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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자살방조죄 <23>
[[제1221호]  2010년 3월  20일]

 

열사의 반기를 순식간에 평정한 조규식

 

“차 사장이 의욕에 넘쳐서 회사경영을 하다가 중대한 정책적 판단의 실수를 범하는 수도 있을 것이오. 그 결과 회사에 막대한 재정적 손실을 초래할 수도 있을 것이오. 그러한 실수쯤이야 충분히 용서하고 이해할 수도 있소. 그러나 부정부패의 대표적 사례인 하청업자로부터 뇌물을 받아먹은 행위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오. 그래서 계열사의 인사문제를 논의하자고 차 사장을 부른 것이오.”

 

“조 사장님, 저희들 계열사 사장들이 집단으로 모회사인 대동건설로부터 분리 독립하여 독자적인 체제로 나가려고 한 단합행위를 용서하십시오. 다시는 그러한 행동을 하지 않겠으며 종전처럼 대동건설 모회사의 지시대로 움직이도록 이 자리에서 맹세하겠습니다.”

 

“당신 지금 나하고 협상하자는 거요? 나는 자회사가 모회사로부터 떨어져 나가든 붙어있든 그런 정책적인 상황은 관심도 없다고 하지 않았소. 이 자리는 대동건설이라는 지주회사가 백 퍼센트 투자해서 세운 계열사의 비리문제가 나에게 보고들어왔기 때문에, 그래서 이 비리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느냐 하는 것을 당사자인 당신과 상의하자는 것뿐이오.”

“면목 없습니다.”

“차 사장, 당장에 형사고발 할까요? 아니면 조용히 이 자리에서 사표쓰고 자진사퇴 하겠소?”

 

조규식의 말투는 단호했다. 형사고발도 불사하겠다는 어조이다. 이 거구의, 두려움이라고는 모르는 조규식에게는 형사고발 조처를 취할 태세가 역력히 나타나 보인다. 차영철의 표정은 두려움으로 그야말로 백지장이 된다.

“양단간 결정하시오.”

“사표 쓰겠습니다.”

“좋소. 이 자리에서 사표쓰고 회사에 돌아가서 당신 밑에서 함께 수뢰한 박철 부사장 그리고 최상식 전무 이 두 놈의 사표는 내일 아침까지 당신이 직접 수리해서 나에게 제출하시오.”

 

형사 고발되어 입건되면 지금까지의 퇴직금과 회사임원으로서의 명예는 하루아침에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만다. 그러나 이 일로 인해서 무엇보다 차영철이 원망스러운 것은 김재순의 무능한 처사이다. 이렇게 조규식에게 허망하게 당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조규식을 너무 얕잡아 본 것이 결정적인 실수였다.

 

다음은 역시 계열사인 대동중장비 회사 사장 박인수가 조규식의 소환으로 나타났다. 주기영과 박진구가 조사한 비리를 지적하자 아무런 저항 없이 그는 사표를 제출했다.

이렇게 양개 계열회사의 사장과 간부들이 형식은 사표 제출이지만 일시에 해고되자 대동의 본사와 자회사 내에는 소문이 쫙 퍼졌다. 조규식 앞에서 까부는 것은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는 행동이라는 말들이 오갔다.

 

나머지 계열사 사장들이 조규식 앞에 찾아와서 스스로 독립경영을 포기하겠다는 각서를 쓰고나서야 겨우 용서를 받는 형국이 됐다. 조규식은 약속대로 김재순을 본사 부회장 겸 계열사인 대동주택건설의 회장을 겸직시켰다. 형식은 김재순에게 힘을 실어주는 듯 보였으나 사실은 김재순을 견제하는 힘의 분산이었다. 조규식이 자회사의 반기를 원만히 수습했다는 보고를 하자 변재만은 자기 자신의 분신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변재만은 조규식이 이제 자신의 도움 없이도 막강한 대동 그룹의 후계자로 서서히 자리를 굳히는 것으로 생각되어 은근히 안심스러운 것이었다.

 

새로 개발됐다는 최신 강력 진통제도 처음에는 효과가 있는 듯했다. 그러나 자주 주사를 맞다보니 그 효과가 떨어졌고, 변재만은 그 지독한 말기 암의 통증으로 다시 시달려야만 했다. 이경숙은 냉철한 간호사라기보다는 마음이 고운 신앙인이었다. 변재만이 통증으로 시달리는 것을 보면 그 모습이 안 되어 견딜 수가 없었다. 현대의학으로 고칠 수 없는 병이라면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하심으로 고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는 이경숙이다.

 

밤새 잠도 자지 않고 변재만을 간호한 이경숙은 잠깐의 휴식시간에는 옆방에 가서 변재만의 통증을 완화시켜 달라고 무릎 꿇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한다. 이렇게 기도하는 이경숙을 변재만이 모를 리가 없었다. 변재만은 이경숙을 통해서 인간의 사랑이 지배하는 거룩한 새로운 세상을 본다. 변재만이 통증이 없을 때 그의 유일한 즐거움은 이경숙과 담소를 나누는 것이다. 이경숙은 이러한 변재만의 심정을 이미 아는 것인지 항상 먼저 변재만의 침대에 가까이 가서 다정하게 위로하고 말을 주고받았다.

“회장님,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적힌 진리의 책입니다. 읽어보시면 하나님의 사랑과 놀라운 기적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지 아시게 될 거예요.”

“그러냐. 하나님이 직접 쓰신거냐?”

 

“하나님이 직접 쓰신 것은 아니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예언자와 선지자를 통해서 쓰신 거룩한 책입니다.”

“하나님이 말이다, 인간들이 못된 짓 하면 지옥에 보낸다고 성경책에 써 있냐?”

“회장님, 우리 인간들은 모두가 죄인이에요.”

“뭐야? 그렇다면 경숙이 너도 죄인이란 말이냐?”

“그렇지요. 저도 용서받을 수 없는 흉악한 죄인이에요.”

 

“아니 니가 누굴 해코지를 했냐, 아니면 누구를 사기치고 등쳐먹었단 말이냐, 아니면 폭력을 써서 남의 것을 빼앗았단 말이냐?”

“회장님, 그런 것은 아니더라도 저는 남을 시기했고 남을 원망도 했고 남을 사랑으로 대하지 못하고 미워도 했어요.”

“아니 남을 시기한 것이 무엇이 죄가 된다냐? 세상 살다보면 남을 원망도 할 수 있는거제, 그게 어째서 죄가 된다는 거여? 성경에는 그런 것도 다 죄라고 쓰여 있다는 거냐?”

 

장석윤 장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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