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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인돈이야기
[[제1269호]  2011년 4월  9일]

1. 예명

<2> 신앙 배경

 

인돈은 그의 어머니가 감리교인이었기 때문에 감리교회에서 세례를 받았고, 감리교회 교인 가족들과, 이웃에 있는 룻(Ruth) 양과 함께 교회에 출석했다. 그런데 어느 때인가 겨울이었는데 룻이 교회를 못나가게 되었다. 그 때 혼자 출석하기 싫은 인돈은 감리교회보다 더 가까이에 있는 장로교회로 교회를 옮겨서 출석하게 되었다.

 

거기에서 그는 자신에게 평생의 꿈을 심어준 천사 같은 사람을 만났다. 그 교회의 교회학교 교사인 신시어(Cynthia)였다. 그녀는 사랑이 넘치는 교사였다. 늘 외로워서 한쪽이 허전하고 누군가를 의지하고 싶었던 그에게 그녀는 교사였을 뿐만 아니라, 인도자요 오랜 친구가 되었다. 그 때 교회 학교의 관행은 한 반을 맡으면 바꾸지 않고 졸업할 때까지 계속 데리고 올라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오랫동안 인돈과 사귀며 그의 영적 성장에 큰 도움을 준 멘토가 되었다. 한편 인돈은 그녀를 통해 교회가 사랑의 공동체인 것을 알게 되고 예수를 마음에 모시는 기쁨을 처음으로 체험하게 되었다. 아마 그녀가 인돈에게 선교사를 지망하게 하는 생각을 넣어 준 처음 사람인지도 모른다. 5년 가까이 즐겁게 교회 생활을 한 뒤 그는 대학에 가기 위해 1907년 애틀랜타로 옮기게 되었다. 시골에서 대도시 애틀랜타로 입성한 것이다. 성적이 좋은 학생이었기 때문에 조지아 공대에 들어갔으나 그 곳은 조지아 공대 예비학급(Preparatory class)이었다.

 

조지아 공대는 1884년에 시작된 대학으로 1899년에 세운 두 건물은 하나는 행정 및 강의동(講義棟), 그리고 따로 떨어진 큰 건물은 공부한 것을 실습하는 실습동으로, 생산된 물건을 팔기도 했다고 한다. 즉 그 대학은 처음부터 산학 협동을 하는 대학이었다. 또한 이 대학은 남부 특유의 보수적인 대학으로 1920년까지 여학생을 받지 않은 곳이었다. 인돈은 그곳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노스아베뉴의 장로교회에 다니게 되었다. 어려서 외톨이로 지내던 것에 익숙했던 그는 대학에 들어오자 기숙사에서 싫든 좋든 친구를 사귀어야 했는데 그는 친구들을 선별해서 사귀는 편이었다.

 

특히 가까이 지내던 친구는 프랭크(Frank), 월러스(Wallace) 그리고 노리스(Norris)였다. 밖이나 교회에 가면 여자 친구가 있었는데 특히 어머니의 처녀 때 친구의 딸 로사(Miss Rosa) 양을 좋아하였다. 집이 대학 가까이에 있었는데 아주 어려서 어머니 따라 와서 며칠씩 자고 가기도 했던 곳이었다. 그들 세 친구는 주말이면 로사 양 집에 가서 카드놀이도 하고 대학 교정에서 부르던 노래도 부르곤 하였다. 얼마 안 가서 그들은 부엌으로 통하는 길도 알게 되었다. 부엌에서는 흑인 아주머니가 요리를 했는데 특히 인돈은 찐 감자를 좋아했다. 그는 버터를 넣어서 먹는 대신 식혀서 그대로 먹는 것을 좋아했다. 한번은 식모가 학교에 가지고 가서 간식으로 먹도록 찐 감자를 싸주었는데 너무 늦고 추워서 그는 거리로 나와 전차를 탔다. 그러데 시간 전에 기숙사에 들어가려고 서두르는 바람에 전차에 감자를 놓고 내렸다. 너무 서운해서 다음날 감자를 두고 내렸다고 전화를 했더니 식모가 새로 감자를 쪄서 그가 다시 집에 들르면 바로 줄 수 있게 만들어 주기도 했다.

 

인돈이 대학 입학할 때부터 건강이 안 좋았던 어머니는 오래 살지 못하고 이듬해(1908년) 인돈이 열일곱 살 때 세상을 떴다. 이제 인돈은 사랑하는 어머니까지 잃고 외톨이가 된 것이었다. 그때까지 어머니를 옆에서 돕던 고모 칼은 애틀랜타의 집으로 돌아온 뒤 인돈이 자기 집에서 학교에 다니도록 권했으나 그는 기숙사를 고집했다. 칼 고모의 사랑 때문이었는지 그는 어머니를 잃은 슬픔에서 곧 회복되어 정상을 되찾았다. 그는 이미 세상의 쓴맛을 많이 본 성숙한 청년으로 과거보다는 현재 닥친 일을 위해 마음 속으로 모든 일을 차근차근 계획해 가는 편이었다. 그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에도 조지아 공대에서 성적이 떨어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재학 중 가장 도덕성이 강한 학생이라는 칭찬을 들었다.

 

그는 용기 있고, 존경받고, 친구들에게 호감을 주는 참으로 사내다운 사내였다. 선하고 티 없는 농담을 잘 했으며 남을 놀려도 결코 상처를 주는 일이 없었으며 언제나 선한 일을 하였다.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은 화가 나서가 아니라 그가 말한 것을 열심히 들을 수 있고 경청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런 모든 성품은 그가 후일에 선교사가 되었을 때 그를 성공하게 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그를 만나서 친구들은 늘 좋은 일이 생겼고 그들은 그것 때문에 그에게 감사했다. 그는 참으로 준비된 선교사였다.

 

그가 그의 삶을 완전히 기독인으로 헌신하고 외국 선교에 몸 바치겠다고 결심한 것은 조지아 공대를 다니던 중 노스아베뉴의 장로교 장로였던 헐(Dr. Hull) 박사의 댁에 기숙하고 있을 때였다고 생각된다. 처음 그가 공대에 입학했을 때는 기숙사에 있었지만, 3, 4학년 때에는 웨스트 피치 가에 있는 헐 박사 댁에서 다녔다. 헐 박사가 그를 장래성이 있는 신자라고 보아서 그에게 숙소를 제공한 것이었다.

 

오승재 장로<한남대 명예교수·오정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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