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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내 길의 한 줄기 빛 이만영 장로 (10)
[[제1703호]  2020년 9월  12일]

믿음의 터전인 도림교회(1)

신앙으로 꽃피운 무대

이만영 장로가 살아온 삶의 두 번째 무대는 도림교회이다교회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형성한 공동체이다여기에는 각 개인의 사명이 하나의 공통의 사명으로 연계되어 교회 나름대로 사명을 지니게 된다따라서 전체로서의 교회의 사명이 있고 그 안에서 각자의 사명이 따로 존재하지만그들의 사명은 교회의 사명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도림교회에서의 활동을 통해 살펴본 이만영 장로의 모습은 도림 동산을 가꾸는 행복한 일꾼으로 확고한 청지기 정신을 지니고 있었다.그는 언제나 개인적인 신앙보다는 교회 전체의 상황을 고려한 공동체적인 신앙을 갖고 있었다이만영 장로는 도림교회에서 무엇보다 목회자에 대한 섬김을 최우선으로 하는 동시에 교회 구성원 전체를 아우르는 관심과 애정을 보여 주었다특히 목회자에 대한 섬김의 자세에 관해서는 유의웅 목사의 직접적인 증언이 중요하다.

 

-유의웅 목사의 증언

이만영 장로가 도림교회를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특히 목회자에 대한 섬김의 모습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본 사람은40여 년 이상을 한결같이 지내 온 유의웅 목사이다유의웅 목사는 이러한 이만영 장로의 모습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남겼다여기에서는 유의웅 목사의 이야기를 단락만 구분하여 그대로 기록하였다.

이만영 장로님이 목회자에 대한 섬김을 최우선으로 하는 부분에 대해 몇 가지 얘기하겠습니다이분은 장로님으로서 이 땅에서는 목사님을 하나님 다음으로 생각하시는 그런 신앙을 가지고 계세요그래서 제가 서른네 살의 젊은 나이에 담임목사가 되었지만저보다 일곱 살이 많은 분이신데도 언제나 교회의 대표자교회의 책임자교회의 어른으로 저를 대하시면서 나이를 따지거나 하는 일은 없으셨어요.”

그 다음에 제가 몇 년 시무를 하니까 장로님이 처음으로 당회에서 유학 얘기를 꺼내셨어요사전에 전혀 이야기가 없었는데 목사님이 더 나이를 먹기 전에 미국에서 공부하고 오셔야 목사님도 목회를 잘하실 것이고 우리 교회가 잘 발전할 수 있으니 목사님이 유학을 가는 게 좋겠다고 하셨지요그래서 장로님의 제안으로 그 안이 성안이 되어서1978년에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올 수 있었어요제가 위임 목사가 된 지4년 정도밖에 안 되었는데 이 장로님이 그런 제안을 하신거죠.”

또 교회 건축과 같은 중요한 교회 일을 할때 장로님과 의논을 하면 언제나 긍정적으로 수용을 하시고 목사님께서 해보신다면 제가 협력을 하겠으니 해보시라고 하셨어요새 성전교육관봉사관을 지을 때 장로님이 늘 앞장을 서시고 건축위원장을 맡으셔서 적극적으로 도와주셨지요그래서 순조롭게 모든 결정이 잘 되어 추진이 될 수 있었죠장로님은 제가 교회 일을 추진하는데 많은 힘이 되어 주셨어요.”

또한 장로님은 재정부장을 여러 해 하셨어요다른 직분은2, 3년마다 바꾸고 하였는데 우리 이만영 장로님은 재정에 대한 책임도 지고 재정 관리를 잘 하시니까 여러 해를 꾸준히 하셨어요교계 활동을 잘 하고 계시니까 큰 교회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들으시고 그래서 예산 항목 가운데 목회 활동비를 책정해 주셔서 제가 임의대로 구제도 하고 직원도 도와줄 수 있는 예산을 꽤 많이 확보해 주셨지요그래서 제가 활동을 할 때 부족함이 없도록 해 주셨어요이것도 목회자에 대한 섬김의 자세가 남다르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분은 교회 일뿐 아니라 교계 일에 대해서도 담임목사가 노회나 총회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는 것에 대해서 아주 관심이 많으셨어요늘 길을 열어 주셨어요이만영 장로님은 영남 지도자들이 모이는 범양선교회 추천으로 총회 회계가 되셨어요신임이 있고 재력도 있고 하니까 추천을 받으셨지요총회장님을 잘 보필하시고1년 지나고 끝나게 될 때 이 장로님이 총회장과 임원들을 대접하시면서 저를 그 자리에 참석하도록 부탁하셨어요당시 저는 그런 자리에 참석할 위치가 못 되었는데 장로님이 저를 도림교회 담임목사로 그분들에게 소개해 주셔서 그분들을 알게 하고 관계를 맺게 해서 나중에 총회에 진출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신 것이지요.”

또한60주년 기념성전을 다 짓고 나서 그렇게 부채가 많지 않았어요몇 천만원 정도가 있었어요이 장로님이 그것을 해결하셨죠당시 도림교회 안에 이층 벽돌집으로 된 목사관이 있었어요그 이층집의 중간 층 반을 막아서 밖에서 올라가게 하고 안에서 들어가게 하여 부목사 두 분의 전세금을 빼서 교회 빚을 갚고 그 목사님 두 분을 목사관에 들어오게 하고 저는 이만영 장로님 사시던 여의도 아파트에 들어와 살라고 하시는 방법을 사용하셨어요장로님은 거기 오래 사시다가 대방동으로 이사를 가시면서 그 집을 내놨는데 안 팔리고 비어 있는 차에 저보고 거기서 살면서 관리비만 교회에서 부담하는 조건으로 그 집에서 살라고 하셨죠교회로부터 전세금 같은 것도 받지 않았어요그때에 장로님 생각은 잠깐 와서 살라고 하신 게 아니라 제가 은퇴한 이후에도 이 집을 사용할 수 있도록 그냥 바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라고 하신 거예요제가 목회한 지30주년 되었을 때이 장로님이 중간에 그 집을 반값으로 교회에 팔고 그때 당시12천만 원을 받았는데 그게 마음에 너무 거리낀다고 하시면서 다시 그 돈을 내 놓을 테니까 그 돈은 유 목사님 후임이 오시면 그분이 살 수 있는 집을 구입할 적립금으로 저축을 하고지금 살고 있는 집은 유 목사님 은퇴 이후에도 사시도록 드리기로 생각하고 있으니 은퇴하신 이후에 사시도록 하자고 하셨어요그리고 당회에서30주년 기념으로 목사님께 드리자고 공식적으로 결의를 했어요이 일은 전국에 하나 있을까 말까 한 일이 아닐까 생각해요장로님이 갖고 계신 교회나 교역자에 대한 기념비적인 헌신이고 사랑이며 섬김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지요그리고 은퇴한 이후 지금까지도 여전히 한결같은 사랑으로 저를 대하고 계시지요.”

이와 같은 이만영 장로의 목회자에 대한 섬김의 자세는 유의웅 목사와의 각별한 관계를 통해서 잘 확인해 볼 수 있지만,실제로는 그 이전 유 목사의 아버지 유병관 목사와의 개인적인 관계를 통해서 시작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이만영 장로는 유병관 목사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그의 아들인 유의웅 목사에게도 한결같이 이어가고 있었던 것이다장로로서 기꺼이 목회자를 섬기는 모습은 우리 교계의 아름다운 대표적인 모범이라 할 만한 일이다또한 그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교회를 섬기는 모습에 있어서도 대한민국 대표 장로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었다.


정봉덕 장로

<염천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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