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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00호]  2020년 8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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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믿음으로 한국 땅에 뛰어든 배위량 목사 (61)
[[제1701호]  2020년 8월  29일]

배위량의 제2차 순회 전도 여행(40)

대구에서 구미까지(4)

배위량은425(화요일아침에 일어나 그 전날인24일 대구를 출발하여 동명(당시는 칠곡군 칠곡)까지 여행한 순회전도 여정을 일기로 남기고 있다그는25일 일기의 제일 첫머리에여기 있는 동안 대구 근처의 한 지역에 잠시 들렀는데그곳은 서씨의 원고향이었다고 말한다배위량은24일날 대구를 출발하여 대구칠곡을 거쳐 밤에 동명에 도착해서25일에 구미 해평으로 갔기에 동명에서대구 근처의 한 지역으로 여행하기에는 상당히 무리가 있다요즈음 같으면 아침에 일어나 바람 쐴 겸 승용차로 동명에서 대구로 왔다가 금방 갈 수도 있겠지만당시의 교통수단으로는 동명에서 대구로 왔다가 다시 동명에서 그 여행에 관한 것을 일기에 기록했다고 보기는 어렵다아마도 배위량은422일 대구에 도착하여24일 동명으로 출발하기까지 대구에 머무르는 동안 대구 근처에 있는 서씨의 원고향인 어떤 장소를 찾아 갔던 것 같다그리고 그는 그 사실에 대하여25일 일기에서 기록했다배위량은422일에 대구에 도착하여 그날 경험한 일을22일 일기에 남긴 후24일까지는 일기를 쓰지 않다가25일에 일기를 쓰면서 대구에서 머무르던 동안에 경험한 바를 쓴 것 같다즉 배위량이25일에 동명에서 쓴 일기에여기 있는 동안에 등장하는여기는 칠곡군 동명이 아닌대구 칠곡을 의미한다.

대구에서 머문 대부분의 시간은 사람들과 종교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보냈다그래서 많은 책이 배포되었다는 배위량의 일기에 따르면 배위량은 대구에 머무르는 동안 많은 시간을 전도에 힘쓴 것 같다그리고 배위량은24일 정오에 대구에서 떠나 칠곡읍을 거쳐 동명으로 갔다배위량은“One Umnai - Chilkok - was passed through - a miserable little village without walls”라고 기록했다이상규는“One Umnai - Chilkok”칠곡이라는 한 읍내라고 번역하면서 위의 배위량의 일기를칠곡이라는 한 읍내를 지나갔는데()이 없는 아주 보잘 것 없는 작은 촌락이었다라고 번역한다배위량이 거쳐온 칠곡읍은 칠곡군청이 위치해 있는 왜관이 아니라 대구 칠곡이다즉 배위량은1893424일 대구를 출발하여 칠곡(당시는 칠곡군에 속한 칠곡)을 지나서 동명까지 갔다배위량이 제2차 순회전도 여행을 했던 당시 칠곡읍은 칠곡군에 속했지만, “1980년 칠곡면이 칠곡읍으로, 1981년 대구시가 직할시로 각각 승격하며 칠곡읍이 대구 북구에 속하게 됐다.”

당시 칠곡읍은 영남대로상의 교통의 요지였고 대구 북쪽의 관문으로 경상도 북부지역과 강원도로 가고자 한다면 지나야 하는 길목에 위치하여 수도였던 한양으로 향하던 역원이 설치되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독자적인 생활권이 형성되어 번창한 지역이었다.

칠곡이라는 이름이 역사서에 처음 등장한 것은11세기고려사에서 비롯된다.

고려 시대 당시 불렸던팔거현의 별호로 칠곡이라고 불렸다는 기록이 있다.

1593년 임진왜란 와중에 경상감영이 이 지역에3년 간 설치되기도 했다.

1640년 팔거현이 칠곡도호부로 승격되고 이후1895년 전국이23부제로 개편되며 칠곡은 대구부 관할이 됐다.

다음해인1896년에는 대구부에서 분리돼 경북도에 편입됐다.

1980년 칠곡면이 칠곡읍으로, 1981년 대구시가 직할시로 각각 승격하며 칠곡읍이 대구 북구에 속하게 됐다.

현재까지도 이 일대를 경북 칠곡군과 혼동하는 사람이 많다.

198171일 이전까지 이곳은 칠곡군이 맞았다.

특히칠곡이란 명칭의 정통성을 가지고 있는 칠곡군의 중심지였다.

칠곡지역이 대구로 편입된 이후 한동안칠곡이란 이름이 정식 행정구역 명으로 남아 있었지만, 1990년대 후반에 법정동 명과 동일하게 행정동 명이 변경되며 이 지역의 칠곡 지명은 사라지게 됐다.

하지만 과거 칠곡읍이었던 역사를 반영해 이 지역을 일컫는 관습적 지명으로 아직까지 남아 있다.

대구의 팔거역사문화연구회에서 펴낸 『대구칠곡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보면 대구 칠곡의 역사와 문화를 알 수 있다이 책은 대구칠곡의 역사와 문화유산』칠곡의 옛 명칭인팔거'를 이름에 넣은팔거역사문화연구회가 대구 칠곡의 잊히고 있는 역사를 재조명하기 위해 펴낸 책이다.” ‘팔거역사문화연구회는 『대구칠곡의 역사와 문화유산』에서 대구 칠곡의문화유산은 물론 변천사성씨와 인물지명 유래농경문화 등에 대해 풍부한 분량으로 정리한 향토인문지리서이다.” 팔거역사문화연구회에서 펴낸 『대구칠곡의 역사와 문화유산』에 대하여 대구 매일신문에서 보도된 내용을 보면 아래와 같다.

대구칠곡은 대구 북구의 강북지역을 가리킨다대구의 다른 지역과 구분해 얘기할 만한 문화유산을 많이 갖고 있다신라 때 조성된 구암동 고분군은 최근까지346기의 고분이 발견됐는데 대구에서 가장 큰 규모다역시 삼국시대 때 만들어진 팔거산성도 주목해야 할 유적이다칠곡도호부 관아와 칠곡사직단은 복원을 기다리고 있다대유학자 한강 정구(1543~1620) 선생이 대구 문풍을 진작시킨 흔적도 남아 있다.'

배재욱 교수

<영남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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