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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변재만 회장 쓰러지다 <16>
[[제1195호]  2009년 8월  29일]

 

변재만은 조규식에게

자네 육사 나오지 아니했느냐고 다시 묻는다


“회장님, 군대와 연관된 사항이라면 무엇이든지 저에게 지시하십시오. 비록 대령으로 예편했지만 아직도 현역으로 근무하는 친한 친구가 많습니다.”

“규식아, 너 군에서 권총하고 실탄 3발만 빠른 시일 내로 구해 오너라.”

“예? 회장님…?”

조규식은 방금 한 변재만의 말에 그의 귀를 의심했다. ‘내가 잘못 알아들은 것이겠지. 이 상황에서 권총하고 실탄 3발이 왜 필요하단 말인가?’

 

“규식아, 위암 말기의 통증은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다. 이런 통증이 하루에도 세네 번씩 와서 나를 괴롭히고 있다. 이제는 웬만한 진통제 주사를 맞아도 진통이 되지를 않는다.”

“회장님, 통증으로 고통 받는 것은 알겠는데 권총은 왜 필요하신 겁니까?”

“니가 구해 온 권총으로 깨끗이 자살하는 것이 가장 편할 것 같아서 그렇다.”

조규식은 어언 2년 가까이 변재만을 그의 상사로 모셔왔기 때문에 회장의 성격을 잘 안다. 한 번 변재만이 결정하고 지시를 내리면 아무리 부당하고 비합리적 지시사항이라 하더라도 부하의 입장에서 회장의 지시가 잘못된 것을 지적 할 수가 없다. 일단은 무조건 그 지시를 따라야만 한다.

 

“회장님, 알겠습니다. 군에 있는 친구를 통해서 권총하고 실탄 3발을 구해 오도록 하겠습니다.”

“고맙다.”

“회장님, 그런데 한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무슨 질문이냐?”

“권총을 구해 오면 신체의 어느 부위를 쏴서 자살하려고 하십니까?”

“생각 중인데 아무래도 심장을 쏴서 자살하는 것이 가장 편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규식아, 너 빨리 구해와야만 한다. 한시가 급하다.”

“회장님, 일주일의 시간적 여유는 주십시오.”

 

“일주일이나 기다려야만 하냐?

“요즘 총기 안전사고가 빈발해서 총기 관리가 굉장히 엄격합니다.”

“나도 그럴 거라 생각하고 너에게 권총을 구하는 데 쓰라고 교제비를 준비했다.”

“교제비라니요? 그런 것 필요 없습니다.”

변재만은 지난 번 심의섭 상무에게 지시해서 미리 준비한 100만원짜리 보증수표 10장을 거침없이 조규식에게 내놓으면서 당부한다.

“느그 육사 동기생 만나거든 이 돈으로 술이나 한 잔 하그라.”

 

“회장님, 이렇게 많은 돈 필요 없습니다. 그리고 노조관리를 위해 저에게 주시는 비자금도 사용하지 않고 남은 돈이 많이 있습니다.”

“아니다. 사람이 어려운 부탁을 할 때는 반드시 술 한 잔 하고 부탁하는 것이 처음부터 일을 그르치지 않도록 하는 법이다. 이 돈 가지고 모자라면 내가 경리부서에 지시해서 얼마든지 너에게 더 지원토록 하겠으니 돈 걱정은 하지 말고 다만 권총을 일주일 내로 확실히 구해 오라는 것이다.”

“회장님, 알겠습니다. 꼭 권총을 구해서 가져오도록 하겠습니다.”

“시간도 늦었는데 이만 가봐라.”

 

조규식은 정말 심정이 착잡했다. 얼마나 통증이 심하면 권총 자살까지 생각하겠느냐 하는 생각이 들자 조규식도 가슴이 찢어지게 아팠다. 대동건설의 모든 임원진들이 변재만을 독재자라 하고 무식한 인간이라고 뒤에서 욕한다. 그러나 조규식은 변재만을 남자 중의 남자로 생각하고 그의 과감한 추진력에 늘 존경을 표해 왔다. 변재만이 고통에 못 이겨 권총을 구해 오라는 그의 심정도 이해할 것만 같았다. 조규식이 변재만을 이런 상황 하에서 이해한다는 것은 좀 엉뚱한 방향에서의 이해였다.

 

그것은 어떤 점에서는 변재만과 조규식의 사생(死生)관에 공통점이 있다는 생각이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그 많은 재산을 남겨 놓고 얼마 남지 않은 시한부 인생이 됐을 시 조금이라도 더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을 칠 것이다. 그리고 온갖 연약한 모습을 보이고 온갖 추태를 보이면서 의료진에게 생명을 구걸할 것이다. 그런데 변재만은 자신의 병이 치유불능이라는 것을 알고 깨끗이 체념하고 권총 자살로써 생을 마감하겠다는 호탕한 생각이 조규식의 생각과 일맥상통한다는 점이다. 조규식도 늘 그러한 생활을 영위했다. 인생의 과정 속에서 상관이나 동기생에게 수모를 당했으면 생명을 건 대결의 장으로 나서는 그였다. 그러기 때문에 그는 장군 진급도 하지 못했으나 한편으로는 모두가 조규식을 두려워하고 함부로 그를 대하지 못했던 것이다.

 

조규식은 변재만이 생을 마감하면서 자신을 신임하고 인생 최후의 결단의 수단을 자신에게 의뢰한 것을 도리어 영광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조규식은 그렇게 열심히 사업에 전념해서 거대한 부를 축적하고 인생의 최후를 그렇게 허망하게 마감하게 됨을 생각할 때 너무나 허무함을 느꼈다. 조규식은 차마 그대로 집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그는 그가 살고 있는 개포동 주공아파트 근처에 저녁이면 차려 놓는 포장마차에 들렀다. 포장마차 주인이 조규식을 반갑게 맞이한다.

 

“어서 오십시오.”

“포장마차 아저씨 오랜만이요.”

“아니 장군님 아니십니까?”

포장마차 주인하고는 조규식이 현역으로 있을 때부터 아는 사이이다. 그가 연대장으로 있으면서 서울에 나와 출출하면 코딱지 만한 그의 아파트에 가기 전에 이곳 포장마차에 들러서 한 잔 하던 곳이다.


장석윤 장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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