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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자살방조죄 <21>
[[제1219호]  2010년 3월  6일]

 

대동 계열사의 기강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

조규식은 자 회사의 사장을 불렀다

 

변재만의 다소 누그러진 태도와 그를 다시 위로하는 듯한 말을 듣자 김재순은 착잡한 감정이 복합적으로 엉키면서 와락 눈물이 쏟아질 뻔했다. 그러나 조규식 앞에서 그의 약한 모습을 나타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는 결연한 태도로 변재만에게 대답한다.

“아닙니다. 회장님, 제가 야단맞을 행동을 했습니다. 제가 40여 년을 회장님을 모셔 온 입장에서 어찌 회장님의 심정을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회장님의 분부 말씀대로 조 사장의 어떠한 단안에도 따르겠고 최대로 조 사장에게 협조를 아끼지 않겠습니다.”

“고맙소. 김 부회장, 당신은 먼저 회사로 가보시오. 나는 조 사장과 좀 더 할 말이 남아 있소.”

 

김재순이 의기소침하여 어깨를 축 늘어트리면서 병실을 떠나자 변재만은 조규식의 손을 다정하게 잡으면서 묻는다.

“규식아, 나는 말이다. 이번 사태를 니가 알아서 처리하도록 할 작정이다. 어떻게 효과적으로 수습하면 좋겠느냐? 니 복안을 한 번 이야그 해 보그라.”

“회장님, 저에게 일임하신다 하니 결코 회장님께 누가 되지 않도록 신속히 처리하겠습니다.”

“어떻게 처리하겠다는 거냐?”

“계열사 사장놈들 중에서 가장 악질분자 한두 놈, 모가지를 잘라 버리겠습니다.”

 

변재만은 조규식의 이 말에 자신의 귀를 의심할 정도로 놀란다. 변재만은 자신이 지독한 독재자라고 생각했는데 자기보다 한 수 더 뜨는 조규식의 독선에 놀란 것이다.

“모가지까지 자를 필요는 없지 않겠느냐?”

“아닙니다. 반기를 든 놈은 반드시 앙심을 품고 또 반란을 일으키게 되어 있습니다. 맘 같아서는 계열사 사장 네 놈 몽땅 모가지를 잘라버려야 하겠지만 그렇게 되면 회사의 기술상의 문제도 있어서 본보기로 한두 놈은 반드시 모가지를 잘라야만 합니다.”

 

변재만은 속으로 자신보다 더 지독한 놈도 있다는 심정으로 놀란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흡족했다. 조규식 저 놈에게 회사를 맡기면 결코 회사를 말아먹을 위인은 아니라는 신뢰감을 더욱 더 느낀다. 사실 변재만은 자신이 죽게 되면 회사 내에는 막대한 혼란이 야기될 거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변재만은 조규식에게 혼란 속에서 자신의 후계자로 그를 세우기를 원치 않고 있었다. 변재만은 자신이 숨이 붙어있는 한 조규식이 앞으로 다져나갈 기반을 조금이라도 튼튼하고 편하게 해 주고 싶은, 마치 자식에게 아버지가 베푸는 그러한 심정이었다. 조규식도 이러한 변재만의 심정을 모를 리가 없었다. 변재만은 다시 조규식에게 묻는다.

 

“규식아, 그렇다면 너 김재순도 계열사 사장과 한통속이었으니 그를 어찌 할 셈이냐?”

“회장님, 김 부회장은 저의 협력자로 만들어야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본사 부회장 겸 어느 한 계열사의 회장직도 겸직해서 떡 하나 더 주려고 합니다.”

“좋은 생각이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말도 있은께로 말이다.”

 

조규식은 변재만의 심정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김재순을 호되게 야단쳤지만 변재만은 김재순과의 인간적 정리와 우정 때문에 결코 그를 내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조규식은 김재순을 계열사 하나를 선정하여 그 계열사의 회장 자리를 겸직케 한다는 기발한 생각을 변재만에게 제의한 것이다. 변재만은 또 한번 조규식의 자기 맘에 딱 들어맞는 결정에 감탄한다. 내가 10년만 더 일찍 조규식을 만났다면 오늘날의 대동은 건설뿐만 아니라 중화학공업에도 진출하는 그야말로 명실상부한 재벌그룹으로 컸을 거라는 아쉬움을 다시 한번 느낀다. 그리고 그는 흡족한 표정으로 “규식아, 나는 이번 사태를 너의 복안대로 따르도록 하겠다. 그러니 모든 일은 너의 소신껏 처리토로 해라.” 이렇게 다정하게 말 하면서 자신을 다시 침대에 눕혀 달라고 부탁한다.

 

조규식은 회사에 돌아가자 그의 군에서부터 부하였던 주기영 부장을 부른다. 사장실에는 이미 노조 국장 박진구도 와 있었다. 세 사람은 한참 동안 무언가 비밀 이야기를 하는지 목소리를 낮추어 수근거리더니 사장실을 나올 때에도 각자가 따로 따로 나간다. 그 후로부터 며칠이 지났다. 조규식 사장의 호출로 계열사 사장 중 한 사람인 대동 주택건설의 차영철이 방문을 노크한다. 차영철은 조규식보다 나이도 3살이나 위였고 대동에서 잔뼈가 굵은 지도 벌써 30년 가까이 되는 대동의 터줏대감과도 같은 존재이다. 변재만 회장의 개인적 친분으로 사장이 된 조규식쯤이야 솔직히 안중에도 없다는 교만 끼가 그의 생각을 지배하고 있었다. 사장실에 오기 전까지도 차영철은 속으로 ‘건방진 새끼, 자기가 뭐라고 계열사 사장인 나를 오라 가라 해?’ 그는 그의 자존심이 상했다는 표정으로 조규식을 대한다. 조규식도 이런 차영철의 태도가 맘에는 썩 들지를 아니했으나 꾹 참고 그를 맞이한다.

 

“차 사장님, 대동주택건설의 향후 원만한 경영을 위해서 사장님을 뵙자고 한 겁니다.”

“저의 계열사뿐만 아니라 다른 계열사까지 포함에서 이제는 대동 본사에서는 경영에 관해서 일체 왈가왈부할 처지가 아니라는 것을 이미 사장들이 집단으로 의사 표명을 했을 텐데요?”

“누구에게 그런 의사표명을 하셨습니까?”

“그거야, 조 사장님의 직속상관이신 김재순 부회장님께 벌써 말씀 드렸지요.”

조 사장 너 같은 피라미쯤이야 계열사 사장들이 상대를 하지 않겠다는 어조로 들린다.

“그래요? 본사와는 상관없이 독립경영체제로 운영하는 정책적 문제는 향후 구체적으로 논의가 되겠지만 오늘 차 사장을 보자고 한 것은 당장의 인사문제를 가지고 논의하자는 차원에서 이 자리에 오라고 한 겁니다.”

장석윤 장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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