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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변재만 회장 쓰러지다 <15>
[[제1194호]  2009년 8월  22일]

 

조규식을 전적으로 신임하는 변재만은

조규식을 친 아들처럼 대한다


[지난주까지의 줄거리]

대동의 강성노조가 조규식의 탁월한 리더십으로 평온해지자 변재만 회장의 최대의 골칫거리 하나가 해결됐다. 그런데 변재만은 위암 말기라는 판정과 더불어 시한부 인생으로 현대아산병원에 입원한다. 말기 암의 지독한 통증과 심적 갈등으로 변재만은 임원진을 들볶는다. 그러는 가운데 임원진 전원이 집단으로 병문안을 온 자리에서 변재만은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조규식만 남아있으라고 분부한다.


가까이 다가온 조규식을 향해 변재만은 조규식의 손을 덥석 잡는다. 그리고 다정한 눈빛으로 조규식에게 묻는다.

 

“규식아, 너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라고 했지?”

“예, 회장님.”

“너도 알다시피 내가 앞으로 살 날도 며칠 안 남았다.”

“회장님, 무슨 그런 약한 말씀을 하십니까? 회장님은 강인한 분이시고 의지력이 대단한 분이십니다. 왜 스스로 생을 포기하시겠다는 나약한 생각을 하십니까?”

“네가 나를 위하려는 생각이 고맙기는 하다. 그러나 내 병은 내가 제일 잘 안다.”

“회장님, 사시겠다는 의지만 있으시면 암 그까짓 것 반드시 이겨낼 수 있습니다. 오늘의 대동건설을 맨 주먹으로 키우신 회장님이 아니십니까? 마음을 굳게 가지십시오.”

“규식아, 지금은 나가 말이다. 모든 사람들이 상투적으로 하는 위로의 말 같은 것 들을 여유가 없다. 나가 이 자리에 너만 남으라 한 것은 너에게 긴히 부탁 할 말이 있어서 남으라 한 것이다.”

 

“회장님, 저같은 하찮은 놈에게 무슨 부탁의 말씀이 있다는 것입니까? 부탁이 아니라 지시 명령을 내리십시오. 회장님의 어떠한 명령에도 이 목숨 다할 때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너의 그러한 맘을 나가 모르는 바가 아니여. 정말 고맙다. 그런데 규식아!”

“예, 말씀하십시오.”

“지금부터 나가 하는 말을 너 명심하고 들어야만 한다.”

“예, 회장님.”

“요즘 나의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어 이제는 통증이 하루에도 서너 번씩 온다. 암의 통증이란 참으로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이 지독하다.”

 

조규식은 변재만의 야윈 모습과 진통으로 고생하여 쏙 들어간 두 눈을 봤을 때 자기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그렇게 건강하셨던 분이 한두 달 사이 뼈와 가죽만 남다니……. 그러나 자신이 회장님을 위해 지금은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기만 했다.

 

“규식아! 그래서 하는 말인데 김상태 박사도 입원할 때 길게 잡아서 나의 생존할 기간을 6개월로 잡았다. 그렇다면 입원한 지도 두 달이 지났느니 앞으로 4개월쯤 남은 인생이다. 나는 며칠 전부터 생각을 해 봤는데 지금 죽으나 4개월 후에 죽으나 무엇이 얼마나 다르겠느냐 하는 결론을 내렸다.”

“회장님, 결코 4개월 내로 돌아가시지 않습니다. 지금 의료진도 최선을 다해서 회장님의 치료에 임하고 있지 않습니까?”

“암이라는 게 초기에는 어느 정도 치료가 가능할지는 모르겠으나 나처럼 말기 암환자는 미국에서 아무리 공부하고 암의 권위자라 하더라도 고칠 수 없다는 것을 내가 잘 안다. 지금 의사들이 할 수 있다는 것은 몇 달 더 내 생명을 연장하는 것에 불과하다.”

 

조규식은 변재만의 생을 포기한 듯한 말투에 가슴이 찢어지게 아팠다. 그렇게 패기만만한 양반이 왜 나에게는 이렇게도 약한 모습을 보이실까 하는 생각이 들자 왈칵 눈물이 쏟아진다. 조규식의 억제하려는 눈물방울은 어찌할 새도 없이 잡았던 변재만의 손등에 떨어졌다. 조규식의 눈물이 자신의 손등에 떨어지자 변재만은 규식이가 자신의 아들이었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러면서 규식에게 말한다.

 

“야, 이 못난 놈, 울기는 왜 울어? 죽어가는 나도 울지를 않는데…….”

“회장님, 죄송합니다. 회장님 앞에서 이렇게 약한 모습 보인 것을 용서하십시오.”

“괜찮다. 그런데 아까 너에게 부탁이 있다고 했지?”

“회장님이 어떻게 저에게 부탁의 말씀을 하신다는 겁니까? 저는 회장님의 부하요 참모입니다. 저에게 명령을 내리십시오.”

“역시 너는 군대생활이 몸에 베인 사람이다. 너를 쪼깨 일찍 만났다면 대동건설도 지금의 사세보다 훨씬 큰 규모로 성장시켰을 거다.”

 

“과찬의 말씀입니다.”

“군에는 아직도 현역신분으로 너와 친한 사람이 많이 있냐?”

“많이 있습니다. 아직 동기생 중에서 현역으로 군단장을 하는 친구도 있고 진급이 조금 늦은 친구 중에는 사단장도 있습니다. 그리고 과거 저와 친했던 후배들이 현역으로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 됐다.”

“회장님, 현역 군인과 무슨 연관된 지시사항이라도 있으신 것입니까?”

“응, 관계가 있다. 그래서 너를 남으라고 한 것이다.”


장석윤 장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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