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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변재만 회장 쓰러지다 <17>
[[제1196호]  2009년 9월  5일]

 

조규식은 육사 동기생인

김기철 장군과 만날 약속을 한다


“주인아저씨, 여기 소주 한 병하고 닭똥집 안주로 하나만 주시오.”

“예, 알겠습니다. 장군님.”

“여보, 나 장군으로 예편하지 않았소. 장군이라고 부르지 마시오.”

“그러면 뭐라고 불러야 합니까?”

“당신이 알아서 적당히 부르시오.”

“저는 사장님을 장군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제일 편한데요.”

“장군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요. 실력도 있어야만 하고 상급자에게 인정도 받아야만 하고 부하들의 신임도 받는 통솔력도 갖춰야만 장군이 되는 거요.”

“저는 사장님께서 대령 계급장을 달고 계실 때부터 알고 지냈지만 사장님 같은 분이 장군이 안 되시면 누가 장군이 되겠습니까?”


조규식이 장군이라고 자신을 호칭하지 말라 했더니 이번에는 그 흔해빠진 사장이라고 부른다. 자신은 사장이 아니고 상무라고 정정해서 부르라 하는 것이 귀찮아서 조규식은 그냥 묵과했다.


“아저씨, 말씀은 고맙지만 나는 장군이 될 자격이 처음부터 없던 사람이오.”

“그나저나 오늘 여기 들어오실 때부터 침울한 표정이신데 무슨 좋지 않은 일이라도 있으신 것입니까?”

“세상이 너무나 허무하다는 생각이 드니까 내 맘이 착잡해서 내 안색이 그렇게 보이는 것 같소.”

“사장님, 술 한 잔 드시고 모든 허망한 것, 근심 걱정을 다 풀어버리십시오.”


조규식 눈에는 저 포장마차 주인은 아무런 근심걱정이 없는 사람으로 보였다. 조규식은 맘 속으로 생각한다. 변재만 회장이 세상 떠나면 나도 그 날로 회사를 떠나야지. 아무리 자신이 대동건설에 더 있고 싶어도 기득세력이 자신을 그대로 남아있으라고 할 리가 만무하다는 것을 잘 아는 조규식이었다. 대동건설을 그만 두면 자기도 속 편하게 포장마차 주인이나 될까 하는 생각을 해 보면서 혼자서 쓴 웃음을 짓는다. 별로 술 맛이 나지도 않았다. 그러나 소주 한 병을 비운 조규식은, “아저씨, 여기 얼마요?”

  “아니 사장님 벌써 가시게요?”

  “잘 마셨소.”

  “6천 원입니다.”

 

조규식은 지갑에서 10만 원짜리 수표 한 장을 내더니 여기 술값 받으시오 한다. 포장마차 주인 박씨는 거스름돈 9만 4천원을 내놓아야 하는데 난감해 한다. 아직 초저녁이어서 매상이 없어서 잔돈이 그만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규식은 박씨에게 “됐소. 나머지는 이 다음 내가 다시 들를 때 주시오” 하고 포장마차를 떠난다. 문득 그는 주기영이 생각났다. 조규식은 겉잡을 수 없이 맘이 허전했다.

 

조규식은 그래도 변재만보다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자위해 본다. 변재만에게는 겉으로는 충성을 다 하는 사람이 주변에 허다하지만 진정한 친구는 하나도 없다. 그러나 나는 맘이 허전할 때 속맘을 툭 털어 놓을 친구인 주기영이 있지 않으냐. 돈보다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를 느끼며 조규식은 자신을 행운아로 생각한다. 포장마차를 나온 조규식이 가로수의 낙엽을 밟고 집으로 돌아가는 뒷모습에서 쓸쓸함이 더했다.

 

다음 날 아침 조규식은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육사 동기생인 김기철 장군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기철과 조규식은 육사 생도 시절부터 친한 사이였고 김기철은 중장으로 지금 군단장으로 재직 중이다.


“김 장군! 나야, 조규식이야.”

“조 형 이거 웬일이야. 아침부터 전화를 하게.”

“김 형, 급하게 좀 만날 용건이 생겨서 그러는데… 시간 좀 내 주게.”

“조규식 각하의 엄명인데 만사를 제쳐놓고라도 만나야지. 그런데 무슨 급한 일인가?”

“전화로는 이야기 할 수가 없고 김 형을 직접 만나서 상의할 사항이네.”

“오늘 저녁은 내가 선약이 있어서 안 되겠고 내일 저녁식사라도 함께하면서 만나면 어떻겠는가?”

“좋지. 꼭 그렇게 시간을 내줬으면 고맙겠네.”

“그러면 내일 저녁 서울로 내가 나가지.”


조규식은 김기철과 만날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전화를 끊었다. 조규식은 영 맘이 찜찜하다. 퇴근 시간이 되자 모든 임원진은 평상시와 똑같이 변재만의 단체 병문안 때문에 버스에 올라탄다. 조규식도 말없이 버스 뒷쪽에 혼자 자리 잡고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눈을 감는다. 병원에 도착하자 임원진 일행과 함께 뒤따라가는 조규식이었다. 변재만은 평상시대로 임원진의 병문안 인사를 받자 “임원진 일동은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들 가시오. 그리고 조규식 자네만 좀 남아 있게”라고 지시한다.

 

모두들 눈이 휘둥그래져서 혼자만 남아있으라는 조규식을 의아하게 쳐다 본다. 모든 임원진들은 변 회장과 조규식 사이에 엄청난 일이 진행되고 있다는 예감은 하지만 그 엄청난 일이 무슨 내용인지는 전혀 짐작조차 하지 못 한다. 김재순 부회장도 불안 한 예감을 느낀다. 혹시 변재만이 회사의 후계자로 조규식을 생각하고 지금 은밀히 일을 꾸미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한다. 갑자기 자신의 위치가 불안 해지는 느낌을 갖는 김재순이다.


장석윤 장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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