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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내 길의 한 줄기 빛 이만영 장로 (9)
[[제1702호]  2020년 9월  5일]

아버지가 된 소년의 꿈(9)

 

 

 

고향에서의 옛 기억들

-타향살이와 하나님의 섭리

 

전쟁이 끝나고 집안도 어느 정도 수습되고 나서야 비로소 이만영 장로는 고향을 떠나게 되었다학교로 돌아가기엔 나이도 너무 많고 돈도 없었다고민 끝에 그는 충북 보은으로 가서 양돈·양계 사업을 하게 되었다타고난 성실함과 근성 하나만 믿고 그 사업에 뛰어들었다하지만 경험 없이 뛰어든 축산업이 잘 될 리 없었다결국 그는 부채만 지고 사업을 접고 말았다첫 사업은 쓰라린 실패의 경험을 안겨주었다하지만 그때의 실패에서 그는 경험이라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산을 얻었다.

그 후 이만영 장로는 돈을 벌기 위해 서울로 상경했다먼 친척의 회사에 연이 닿아 그곳에 취직이 된 것이다예전에 부산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일은 어렵지 않았다타고난 성실함으로 매일 열심히 일하면서 빚도 갚고 대한신학교에 입학해서 다시 공부도 시작했다도저히 배움에 대한 열정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어렸을 때 품었던 남을 돕는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는 꿈도 접을 수 없었다주경야독은 힘들었지만 내일의 나를 생각하면서 열심히 공부했다고 이만영 장로는 말한다그러기를2년여 또 일이 일어났다군대 영장이 나온 것이다더 이상 학교를 다닐 수 없게 된 것이다결국 대한신학교를 중퇴하고 입영열차를 타야 했다

돌이켜보면 그에게는 목회자의 길을 갈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하지만 그때마다 예기치 않은 모퉁이에서 사건들이 일어났고 그때마다 다른 길로 이끌려 갔다이만영 장로는 그때는 그것이 원망스럽고 좌절이라고 느꼈지만 나중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나를 위해 목회자가 아닌 사업가의 길을 예비해 놓고 계셨던 것이다.’ 돌아가는 길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는 곧은 길이었다.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그 길을 가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하다모든 것을 예정하시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또 다른 계획 앞에 그는 믿음으로 반응해야 했다그는 요즘 장래를 두고 고민하는 청년들을 만나면 꼭 해 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지금 당신은 길을 못 찾아 방황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길 위에서 열심히 걷고 있는 것이다하루하루 묵묵히 성실하게 걷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다다른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그 시절의 방황하는 청춘인 자신에게도 누군가 그런 말을 해 주었던 것 같다그런 마음으로 그는 다시 학업과 일을 정리하고 입대했고군 생활도 신앙 가운데 잘 할 수 있었다이만영 장로는 엄동설한의 추운 겨울 논산훈련소에 입대하였다군사 기초훈련을 마치고 강원도 횡성에 있는 제1통신단에서 통신 훈련을 받았다그리고 춘천에 있는 통신부대에 배치되었다.

당시 부대에는 교회가 없어서 부대 근처 민간 동네의 공회당을 빌려서 부대 내 교인들과 함께 인근 민간 부락을 전도하며 개척교회를 시작하였다강원도 춘성군 신동면 송암리에서 군인과 민간인을 합쳐 약5,60여 명이 매주 예배를 보았는데 부대에서 신망 좋은 장교1명과 사병들이 편의를 봐주어송암리교회라는 간판을 걸고 부대가 원주로 이동할 때까지1년여 동안 교회가 자립할 수 있도록 힘썼다.

원주로 이동해서는 제통신단 본부 군목과 군인 교회로 배치되어 군종 하사관으로 김기웅 군목과 이순석 군종 하사관박태희(후에 성결교단 성락교회 원로목사성결교단 전 총회장군종 하사관과 함께 활발하게 군인교회 운영에 참여하였다원주에서2년여 간 군종 활동과 인근 원주 민간 교회나환자촌과 유대를 가지며 모범적 군종 활동을 하다가3년간의 군 의무를 마치고 제통신단에서 제대를 하게 되었다당시 제1통신단 교회에서 이만영 장로의 전도로 예수를 믿게 된 고동주 전 통영시장이 현재 통영에서 교회 장로로 시무하고 있는데 몇 년 전 통영에서 반갑게 상봉한 일도 있었다

이렇게 이만영 장로는 일제하와 한국전쟁 시기의 고통스러운 나날들 속에서 나름대로의 꿈을 위해 달리고 있었다그리고 그 고비들마다 한 줄기 빛으로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믿음의눈으로 따라갈 수 있었다.


정봉덕 장로

<염천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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