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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자살방조죄 <3>
[[제1200호]  2009년 10월  3일]

 

자신이 사장이 된 것도 모르고 출근한 조규식


김기철은 조규식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한다.

“규식아, 모처럼의 너의 부탁을 내가 들어주지 못했으니 오늘 저녁식사 값은 내가 내지.”

“기철이 너 무슨 말을 그렇게 섭섭하게 하고 있어. 우리 회장이 너하고 식사 함께하라고 백만 원짜리 수표 10장을 주더라.”

“뭣이? 저녁식사 값으로 천만 원을 받았다고?”

 

“너를 최고의 VIP로 대접하라는 거였지.”

“세상에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에게 천만 원짜리 저녁식사를 사겠다는 사람은 아직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그 영감 정말 돈으로 권총을 구하고 싶어 하는 모양인데 일억 원을 누가 준다 해도 자살용으로 권총 빌려 줄 사람은 없다.”

 

아무튼 조규식의 권총을 구하겠다는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대개의 경우 무언가 부탁을 했는데 그 부탁이 거절당했을 때는 부탁한 사람이나 부탁 받는 사람이나 어색해진다. 그러나 김기철과 조규식 사이에서는 전혀 이러한 서먹한 느낌이 없었다. 그만큼 거절하고 거절당한 데 대한 섭섭한 감정 따위나 미안한 감정 따위를 의식하는 두 사람의 사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 날 저녁, 둘은 오랜만에 만나서 기분 좋게 식사와 술 한 잔을 하고 헤어졌다.

 

회사에 충격적인 인사 이동이 있었다는 것을 전혀 모르는 조규식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아침 일찍 회사에 출근했다. 마주치는 회사 직원들이 평소와 다소 다른 표정으로 조규식을 향해 인사를 한다.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전화벨이 울린다. 조규식은 아직도 전화받는 태도에서 그가 과거에 직업군인 출신이라는 경력을 숨길 수 없는 군대식 전화통화의 버릇이 남아있다.

“조규식 상무입니다.”

“사장님, 최칠규 전무입니다.”

“전무님, 전화 잘못 거신 것 같습니다. 전 사장이 아니고 조규식 상무입니다.”

 

최칠규 총무담당 전무는 실질적으로 조규식의 직속 상급자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노조의 총체적 관할은 총무담당 부서의 소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총무담당 최칠규 전무가 조규식을 다짜고짜 사장이라 부르니 조규식으로서는 전화를 잘못 건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자신이 기획실장으로 승진하고 사장급 직위에 임명된 것을 까맣게 모르고 출근한 조규식에 대해서 최칠규는 불연듯 존경의 마음이 우러나온다. 조규식, 저 친구 결코 죽어가는 회장에게 알랑거려서 진급운동을 할 친구는 아니다. 틀림없이 이번 인사는 변 회장 독단으로 결정했을 거라는 신념이 들었다. 권모술수를 쓸 줄 모르는 조규식이 기획실장 겸 사장이 된 것은 차라리 잘 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생각하는 최칠규였다. 최칠규는 조규식에게 어제 저녁에 변 회장으로부터 사장으로 임명된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잘못 전화를 한 것이 아닙니다.”

“예? 방금 저에게 사장이라 호칭하시지 안 했습니까?”

“맞습니다. 어제 회장님께서 상무님을 사장급 기획조정실장으로 임명하셨습니다. 승진을 충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아니, 이틀 전에도 회장님께서는 저에게 그런 말씀이 전혀 없었습니다. 무엇인가 착오겠지요?”

“아닙니다. 오늘부로 정식 발령이 날 것이며 저와 기타 모든 부서에서 사장님께 소관 업무에 관한 브리핑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기획조정실의 인원편성작업을 조 사장님의 방침과 지시에 따라서 시작할 것입니다.”

조규식은 최칠규의 전화설명에 대해서 전혀 이해를 하지 못하는 입장이어서 모든 것이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최 전무님, 제가 지금 얼떨떨해서 전무님이 말씀하시는 내용을 잘 파악할 수가 없습니다. 바로 전무님 방으로 가도록 하겠습니다.”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제가 사장님 방으로 가도록 하겠습니다. 몇 가지 급히 사장님께 결재를 받아야만 할 서류가 있어서 그 서류가 준비되는대로 바로 가도록 하겠습니다. 참, 그리고 곧 사장님이 쓰실 방이 새로 준비되는대로 옮기시도록 신속히 조처하겠습니다.”

“내 방을 새로 옮기다니요?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사장님은 김재순 부회장님과 같은 사이즈의 방을 사용하시도록 사규에 규정되어 있습니다.”

 

하룻밤 자고 일어났더니 유명인사가 되었다는 말처럼 조규식이 하룻밤 사이에 일약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다. 회사의 모든 임원진들은 변재만의 후계자가 김재순 부회장이 아니라 조규식이라고 판단을 한다. 그리고 그들의 생존 보존을 위해서도 미리미리 조규식에게 눈도장을 찍어 놓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조규식이 전화를 거는 사이에 벌써 축하인사차 그의 방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세상인심은 권력을 쥐고 힘 있는 자에게 쏠리기 마련이었다. 변재만이 조규식에게 모든 권력을 이양했으니 이제는 조규식이 바로 변재만의 존재와도 같은 무소불위의 권력자이다. 모든 사원이 변재만을 두려워하였듯이 이제는 조규식을 두려워해야만 하고 조규식에게 절대 복종해야만 한다. 임원진들이 떼거리로 몰려와서 조규식에게 충심으로 축하를 드린다 하면서 깍듯이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한다. 대부분의 임원진들은 조규식보다는 나이가 더 연장자이다. 생계와 직결된 자리에서 나이는 문제가 아니었다. 회사의 경력도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권력을 쥔 자 앞에서 무한한 신임을 받는 것이었다.

 

장석윤 장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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