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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자살방조죄 <5>
[[제1202호]  2009년 10월  24일]


주치의를 만난 조규식은 변재만의

용태가 악화되지 않았다는 말을 듣는다


물론 회사의 가장 막중한 자리인 사장이 된 조규식이었지만 그가 지금 당장 고민하는 것은 어떻게 자살방조죄를 피하면서 변재만이 자연스런 죽음을 맞이하도록 하느냐 하는 점이었다.

 

천하의 조규식이라 하더라도 이 문제만은 김기철 장군이 그에게 충고한 것처럼 적당한 이유를 붙여서 시간을 끄는 수밖에는 다른 묘안이 없었다. 그래서 조규식은 변재만의 주치의인 김상태 박사를 만나보기로 했다. 조규식이 김상태를 만나는 이유는 솔직히 변재만이 언제 죽느냐 하는 사망예정일을 알기 위한 목적이었다. 조규식은 혼자서 쓴 웃음을 짓는다.

 

임산부가 축복의 새 생명의 출생예정일을 담당의사에게 문의하는 것은 있을 수 있지만 주치의에게 환자의 사망예정일이 언제냐고 물어야 하는 자신의 입장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조규식의 방문을 맞이하는 김상태 박사는 친절하고 상냥했다. 조규식은 자신을 소개하는데 오늘부로 대동건설의 사장이 됐다는 자기소개를 굳이 할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쓰고 있는 대동건설 상무라는 직함의 명함을 김상태에게 건네줬다.


“김 박사님, 저는 변 회장님을 측근에서 모시고 있는 조규식이라 합니다.”

“조 상무님, 제가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변 회장님의 지금의 병환상태를 알고 싶어서 이렇게 박사님을 뵙자고 한 것입니다.”

“좋은 소식을 알려드리지요.”

“예? 좋은 소식이라니요?”

 

하마터면 조규식은 좋은 소식이라면 변 회장이 더 오래 살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냐고 물을 뻔했다.

“저희 의료진에서는 암 세포가 여러 곳으로 전이되어서 생존기간을 6개월로 잡았습니다. 그런데 회장님의 심장과 기초체력이 의외로 튼튼하셔서 6개월보다는 훨씬 더 생명이 연장될 희망이 보였습니다. 거기다가 가장 희망적인 사항이 있습니다.”

“희망적인 사항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사용되지 않은 새로운 화학요법의 약이 회장님께는 현저한 치료효과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약은 아직 실용단계가 아닌 임상적 실험단계의 약입니다. 이 약을 회장님께 투여했더니 회장님의 암 세포가 그 이상 자라지 않은 것을 우리는 발견하게 됐습니다. 너무나 고무적인 사실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군요. 정말 고무적인 소식입니다. 그런데 왜 회장님께서는 요즘 갑자기 참으로 견디기 힘든 통증을 호소하시지요?”

 

“통증이 암 세포의 전이 때문만은 아닙니다. 화학요법과 방사선 치료의 후유증일 수도 있습니다.”

“박사님, 통증을 줄일 수 있는 치료를 병행할 수는 없겠습니까?”

“진통제 주사라는 것이 보통 마약성분입니다. 암환자에게 진통제 주사를 투여하게 되면 치료의 효과에 막대한 지장이 있습니다. 치료를 위해서는 비록 힘이 드시지만 통증을 참는 수밖에는 없습니다.”

“회장님에게서 자신의 암을 꼭 치료하겠다는 투병 의지가 있는 것은 확인했습니까?”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으나 아무튼 항암치료, 방사선 치료 등 참으로 힘든 치료인데도 회장님께서는 치료에 잘 협조하고 계십니다.”

“박사님의 말씀대로 아직은 실험단계의 약이라 하지만 그 약의 효능이 좋아서 암 세포가 자라지 않고 억제되고 있다면 회장님께서는 완치도 가능하신 것 아니겠습니까?”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의 단계에서는 암 세포가 그 이상 자라지 않고 있다는 것뿐입니다.”

“그렇다면 일 년은 더 사실 수 있겠네요?”

 

“그것도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암이라는 게 워낙 예측불허의 증세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는 암 세포의 번식이 잘 억제됐으나 어느 날 갑자기 급속도로 번식해서 사망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회장님의 경우는 암 세포가 다른 장기에도 전이됐기 때문에 전이된 장기의 이상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사망할 수도 있습니다.”

“참으로 예측불허의 증세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렇습니다. 그러나 상무님,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지금 저희들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10개월 내로는 회장님께서 돌아가시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씀을 드릴 수는 있습니다.”


조규식은 앞으로 10개월간 어떻게 자살방조죄를 면하기 위한 구실을 만들어야만 하는가 생각하니 머리가 돌 것만 같았다. 한편 이렇게 회장의 병환을 걱정하여 자신을 찾아온 이 충직한 조규식에 대해서 김상태는 감동했고 변재만 회장은 비록 죽어가는 입장이지만 외롭지 않은 분이라고 생각했다. 조규식은 다시 김상태 박사에게 “김 박사님, 제가 박사님께서 치료하시는 데 무슨 말씀을 드릴 수는 없지만 할 수만 있으면 변재만 회장님의 통증이 다소나마 완화되도록 치료해 주시길 잘 부탁드립니다.”

“조 상무님, 저희들도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너무 염려하시지 마십시오.”


조규식은 결국은 변재만이 언제 죽을 거라는 예정일을 파악하지 못하고 그저 막연한 주치의의 대답을 들은 채 김상태의 방을 나왔다. 조규식은 변재만의 증세가 호전되면 다시 살겠다는 의욕이 생길 거라는 환자의 심리상태의 변화에 기대를 거는 수밖에는 없다고 생각했다. 김상태와 헤어지고 시간을 보니 어느덧 점심시간이다. 조규식은 시장기를 느꼈다.


장석윤 장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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