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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68호]  2019년 12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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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믿음으로 한국 땅에 뛰어든 배위량 목사 (28)
[[제1663호]  2019년 11월  2일]

배위량의 제2차 순회 전도 여행(10)

만약 배위량이 관청의 특별한 호의를 받게 되어 유천에서420일밤을 객사나 객관에서 잠을 잤다면 과연 배위량이 자신의 일기에 적은 것처럼 관리들이 잠을 자는 곳에서 배위량의 일기에 적었던 가족 간에 다툼이 가능했겠는가

그런데 그런 다툼이 일상적인 일이 아닌 특이한 일이긴 하지만주막에서는 일어날 수 있는 일일 수 있다배위량은19일 밤을 물금 주막에서 잠을 잔 후 유천에20일 밤에 들어 왔다밤 어느 경점에 들어 왔는지에 대한 정확한 시간을 적시하지는 않았지만배위량 순회 전도단이 물금에서 출발하여 밀양에서 쉬고 유천으로 들어 온 것을 감안하여 시간을 예측할 수 있다배위량이 물금에서 출발하여 밀양을 거쳐 유천에 들어 왔다면50km가 넘는 길을 여행한 것이었다그들이 물금에서 출발하여 노중에서 점심식사를 한 후 해질 무렵에 밀양에 와서 영남루를 둘러 본 후 유천으로 출발하고자 했을 때 배위량을 찾아와 책을 사고자 하는 사람이 많아 유천으로 출발하는 시간이 지체되었다그러나 갈 길에 쫓겨 배위량은 자신이 판책에 대하여 설명할 시간적인 여유를 가질 수 없어 겨우 저녁만 먹고 유천을 향해 출발했다해질 무렵에 밀양에 도착하여 이런 일 저런 일을 처리하고 유천에 도착했을 때 벌써 밤이었다

이런 점에서도 배위량은 유천에서 객사나 객관이 아닌 주막에서 잠을 잤다고 보는 것이 옳다그들이 물금에서 오전8시에 출발했다고 생각할 때 안 쉬고 계속 같은 속도로 걷는다고 해도 밤830분에 유천에 들어 올 수 있다그런데 노중 주막에서 점심 식사를 한 후 저녁답에 밀양에 들어와서 영남루를 돌아보고 책을 팔고 저녁을 먹고 유천으로 출발한다면 빨라도 밤10시 이후에나 유천에 도착했을 것이다이런 상황에서 배위량 순회 전도단이 관에서 운영하는 객사나 객관으로 잠자러 갔다고 보는 것보다 민간 여행자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주막을 찾아 갔다고 보는 것이 훨씬 개연성이 있다.

밀양지명고에 옛 유천역이 있었던구역(마을)’이 다음과 같이 소개되고 있다.

 

1904년에 경부선 철도의 부설로 옛날의 역관 자리에는 유천역이 들어섰고, 1945년에 역사(驛舍)가 금산리로 옮겨짐에 따라 옥산과 여수는 다시 분동이 되어 이 곳은 철도역사가 있던 곳이라 하여 동명을 구역이라 불렀으며, 1950년에는 또 다시 구역이란 지명을 옥산리로 바꾸어 불렀다.

 

“190471일에 경부선 초량청도 간 개통과 동시에 역사 착공되어“1906515에 역사 준공한 후 그 역명을유천역(楡川驛)으로 영업 개시하여“194531경부선 복선화로 인해 옥산리에서 금산리로 역사 이전하여“1956112신역사 준공.(확인필요)”하여“200011상동역(上東驛)으로 역명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필자가 처음으로 유천역을 찾아 유천지역을 방문했을 때 그 지역 주민들이 밀양시 상동면 지역과 청도군 청도읍 유호리 일대 그 지역 일대를 유천으로 부른다고 했다

