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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인돈 이야기
[[제1279호]  2011년 6월  18일]

3. 교육가로서의 인돈 ②

<2> 전주 신흥학교 ①

 

군산에서 영명학교 교장으로 5년간 일해 왔던 인돈은 한국 선교부에서 점차 교육을 담당할 지도자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 따라서 그는 1926년 초가을 선교부의 명을 받아 남학교 교육의 중심이 될 전주로 전임하게 되었다. 광주가 여학교 교육의 중심지면 전주의 신흥학교는 남자 고등보통학교로 터를 잡게 할 학교였다. 그를 존경하는 군산 영명학교의 선생들이나 학생들이 그의 전출을 반대했지만, 선교부 결정이었으므로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한국 선교부가 남장로교 기독교 교육의 본부를 만들고자 하는 전주 신흥학교에 그를 기용하는 것은 당연한 처사였다.

 

전주는 한국 선교회가 지방에 선교부를 세운 것 중의 최초의 것이었다. 1892년에 내한한 미국 남장로회 7인 선발대 중 한 사람이었던 최의덕(Tate, Lewis Boyd) 선교사가 1995년 전주에 터를 잡고 그해 12월 함께 내한 했던 그의 누이동생 최마태(Tate, Martha Samuel)가 합류함으로 전주 선교부는 탄생했다. 이눌서와 최의덕은 진즉 전주 지방을 답사했으나 당시는 동학농민운동, 청일전쟁, 을미사변(1893~1895) 등으로 국내 정세가 어수선하여 전주지회 설립이 늦어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선교부는 한국인 조사(助事) 정해원을 전주로 내보냈기 때문에 그의 거처에서 전주 예배당(지금의 서문교회)의 싹이 텄다. 지금은 그 교회의 설립일을 1893년으로 하고 지난 1993년에 100주년 행사를 하였다.

 

또 신흥학교도 1900년에 세워져 1907년에 초대교장 유서백을, 1911년에 2대교장 이눌서를 그리고 1913년부터는 여부솔(Eversole, F. Monwell; 1912년 내한)이 4대교장으로 취임해서 선교회의 활동이 활발했다. 이때 인돈은 그해 초 셋째 아들 휴(Hugh Linton)를 얻었는데, 아이들과 함께 수레를 타고 전주까지 이사했다. 숙소로는 최의덕(1892년 내한)선교사가 나이가 많아 은퇴해서(1925년 심장병 악화로 귀국) 마침 비어있던 그 집에 짐을 풀 수 있었다. 인돈은 얼마 동안 신흥학교에서 여부솔과 함께 동사 교장 역할을 했으며 영어 입문과 구약사(舊約史)를 가르쳤다.

 

전주에 온지 얼마 후 인돈은 일본에 가야 했다. 당시 교육계에서 이미 알려진 인물이었던 그는 일제 당국으로부터 외국인 교육 종사자들을 인솔하고 일본 교육현장을 견학하라는 권유를 받았다. 여러 교파의 선교사들이 한꺼번에 일본으로 초대되어 일본의 대표적인 학교를 견학하며, 융숭한 대접을 받고 돌아왔다. 미일 관계가 아직 원활했던 그 때 일제가 교육에 종사하는 미국인 선교사들을 회유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회유정책은 빗나갔다. 신사참배 반대로 제일 먼저 문을 닫은 곳이 신흥학교였기 때문이다.

 

인돈은 일본 견학에서 돌아온 후 바로 신흥학교를 총독부 지정학교로 인가 받기 위한 기초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3·1 운동 이후 일본은 소위 문화정치를 표방하고 1922년 ‘제2차 조선교육령’을 발표한 뒤 이어 1923년에는 지정학교라는 제도를 만들어 일본과 동일한 시설, 교사진, 교육과정을 맞출 수 없는 학교는 국가가 인정하는 고등보통학교(보통학교 6년을 졸업하고 들어가는 5년제 학교)의 자격을 인정할 수 없다고 하였다. 지정학교가 되어야만 졸업생이 누릴 수 있는 모든 특혜가 주어졌었다.

 

한국 선교부는 산하 5개 선교지부에 10개의 학교를 가지고 있었는데 재정적 능력이 없었으므로 진통 끝에 한 개의 남학교와 하나의 여학교를 택하여 지정학교로 중점 육성하기로 하고 남학교는 전주의 신흥학교, 여학교는 광주의 수피아학교를 선택하여 육성키로 한 상태였다. 그렇게 되어 인돈을 전주의 책임자로 택한 것이다. 사실 일제가 요구한 이 엄한 규정의 핵심은 한국의 교육 향상 차원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엄한 규정으로 사립학교가 지정학교가 되는 것을 억제하고 반면 관·공립학교의 혜택을 늘려 기독교 학교와 차별화 하므로 자연 학생들을 관·공립학교로 유인하여 한국에 있는 가시 같은 기독교 학교를 고사시키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한국 학생들이 관·공립학교에 들어가 일제의 황국신민이 되게 하려는 데 참 의도가 있었다.

 

신흥학교는 인돈이 오기 일년전(1925)에 안식년을 맞은 위인사, 변요한 선교사 등을 통한 모금 활동으로 노스캐롤라이나 주 그린스보로(Greensboro)에 사는 리처드슨(Richardson, Lunsford)과 그의 가족으로부터 본관과 강당을 지을 $70,000을 거의 대부분 약속 받은 상태였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 교내의 질적인 향상이 뒤따라야 했다.

 

인돈은 새로 부임한 학교에서 자기의 사명을 다 하기 위해 학교 안팎에서 총력을 기울였다. 안에서는 우선 교사들이 학생들을 충실하게 가르쳐야 할 것을 강조했다. 먼저 수업시간 엄수를 강조했다. 수업 시작종이 쳤는데 잡담하고 교실로 안 들어가는 선생이 많았다. 또 끝 종이 치기 전에 나오는 선생도 많았다. 그는 말로 꾸중하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 주었다. 한 번은 마치는 시간이 다 되기 전에 교실을 나오는 선생을 만났다. 그 때 인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시계를 끌러서 그것을 그 선생 앞에서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 11:1)”는 말씀을 실천하고 있었다. 이 뒤로 이 한국인 선생은 다시는 끝 종이 치기 전에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오승재 장로 <한남대 명예교수·오정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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