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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자살방조죄 <19>
[[제1217호]  2010년 2월  13일]

 

변재만은 대동의 계열사 사장들이 독립체제로

나가겠다는 보고를 받고 격노한다

 

예를 들어 한 어린 남학생이 그가 지독히도 좋아하는 여학생이 있다 하자. 그는 그 여자애를 좋아하기 때문에 일부러 해코지하고 짓궂게 행동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우리가 사랑하고 좋아한다면 상대를 위하고 헌신하고 보호해야만 한다. 그러나 잠재의식 속에서는 일부러 모순된 행동을 취하게 되는 것이다. 변재만도 결코 만사가 귀찮아서 생을 포기하는 심정으로 자살을 그렇게 열망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지독히도 살고 싶다. 그가 이룩한 대동이라는 거대 기업을 앞으로도 더 확장하고 싶은 야심에 불타는 사람이다. 73세의 고령이다.

 

그러나 정신적으로는 아직도 현역의 일선 경영인으로 산하 직원 2만명을 진두지휘하는 야전군 사령관의 역할을 하고 싶어 한다. 이렇게 그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을 앞으로 영구히 연장하고 싶어서 그는 자살하겠다는 충동을 느끼는 것이다. 인간은 모순된 동물이다. 해결해야 할 길의 방향을 알면서 일부러 반대 방향의 길로 가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비근한 예를 들어보자. 삼복더위에 우리는 에어콘이 잘된 방보다는 차라리 더운 열기로 화끈거리는 뜨거운 사우나를 통해서 땀을 흠뻑 빼고 나왔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사우나 욕실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더울 때의 해결방안은 냉방을 찾아가야만 하는 것이 올바른 해결방향이다.

 

그런데 사우나 욕탕을 찾는 이치와도 같은 것이 지금의 변재만의 심정이다. 살고 싶기 때문에 자살의 길을 택한다. 달리 살 수 있는 방향을 찾지 못했을 때 자살로서 생을 되찾는 길을 선택하겠다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 지금 변재만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저녁 당장 자살을 결행한다 해도 그는 누구보다 이 순간의 대동의 앞날에 대해서 집요하게 관심을 갖고 있다. 그래서 현안의 문제를 해결해야만 할 사명의식으로 불타고 있다. 그의 삶에서는 지금 당장 자살의 길을 걸어도 대동을 포기하겠다는 그의 인생은 없다. 대동에 그렇게 집착하지 않았다면 변재만은 차라리 자살의 충동도 없었을 것이고 도리어 가능성 없는 암 치료에 몰두하고 하루라도 더 연명하려고 연연했을 것이다. 이러한 심리상태였기 때문에 회사를 분열시키려는 음모를 보고 받은 변재만은 분노로 온 몸을 부르르 떨면서 신음 소리를 낸 것이다.

 

“규식아, 계열사 사장, 그 작것들이 기어코 일을 저지르고야 말겠다는 것 아니냐? 이 새끼들을 당장에 나가 요절을 내고야 말겠다. 즈그들이 대동건설 지주회사를 떠나서 자회사를 몽땅 털도 뽑지 않고 통째로 삼켜 묵어버리겠다는 뜻 아니냐? 오사육시할 새끼들! 나가 말이다 결단코 계열사 단 하나라도 분리 독립해 나가는 것은 용납할 수가 없다. 너 내가 말하는 취지를 잘 알겄제?”

“예, 회장님. 회장님의 취지를 명심하고 시행토록 하겠습니다.”

“규식아, 너 당장에 전화해서 김재순 부회장, 이 자리에 오라고 해라!”

“알겠습니다.”

심상치 않은 변재만의 호출에 김재순은 급히 병실로 달려 왔다.

“회장님, 부르셨습니까?”

 

김재순의 인사에도 변재만은 눈길 하나 주지 않더니 조규식에게 자신을 일으켜 탁자가 있는 의자에 앉히라고 지시한다. 의자에 앉더니 변재만은 김재순을 응시한다. 서 있던 김재순은 당황하면서 변재만의 날카로운 눈길을 피한다. 평생동안 변재만과 함께 대동에서 모든 충성을 바친 김재순이지만 아직도 변재만 앞에서는 말 한 마디라도 허튼 소리를 하지 못 하는 어려운 존재이다.

 

“김재순! 조규식 사장을 통해서 회사 돌아가는 사정에 대해서 보고를 받았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요?”

“회장님, 무슨 보고 내용을 들으셨는지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김재순, 자네를 이 자리에 부른 영문을 자네 자신이 잘 모르겠다 이 말인가?”

이것은 잘못한 회사의 부하를 다룰 때 전형적인 변재만식 심문법이다. 변재만이 잘못을 직접 끄집어내어 이를 추궁하는 것이 아니라 피의자가 자진해서 잘못한 내용을 자백하고 시인토록 유도하는 심문법이다. 이럴 때 엉뚱한 대답이 나오면 불호령이 떨어진다. 변재만 밑에서 40여년 잔뼈가 굵은 김재순은 직감적으로 계열사의 독립채산제의 움직임에 대한 추궁임을 느꼈다.

 

“회장님, 혹시 요즘 대두되고 있는 계열사의 움직임에 대해서 저에게 물어보시려는 것 아닙니까?”

“뭐야? 계열사의 동태에 대해서 물어볼 것이 있느냐는 것이 너의 반문이냐? 이 자식아, 내가 무엇이 답답해서 계열사의 동태를 너에게 물어보겠다는 거냐?”

변재만과 김재순의 나이는 불과 3살 차이이다. 그러니 김재순도 이제 70줄의 연배이다. 그러나 변재만의 성깔이 발동 됐을 때는 김재순도 변재만 앞에서는 20대의 하나의 초년생 신입사원의 존재만도 못하다. 변재만은 피의자격인 부하로 하여금 그의 잘못을 스스로 시인토록 힐문하지, 잘못된 사항을 미리 지적하고 추궁하는 법이 결코 없다. 일은 더욱더 꼬여가기만 한다.

 

“회장님, 계열사들이 모회사의 간섭을 받지 않고 독립체제로 운영을 하겠다는 최근의 동태에 대해서 저에게 묻겠다는 것 아니십니까?”

“그래서, 그것이 어떻게 됐다는 거냐?”

“계열사 사장들이 요즘같은 극심한 경쟁체제에 대비해서 경영의 합리화를 위해서는 독자적 상황판단 아래 모회사의 소소한 지시나 간섭을 받지 않고 업무의 처리를 신속하게 처리하고 능률을 극대화하자는 취지의 건의가 최근 저에게 상신된 적이 있습니다.”

 

장석윤 장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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