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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인돈 이야기
[[제1271호]  2011년 4월  23일]

2. 선교현장

<1> 낯선 땅에서의 적응

 

유서백 부부는 변요한 선교사가 인솔한 18명의 선교사 가족을 환대하기 위해 부두로 나갔다. 선교사 인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곳에서 고향에서 온 이 많은 선교사를 맞는 것은 큰 기쁨이었다. 또 선교사 가족들도 이국땅에서 자기 동족을 맞는 것이 너무 기뻤다. 그들은 유서백 가정에서 모두 환담을 하며 저녁을 먹은 후 여부솔(Eversole, Finley M.) 부부와 세 자녀는 전주로 가고 인돈은 배편으로 군산으로 떠났다. 그는 군산 선교부로 임명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다시 그는 외톨이가 되었다.

 

그곳에는 이미 군산 구암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손배돈(Patterson, Jacob Bruce;1909년 내한) 선교사와 위의사(Venerble, William A.;1908년 내한) 선교사가 와 있었다. 그는 위의사 선교사 내외와 얼마동안 지내다가 그보다 일 년 전에 배속해 온 총각으로 있던 매약한(McEachern, John;1911년 내한) 선교사와 함께 단독주택으로 옮겨 살게 되었다.

 

군산에서 인돈의 가장 시급한 일은 한국말을 배우는 것이었다. 그에게는 선교부가 어학선생으로 배정한 고성모((1941년 전주 완산교회의 제5대 당회장)라는 선생이 있었는데 그는 1년 전부터 선교부 임명을 받아 도대선(Dodson, Samuel K.; 1911년 내한) 선교사를 한 해 동안 가르친 경험이 있는 사람이었다. 이 고 선생은 이후로 수년 동안 변함없는 동료가 되었다. 인돈은 이 고 선생 외에 다른 어학 선생을 둔 일이 없다. 그들은 늘 함께 살았다. 이렇게 그들은 바로 친한 친구가 되었는데 이 우정은 평생 계속되었다. 처음에는 그들은 한 책상 앞에 마주 앉아 오랫동안 공부를 했다. 인돈이 지쳐서 더 이상 이 공부를 계속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바로 학생들과 같이 야구 연습을 하러 나갔다.

 

인돈은 운동에 소질이 있었고 운동을 좋아했다. 그러면 고 선생도 따라나섰다. 그가 해변가를 산책하러 나가면 고 선생도 그렇게 하였다. 이렇게 한국인과 같이 삶으로 인돈은 한국어를 체득했던 것이다. 그 뿐 아니라 그는 어학에 재능이 있다고 알려졌다. 일 년도 못 되어 한국말을 잘하게 되고 인돈은 한국말을 하게 되자 바로 군산에 있는 미션학교인 영명학교에서 가르치게 되었다. 그가 꿈을 갖고 한국을 오게 될 때에는 전공했던 공학을 가르치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이 나라에서 그런 전문 지식을 가르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그는 다른 분야의 과목을 맡기로 했다. 그리고 놀랄 만큼 빨리 배운 한국어로 성경을 가르치게 된 것이다. 한국말을 모르면서 새로 온 선교사가 한국말로 성경을 가르친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의 사명이라고 생각했다. 인돈은 이와 같이 인솔자의 명에 따라 낯선 땅에서 적응해 가고 있었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 불안했을 것이다. 그 뒤 바로 인돈은 전주에서 선교회 모임이 있었는데 거기서도 그는 말하는 재능뿐 아니라 운동의 재능을 보였다.

 

그 때 전주 이눌서(Reynolds, William Davis, 1892년 내한) 선교사 집 위에 있는 테니스장에 전주 선교부의 선교사들이 모여 친교와 휴식을 취하고 있으면서 드물게 있는 수박 파티를 하고 있을 때였는데 군산 구암병원의 의사 위의사 선교사에게 소개를 받은 인돈은 첫째 너무 어려서 놀랐고 둘째 한국말을 유창하게 잘해서 놀랐고 셋째 테니스를 잘해서 모두가 놀랐다.

 

그는 학교에서 차츰 일을 많이 맡게 되고 드디어는 한국말로 성경을 가르칠 뿐 아니라 영어도 가르치게 되었다. 그러다가 위의사 선교사가 부인의 병 때문에 1917년 한국을 떠나게 되자, 의사로 있으면서 영명학교의 교장으로 있던 그를 대신해서 교장직도 맡게 되었다. 그가 교장이 되던 첫 여름 휴가 때 가장 잊을 수 없는 일 중의 하나는 일본의 가루이자와(長野縣 市町村 輕井澤)를 방문하였을 때 어학 전문 교사였던 커밍스 박사와 알게 된 일이었다. 그가 바로 인돈이 가장 어려워 했던 한국말의 발음을 교정해 준 사람이었다. 인돈이 후에 한국말을 아주 유창하게 하게 된 것도 그 덕분이었다.

 

평소에 그가 가지고 있던 큰 고민은 한국 사람처럼 발음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입술과 혀 모양으로 그것을 교정 받고 발음을 공부할 때 커밍스 박사의 방법이 훌륭한 것을 알게 되고 평생 그 방법을 강의에 적용하는 열광자가 되었다. 때가 되자 그는 이 방법을 남장로교 선교회에 있는 언어훈련원에 적용하도록 했다. 그 해 여름 가루이사와(輕井澤)에 있을 때 커밍스 박사(Dr. Cummings)는 인돈에게 그가 군산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에게도 이 방법을 써 보라고 제안했었다. 이 방법을 적용한 뒤 인돈이 선교회에 써 보낸 편지에 의하면 “많은 학생들이 영어를 이 방법으로 너무 잘 배웠기 때문에 미국 어느 도시에서 영어를 배웠느냐는 질문까지 받게 되었다”라고 쓸 정도였다.

 

오승재 장로<한남대 명예교수·오정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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