남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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