위의밀양지명고“1904년에 경부선 철도의 부설로 옛날의 역관 자리에는 유천역이 들어섰고란 말은 확인이 필요하다그것은 청도 유호리에유천초등학교’, ‘유천우체국’, ‘유천정미소’ 그리고유천교회’ 유천이란 지명이 들어간 이름이 있지만유천역이 있었던 밀양시 상동면 금산리나 옥산리에는유천이란 이름이 별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유천 일대 지역의 중심이 지금의 청도군 청도읍에 속한 유호리였던 것 같다유호리는 옛 청도군 유천면의 소재지였다유천면이 청도읍에 편입되고 유천면은 사라졌지만,유천면의 중심인 유호리에 청도읍 사무소 유호출장소가 있다청도군 유호리에 오일장인 유천장이 형성되어 있었다유천장이5일마다 서다가 산업화의 영향으로1995년경에 유천장이 사라졌다

유천은 청도군의 중심에 있지만전형적인 시골 마을이다박양근은 자신의 수필 「청도 반시」에서 자신의 고향 유호리에 대한 기억을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아마도 박양근이 이 수필을 쓸 당시에는 유천면이 청도읍에 편입되기 전이었던 것 같다.

 

내가 자란 유천면 유호리는 감나무골이다감나무가 주민들보다 몇십 배는 많은 동네이다넓지 않은 개천 줄기가 휘두른 기슭에 자리하여 철새들이 무시로 드나들었다그 마을은 새마을 운동이 시작되면서 강 건너편으로 이주하였고요즈음에는KTX 철로가 생기면서 옛 철로마저 뜯겨 버렸다이제는 늙은 감나무들만이 빈터를 지키고 있다감꽃이 피고 땡감을 먹다가 앞니가 빠지고 홍시물이 소매에 떨어지고 검붉은 감잎 단풍이 겨울바람에 떨어지는 변화로 한 해를 재는 고향이었다.

 

살구꽃 핀 마을이란 시조를 지은 이호우(李鎬雨)도 청도 유천면 내호리(지금 청도읍 내호리출신으로 그의 시조비(時調碑)가 옛 철길을 따라 새로 생긴 청도 레일바이크가 놓여진 공원 지역 내에 서 있다

살구꽃 핀 마을

                               이호우

살구꽃 핀 마을은

어디나 고향 같다.

만나는 사람마다

등이라도 치고지고,

뉘집을 들어서면은

반겨 아니 맞으리.

 

 바람없는 밤을

꽃 그늘에 달이 오면

술 익는 초당(草堂)마다

정이 더욱 익으리니

나그네 저무는 날에도

마음 아니 바빠라.

옛 시조 문학의 맥을 이어가면서도 현대시조 시인에 속한 이호우의 시조는 목가적인 면을 띠면서 향토적이고 서정적일 뿐만 아니라낭만적이다이호우는 옛스런 말을 사용하면서도 그의 언어 선택은 감각적이고 구체적이다이호우는 이 시조 속에 배고픈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서로 정을 나누며 살던 고향의 정서를 보여주고 있다그는 서정적이고 목가적인 정취 속에서 포근하게 감싸주는 시골마을의 모습을 자신의 글을 통하여살구꽃 핀 자신의 고향의 정취를 묘사하면서 이웃 간에 나누었던 따뜻한 인정미를 그리고 있다

1955년에 발간된 『이호우 시조집』에 들어 있는살구꽃 핀 마을이 옛길을 찾아 길 떠나는 이의 마음을 적셔 준다청도군 유천면(현재 청도군 청도읍에 편입)지역과 밀양시 상동면 일부 지역이유천이란 지명으로 불린다는 것은 아마도 두 지역을 통틀어 묶는 행정 단위가 이전 시대에 있었던지 아니면 고래로부터 그 지역을 그렇게 불렀던지 했다고 생각된다밀양에서 청도로 배위량 길을 따라 걷는 순례를 하면서 걷는 길이 고달프고 힘들지만고즈넉한 저녁 나절에 밀양강의 정취를 느끼며 옛 영남대로의 길을 더듬으며 이런 역사와 문화의 향기를 찾아 가는 길은 생동감과 옛 정취를 느끼게 한다.  


배재욱 교수

<영남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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