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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인돈이야기
[[제1272호]  2011년 4월  30일]

2. 선교현장

<1> 낯선 땅에서의 적응②

 

그가 23살의 총각으로 낯선 땅에서 4, 5년간 잘 적응해간 것은 그의 여가생활 때문이었다. 흔히 선교사라고 하면 핍박 받고, 전도하다가 쓰러져 죽고, 한센병 환자와 함께 살고, 전염병 또는 풍토병으로 시달리다가 죽어가는 사람을 생각하는데 그는 전혀 그런 타입이 아니었다.

 

1, 2년 열정적으로 전도하며 살다가 지쳐서 돌아가는 그런 사람이 아니고 한국 사람을 사랑하고 한국 사람으로 평범하게 살기를 원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출생지가 다르기 때문에 한국 사람일 수가 없었다. 그들은 가지고 온 돈으로 선교거점을 사고, 울타리를 두른 그 속에서 적응 훈련을 하고 살아야 했다. 인돈은 처음에는 총각 매약한과 함께 살고 있었으나 이눌서의 아들, 이보린(Reynolds, John Bolling; 1918년 내한)이 교육 선교사로 군산에 배치되어 오자 셋이서 함께 살게 되었다.

 

이눌서는 남장로교 해외선교부에서 임명을 받아 일차로 한국에 도착한 7인 선발대 중의 한 사람으로 성서번역에도 지대한 공을 세운 분이며 당시에는 평양 신학교에서 어학 교수 및 ‘신학지남’ 편집인으로 있을 때였다.

 

이보린은 1920년에 내한해서 순천, 전주, 광주의 미션 학교에서 교육담당을 했다고 하는데 그보다 먼저 1918년에 군산에서 교육을 담당했다는 자신의 말과 인돈의 셋째 며느리 인애자(Linton, Lois F., 흔히 Betty라고 부름)의 증언이 맞은 것 같다.

아무튼 인돈은 여가로 사냥과 테니스를 아주 즐겼었다. 이것이 그로 하여금 한국에서 48년간 한국문화에 동화해서 한국인 선교사로 살게 한 계기가 된 것이다. 여기에 인돈이 소천한 뒤 이보린 선교사가 쓴 추모사의 일부를 싣는다. 이보린은 1970년 3월 미국 테네시에서 사망했는데 한국은 자기가 태어난 고향이라고 한국에 묻히기를 원해 비행기 편으로 유해를 싣고 와서 양화진 제1묘역 마-20에 묻힌 분이다(글 중 인명은 한국 이름).

 

“인돈과 나는 일 년 동안 군산의 영명학교에서, 그는 교장으로 나는 보잘것없는 수학 선생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와 매약한과 나는 큰 집에서 같이 살았는데 그와 나는 매주 토요일에는 사냥을 갔습니다. 그는 가벼운 16구경 엽총을 잘 쏘았으며 나의 훌륭한 동반자였습니다. 한국말 선생 고 씨는 인돈은 앞에서 나는 꿩과 뒤에서 나는 꿩을 동시에 쏠 수 있다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습니다. 그는 사냥 말고도 테니스도 선수급이었는데 부위렴(Bull, William Ford; 1899년 내한, 복음 성가단을 조직 거리 전도) 선교사에게 배울 때는 형편없는 헌 라켓이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함께 즐거운 시간을 많이 가졌으며 또 의견도 많이 달랐지만 이것은 흔히 있는 일입니다. 이 친구는 내가 오기 전 염소와 개들을 기르고 있었다는데 지금도 믿어야 할지 안 믿어야 할지 알 수 없는 것은 그가 염소를 안방으로 끌고 와서 젖을 짰다는 겁니다. 그러나 젖을 짜는 사진이 있는 것을 보면 그건 분명한 것 같습니다. 인돈은 전주에 있는 위인사(Winn, Samuel Dwight; 1911년 내한 전주 선교지에 부임, 전주 성경학원, 신흥학교 교사 등으로 활동) 및 그의 여동생 위엄일(Venable, Emily Anderson; 1911년 오빠와 함께 내한 전주 선교부에서 농촌지방 순회하며 여성계몽사업에 헌신)과 함께 근교에 있는 절에서 캠핑을 하는 것이 연례 여름 행사가 되어 그는 자주 이 들을 방문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그의 좋은 성품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

 

어떻게 보면 이런 여가활동은 힘들게 사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치외법권 같은 땅에 아름다운 자리를 차지하고 살며 사냥을 즐기는 그들에게 거부감을 느끼게 하기 쉽지만 나라가 방향을 잃고 있을 때 얼마나 한국 국민과 함께 호흡하며 이 땅에 묻히려 했던가 하는 것을 생각하면 다른 문화에 살던 그들을 이해 할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또 우리나라 사람들이 외국에 선교사로 가서도 마찬가지 문화적 차이를 느끼게 되는데 참 선교란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과 함께 사는 것이지만 그들과 똑같을 수는 없다는 차이를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1948년에도 그의 사냥 솜씨를 말하는 글은 당시 전주 예수 병원 원장으로 있던 구바울(Crane, Paul Shields;1947년 내한) 원장의 글을 통해 알 수 있다.

“거의 매 토요일마다 사냥을 나갔던 즐거운 기억을 또한 잊을 수 없습니다. 그는 꿩을 잘 명중시켰는데 보통 산 밑 쪽을 총을 어깨에 걸치고 걷고 있다가 꿩이 날아오르기만 하면 거의 놓치지 않고 명중시켰습니다. 그와 가졌던 가장 인상 깊었던 사냥은 1948년에 진안 근처에서 멧돼지 사냥을 한 일입니다. 그날 우리는 14마리의 멧돼지를 봤는데 그 중 가장 멋진 놈을 그가 한 방에 카빈총으로 잡았습니다. 군인 캡틴도 같이 갔었는데 M-1 소총으로 3마리를 쏘았는데 다 놓쳤습니다. 인돈은 목표가 어디 있는지를 잘 알고 성공을 가져올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오승재 장로<한남대 명예교수·오정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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