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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자살 방조죄 <1>
[[제1198호]  2009년 9월  19일]

 

자살용 권총을 구하기 위하여 김기철 장군을 만나는 조규식


한편 조규식은 자신이 대동건설의 사장으로 임명된 것도 모르고 그의 사관학교 동기생인 김기철 장군을 만나기 위해 고급 일식 집 구석진 방에 예약하고 먼저 와서 기다렸다. 김기철 장군은 약속시간 정각에 모습을 나타냈다. 그는 조규식을 향해 반갑게 인사말을 던진다.


“야, 규식이 자네 여전히 건강하게 보이구만. 그래 대동건설의 핵심 임원으로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네. 그곳 회사 생활은 어떠한가?”

“군대 생활보다는 활기차지 않지만 그럭저럭 지낼 만하네.”

“자네는 그래도 행운아라고 생각하게. 동기생 중에서 아직 한참 활동할 나이에 직업도 없이 백수로 놀고 있는 친구들이 얼마나 많은가.”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그래 천하의 조규식 형님께서 나를 만나자고 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 사람아, 우선 자리에 좌정하고 식사라도 한 후에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세.”

“조형하고 이렇게 식사한 지도 몇 년 만인가? 세월 참 빠르게 흐르는구먼.”

 

“그러게 말일세. 강원도 원통리에서 우리 대대장할 때 그때 자주 함께 소주 마시던 생각이 나네.”

“그때만 해도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이었지.”

“김형, 따끈한 일본 사케에 회를 시키면 어떻겠는가?”

“나야 좋지. 그런데 조형이 비싼 회 시킬 능력은 있는가?”

“대한민국 삼성 장군, 군단장님 식사를 모시는데 그 정도 준비 안하고 나왔을 리가 있겠는가?

“그래? 좋았어. 오늘은 코가 비뚤어질 정도로 함께 마셔보세.”


김기철. 참으로 소탈한 친구였다. 사관학교 동기생 중에서 좀 덜 떨어진 친구들은 별을 3개쯤 달면 목에 잔뜩 힘을 주고 대령으로 예편한 동기생을 하급 부하쯤으로 생각하고 대하는 친구들도 있다.

그러나 김기철은 마치 함께 사관생도 시절로 돌아간 기분으로 조규식을 대한다. 이런 김기철을 조규식은 늘 존경했고 좋아했다.

조규식은 이번 정기 장군 진급에 대해서 묻는다.

 

“김형, 이번 장군 진급에서 별 하나 더 달고 군사령관으로 나가야지?”

“어림도 없는 소리 하지 말게. 나같은 놈 별 3개 달고 예편하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 해야 할 처지이네.”

“무슨 겸손의 말을 그렇게 하는가? 자네야 고등군사반, 육군대학 정규과정에서 일등으로 나오지 아니 했는가. 그리고 미국 참모대학도 나왔고……, 자네만큼 한국군에서 작전(作戰)통으로 알려진 장군도 없을 것이네.”

“아니야, 후배들이 기똥차게 밀고 올라오고 있어. 군 사령관, 어림도 없는 소리네. 조형, 진급 이야기는 그만하고 자네가 나를 보자는 용건이나 들어보세.”

“김형, 사실은 요 며칠간 나에게 엄청난 고민이 생겼네.”

“조형의 고민이라……. 자네 아들 때문인가? 아들의 보직 때문이라면 내가 책임지고 해결해 주지.”

 

“육사 나와서 전방에서 지금 대위로 근무하는 내 아들놈이야 자기 앞길 자신이 알아서 개척해 나가면 되는 것이지 무엇이 고민거리가 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무엇이 고민거리란 말인가?”

“김형, 나 권총 하나만 구해 주게.”

“뭣이? 자네 권총이 필요하다고 했나?”

“그렇다네.”

“무엇 때문에?”


조규식의 성품이 원래 권모술수를 구사하지 못하는 인간이다. 따라서 그는 권총의 용도를 우물쭈물 거짓말로 넘길 만한 재간이 없는 친구였다. 설사 그럴 듯한 거짓말을 꾸며서 권총을 빌린다 하더라도 그의 양심이 친한 친구를 속이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솔직하게 권총의 용도를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양반이 권총으로 자살하기를 원해서 그러하네.”

“권총으로 자살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누구인데?”

“사실은 내가 모시고 있는 대동건설 회장님이시네.”

 

김기철은 여기까지 이야기를 듣자 자기도 모르게 실소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금 이 조규식이 술 한 잔 하더니만 나에게 실성한 농담을 하고 있는 거다. 실성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오랜만에 만난 동기생 앞에서 자신이 모시고 있는 회장이 권총으로 자살하고 싶다 해서 권총이 필요하다고 자기에게 요구할 수가 있겠는가? 여기까지 생각이 정리되자 김기철은 조규식을 향해 “이 사람아, 농담 그만하고 우리 기분 좋게 술이나 마시자고”라고 말한다.

 

“김형. 농담이 아닐세. 내 이야기 좀 더 들어보게나.”

“조형. 농담 그만 하자니까 그러네. 내가 자네 농담 듣자고 이 자리에 나온 줄 아는가?”

“김형. 사실은 우리 회장님이 위암 말기로 오늘 내일 하는 상황이네.”

“아니, 목숨이 오늘 내일 하는 사람이 굳이 권총으로 자살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아무튼 변재만의 생각을 일반 정상인에게 설명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정상인인 김기철도 변재만의 생각을 정상인의 각도로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장석윤 장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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