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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자살방조죄 <17>
[[제1215호]  2010년 1월  30일]

 

조규식은 지금 상황에서 자살만은 막아야 한다

생각하고 변재만의 병실로 급히 간다


조규식은 2년간 변재만을 상사로 모신 경험에서 이 상황에서는 다른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지금 이 자리에서는 무조건 복종한다는 대답밖에는 다른 말을 할 수가 없다. 변재만은 이렇게 오늘 밤중으로 권총을 구해 오겠다는 조규식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조규식의 두 눈은 억지로 참는 눈물로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변재만은 조규식을 바라다보면서 저놈이 내 아들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러면서 그는 얼마 전에 변호사를 불러 자신이 보유한 회사 주식 대부분을 조규식 앞으로 상속케 한 것은 참으로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회사에 돌아온 조규식은 그 날 하루 종일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자신의 방에서 두문불출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다. 조규식은 지금 이 상황에서 자신이 어떤 행동을 취해야만 할 것인지를 신중히 고민하고 있었다. 권총과 실탄, 그까짓 것 육사 동기생인 김기철 장군을 통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그리고 변재만의 지시대로 오늘 저녁에 권총을 구해주고 변재만이 자살을 결행하면 다음 날 자살방조죄로 수사기관에 자수하면 된다. 대동 재벌기업의 총수자리 같은 것은 솔직히 탐탁스럽지도 않는 것이 조규식의 지금 심정이다. 조규식은 군에서 그렇게 원했던 장군 진급에서 탈락되자 그 후로부터는 사회적인 계급, 명예 따위 등은 초월한 인간이 됐다.

 

그러나 조규식을 진정으로 인정해 주고 아껴준 변재만의 생애를 권총자살로 마감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인생의 최후를 어찌 자살이라는 현실도피, 비겁한 자기본위의 길,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썩 아름답지 못한 죽음의 길을 선택하도록 할 수가 있겠는가? 그리고 그가 가장 아끼고 존경하는 분의 자살을 자신이 방조할 수가 있단 말인가? 대기업의 총수가 자살했다 하면 암의 고통으로 자살한 것보다는 회사경영의 비리와 부조리에 의한 심리적 갈등으로 자살했다는 억측이 난무할 것이다.

 

조규식은 결단코 변재만을 자살로부터만은 구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다시 느꼈다. 두 번째로는 자신이 자살방조죄로 형사적 책임과 처벌을 받게 되면 자동적으로 대동그룹의 사장직에서 물러나야만 한다. 그렇게 되면 결국 대동은 김재순의 후계구도로 움직이게 될 것이다. 김재순의 능력으로는 대동을 얼마 이끌지 못하고 와해될 것이라는 사실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변재만은 비록 자신이 죽더라도 그가 평생을 두고 이룩한 이 기업을 튼튼하게 보존 운영하고 싶어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사심을 버리고 전심전력 대동을 경영하여 지금의 과도기적 위기를 넘겨야만 한다. 이 중대한 고비를 넘길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는 것을 조규식은 잘 알고 있다. 결코 자신이 유능해서가 아니다. 김재순의 무능과 그를 둘러 싼 무리들의 불순한 생각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김재순에게 회사의 경영을 맡길 수 없다는 결론이다. 사실 대동이 지금까지 승승장구 성장한 것은 변재만의 지독한 일인체제하의 일사불란한 리더십 덕분이다.

 

이 말은 변재만이 지금까지 실질적인 기업의 제2인자를 양성하면서 그의 후계구도를 구축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후계구도가 마련되지 않은 바탕에서 철저한 사명감과 희생정신 없이 후계자가 된다 한들 그 기업은 결국은 공중분해의 운명을 벗어날 길이 없다. 이렇게 결론이 내려지자 조규식은 즉각 변재만의 병실을 다시 찾았다. 변재만은 마침 통증이 없었는지 이경숙 간호사와 무슨 즐거운 이야기를 나눈 기미였다. 그래서 그의 얼굴에는 환한 웃음꽃이 피어 있었다. 조규식이 심각한 얼굴로 무슨 중대한 말을 할 듯한 표정을 지으며 병실에 들어오자 변재만은 이경숙을 자리에서 나가게 한다.

 

“규식이 왔느냐. 그렇지 않아도 기다리고 있었다.”

“회장님, 오늘 새벽 이후로는 통증이 좀 가셨습니까?”

“응. 주치의가 처방한 최신 진통제 주사를 맞고 났더니 아직 통증이 없었다.”

“다행입니다.”

 

변재만은 갑자기 소리를 낮추더니 “규식아, 그래 권총은 어떻게 된 거냐?”

“회장님, 군에서 정식 등록되지 않은 권총 구하는 것은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면 오늘 저녁에 다시 통증이 시작됐을 때 권총으로 자결하겠다. 지금 가져왔으면 내 침대 매트리스 밑에 잘 놓고 가라. 내가 이렇게 참을 수 없는 통증의 고통 가운데서 더 연명하면서 세상을 살 의미는 없는 것 같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권총 자살을 하는데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무슨 문제가 있다는 거냐?”

“회장님, 자결하시는데 신체의 어는 부위에 실탄을 발사하시려고 합니까?”

“그거야 심장을 향해서 한 방 갈기는 거다. 그리고 피가 솟구치면 한 방 더 쏘는 거다.”

 

“회장님, 바로 그 점에 문제가 있습니다.”

“어째서?”

“자결하는 본인이 왼쪽부위의 가슴을 겨누고 권총을 발사해도 심장에 명중되지 않을 확률이 높습니다. 2차 대전 후 일본의 A급 전범인 도조희데키(東條英機)가 스가모 전범수용소로 수감되기 전에 그의 자택에서 권총 자살을 기도하다가 실패했습니다. 실패의 원인은 자신은 정확히 심장을 향해서 권총을 발사했으나 실탄이 빗나가서 치명상을 입지 못 하고 살아나 결국은 치욕적인 전범재판정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교수형으로 처형됐습니다.”

 

“....”

“그래서 가장 확실한 방법은 회장님 머리를 겨냥해서 실탄을 발사할 수밖에는 없습니다.”

“알겠다. 권총을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기겠다.”

“회장님, 머리에 대고 권총을 발사하면 더 큰 문제가 생깁니다.”

“또 무슨 문제란 말이냐?”


장석윤 장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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