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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인돈 이야기
[[제1275호]  2011년 5월  21일]

2. 선교현장 ⑤

<3> 노총각의 결혼과 신혼살림 ①

 

인돈의 안식년이 미국의 2년에 한 번씩 열리는 전국 남장로교 평신도대회가 열리던 해가 된 것은 큰 행운이었다. 이곳 미 남부지역을 총 망라한 4,500여 명의 교회대표에게 3.1운동의 참상을 알리게 되는 절호의 기회를 가졌기 때문이다. 이 회의에 앞서 미국에 나와 있던 12명의 선교사들은 한국의 가정, 결혼 풍속, 장례식, 선교사들이 세운 교회와 학교들의 실상을 한국 의상을 입고 연극으로 생생하게 알렸다. 이렇게 미국 교회 대표들에게 한국에 대한 관심을 끌게 한 뒤 남은 안식년 기간을 인돈은 공부하는데 전념하기로 했다. 한국에 가서 느낀 것은 공과대학을 졸업해서 공학 기술을 그들에게 전수하고 공업입국을 하게 하겠다는 그의 초심은 실천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먼저 문맹을 퇴치하고 하나님 말씀을 가르쳐서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러기 위해서 그는 교육학과 신학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는 안식년을 일 년 더 연장하여 미국에 2년간 머물면서 공부를 하기로 결심하고 미국 선교부에서 먼저 허락부터 받았다. 그리고 가을에 화이트 성경학교(White Bible School: 현재는 신학교)에서 공부하기로 결정했다. 동시에 그는 컬럼비아 사범대학에 교육학 석사학위를 받기 위해 등록했다. 그는 한국에서 학생들을 가르쳐야 했고 학교의 교장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교육학을 전공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 2년 동안 인돈은 크리스마스 휴가 때마다 성실하게 고모 칼네 집을 방문했다. 특히 1920년 여름의 반은 고모와 함께 보냈고 또 반은 남장로교회 콘퍼런스를 하는 노스캐롤라이나의 몬트리트(Montreat)에서 보냈다. 이 2년 동안에 그는 컬럼비아 대학에서 교육학 석사학위를 받았을 뿐 아니라 그보다 훨씬 중요한 보상을 받았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그의 착한 심성을 보고 그의 평생의 반려자가 될 여인을 만나게 해 준 것이다.

 

인돈이 1921년 6월(30세)에 컬럼비아 사범대학에서 교육학 석사를 마치고 그해 여름 몬트리트에서 열린 남장로교 선교회 모임을 끝으로 8월에 출국할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그는 아리따운 소녀 샬롯을 그곳에서 만났다. 그는 모든 여성들은 칼 고모를 대하듯 친절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샬롯은 아주 다른 여성으로 다가왔다. 여성에게 그렇게 눈부시고 설레는 마음을 가져보기는 처음이었다. 공원에서 따로 약속을 하고 몇 번 만났다. 샬롯은 자기는 오래 전부터 인돈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5년 전 이리(익산)역에서 아버지를 만나러 가기 위해 내렸는데 그때 그를 만난 일이 있다고 말했다. 인돈은 군산에서 활동하던 다이사트(Dysart, Julia; 1907년 내한, 후에 샬롯의 3째 어머니가 됨) 여선교사를 동반하고 이리역에 그녀의 친구 박세리(Buckland, Sadie Mepham; 1907년 내한) 여선교사를 마중 나간 일이 있었다. 박 선교사는 기전학교 교장을 지낸 바 있는 독신 여선교사였다. 당시는 전라선이 개통되지 않아서(1936년 개통) 전주까지 그들을 태워다 주기 위해서 이리역에 간 것이었다. 인돈은 그 때 17살의 앳된 샬롯을 본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녀는 당시 미국에서 대학에 들어가기 전 1년을 부모와 함께 보내기 위해 왔었다고 말했다.

 

샬롯 벨(Bell, Charlotte Witherspoon /인사례)은 배유지(Bell, Eugeen) 목사와 그의 부인 배주량(Bell, Lottie Witherspoon) 선교사의 딸이었다. 배유지 목사는 이미 1893년 한국에 선교사로 임명된 분이다. 샬롯은 불행하게도 2살 때(1901년) 어머니를 잃었다. 배유지 목사가 1898년 목포 선교부를 설립하고 1901년 선교여행으로 전주에 가있는 동안 그의 부인이 아프다는 전보를 받고 바로 목포를 향해 돌아왔는데 도착하니 부인은 벌써 소천한 뒤였다(당시는 경부선이 1905년, 호남선이 1914년에 개통되었기 때문에 바로 간다고 해도 군산에서 목포로 배를 타고 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의 부인은 남장로교 선교사로서 최초로 소천된 분이었다. 그녀는 현재 서울의 양화진 제1묘역 바-13에 안장되었다. 떠난 뒤 남겨진 자녀는 5살의 아들과 2살 된 딸 샬롯이었다.

 

이런 사정을 안 인돈은 샬롯과 더 가까워지고 더 옆에서 도와주고 싶은 심정이 솟구쳤다. 8살 때 장티푸스로 사망한 사랑스런 누이동생 칼리의 생각이 나기도 했다. 아버지를 떠나 미국에서 지내다가 대학에 가기 전 1년 만이라도 함께 살고 싶어 왔었다는 그녀가 측은하기도 했다. 배 목사는 바로 어머니를 잃은 자녀들을 미국으로 데려가 그녀의 고모들과 켄터키에서 살게 했으며 그녀가 그때 아버지와 함께 산 것은 아버지가 재혼해서 한국으로 떠나기까지 3년 동안 이었다고 했다.

 

샬롯은 과거 인돈과의 추억을 많이 이야기 했는데 다음해 한국을 떠나기 전 여름에 광주에서 선교집회가 있을 때의 이야기도 했다. 이 모임 때 인돈은 오부인(Whiting, Georgian: 1904년 과로로 쓰러진 남편 오기원의 뒤를 이어 계속 선교활동을 하다가 1923년 귀국) 선교사네 집에 머물고 있었는데 샬롯은 그가 자기 집에 머물지 않은 것이 무척 서운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인돈은 자기 아버지에게서 말과 수레를 빌려서 자기와 캐시 레이놀즈(Reynolds, Carey)양을 태우고 같이 놀러 나가주어서 너무 기뻤다고 말했다. 그러나 인돈은 그때까지도 사랑을 고백하지 않았다.

 

오승재 장로 <한남대 명예교수·오정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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