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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인돈 이야기
[[제1276호]  2011년 5월  28일]

2. 선교현장 ⑥

<3> 노총각의 결혼과 신혼살림 ②

 

인돈이 마지막 한국으로 떠나기 전에 샬롯을 만났을 때 그는 사랑을 고백했다. 선교사가 배필을 찾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첫째 여자와 데이트할 기회와 시간이 없고 또 여성을 만난다 할지라도 선교사를 따라 타국에까지 가려고 하는 여인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따라서 현지에 있는 처녀 선교사를 만나 결혼하는 일인데 그것 또한 쉽지 않다. 그때까지 화려하게 성공한 사례는 1894년에 내한한 의료 선교사 하위렴(Harrison, William Butler)과 1892년 남장로교 최초 7인 선발대 중의 처녀 선교사였던 데이비스(Davis, Linnie F.) 선교사와의 감쪽같은 밀회와 그들의 결혼인데 개인 선교사의 주택에서 서울 시장과 미총영사의 참석 하에 1898년 결혼식을 떠들썩하게 치렀지만 데이비스 부인은 남편을 돕다가 전염병이 감염되어 1903년, 5년 만에 소천하였다.

 

샬롯은 인돈을 무척 따르고 사랑했다. 그녀의 수기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저는 그가 나를 두고 떠난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나 그때 저는 선생 직업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를 따라나설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8월 중순에 한국으로 떠났는데 제가 다음해 5월(1922년 5월 27일 증기선 “Bay State”로) 시애틀에서 한국으로 가는 배를 타러 가기까지 기다리는 겨울이 얼마나 길었는지 모릅니다.”

 

그들의 사랑은 급진전해서 샬롯은 한국에 들리지 않고 일본으로 직행하고 인돈은 한국에서 그곳으로 달려와 1922년 6월 10일 일본에서 결혼식을 하게 되었다. 31세의 신랑과 23세의 신부가 화촉을 밝히고 한 가족이 된 것이다. 그 뒤 1960년까지 두 부부는 오직 한국을 위해 살다가 세상을 하직하였다.

 

장인 배유지 목사는 그때 2대가 한국의 선교사가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배유지 목사는 1901년에 첫 부인을 잃고 다시 1919년에 제암리교회 참상을 취재하다가 교통사고로 둘째 부인을 잃었다. 그리고 셋째 부인은 앞에서 언급한 다이사트가 들어와 평생을 같이 살았으며 두 아들을 더 얻게 되었다.

 

그는 세상 사람의 눈에는 퍽 불행한 삶을 살았지만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데는 목숨까지 중하게 생각하지 않은 분이었다. 사위 인돈의 결혼을 출발점으로 그 후손들 즉 배유지 목사의 후손 4대가 한국 선교사가 되었으며 1995년에는 배유지 100주년 기념사업회(Eugene Bell Centennial Foundation)를 조직하였고 그의 외증손자 인세빈(Linton, Stephen)은 지금도 ‘한국의 기독교 친구(CFK)’라는 이름의 조직으로 북한을 돕고 있다.

 

결혼식에는 그녀의 아버지와 큰오빠(Bell, Henry)가 참석했으며 친척 되는 로간(Chas A. Logan)목사의 주례로 아침에 아주 조촐한 결혼식을 치렀다. 그러나 그것은 이국땅에서 황홀한 결혼식이었으며 신혼여행으로 일주일간 다닌 나라(奈良: 일본의 고도)도 꿈속 같았다. 그 뒤 그곳은 아주 비좁은 호텔 방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하오리 하까마가 놓인 방에서 신방을 차린 것은 꿈과 같았다.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에서 보았던 다다미방을 처음 보았던 것이다. 그들은 거기서 허니문 베이비도 갖게 되었다. 다시 로간 목사가 사는 도꾸시마(四國, 德島)를 방문하여 거기서 2, 3일을 더 지내고 한국으로 돌아와 광주로 가서 우선 그녀의 아버지 배유지 목사의 집에서 묵었는데 마침 그 때 열리고 있는 선교부 연차대회에 참석하였다. 대회가 끝난 뒤 신방을 차릴 군산으로 갔다.

 

인돈의 부인 인사례(이제부터는 샬롯의 한국명을 쓰기로 한다.)는 그때를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모든 것이 새로웠습니다. 남편과 같이 사는 것도 새로웠고 군산이라는 땅도 새로웠습니다. 그곳에서 인돈이 혼자서 어떻게 살고 있었는지도 아주 궁금했습니다. 이리역에 내리자 남편이 근무하는 영명학교의 선생들과 몇몇 선교사가 마중 나와 있었습니다. 기차가 없던 때여서 하위렴 선교사부부의(하위렴은 1908년 둘째 부인, Harrison, Margaret와 결혼하여 군산에 와 있었음) 사륜마차를 타고 갔습니다.

회색 벽돌집으로 되어 있는 하위렴의 집에 가기 위해서는 좁은 다리를 건너야 했는데 사륜차가 다리 앞에 도착하자 다리 앞에서 하위렴 부인은 조심스럽게 내려서 걸어서 건넜습니다. 그러면서 자기 남편은 매우 조심해서 이 다리를 운전해서 건너지만 자기는 늘 걸어서 건너는 것을 좋아한다고 설명했는데 겁 많은 그녀가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것 같아 그것도 좀 이상했습니다.

2, 3일 동안은 군산 병원에서 일하는 손배돈 선교사 댁에서 대접을 받으며 잘 지냈는데 그 때 하위렴 부부는 곧 안식년을 맞게 되어 떠나게 됨으로 우리 부부가 원한다면 자기네 집에 머물러 있어도 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위렴 선교사의 집을 택하기로 했습니다. 그들이 들어갈 수 있는 다른 한 집은 바람이 센 곳에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승재 장로 <한남대 명예교수·오정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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