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장로신문
뉴스오피니언교양피플미션말씀특별기고 | 지난연재물
[제1615호]  2018년 10월  20일
기사검색
전장연 총회 교단 교계 동정 연합기관행사일정 특별기획 포토에세이
기독교용어해설
성경어휘심층해설
성경난해구절해설
한국교회선교비화
선교기행
신앙소설
북한통신
성경동화
수필릴레이
그날까지
철학이야기
한국역사 그 뒷이야기
5분사색
장로열전
교회와 복지
역사의뒤안길
대인물열전
Home > 지난 연재물 > 신앙소설
인돈 이야기 43
[[제1311호]  2012년 3월  10일]

4. 대학설립의 소명 ⑧

 

<5> 위대한 태양, 인돈

 

1960년 6월 말, 인돈은 의사들의 권고로 미국에서 치료를 받기 위해 한국을 떠났다. 그 후 자신이 사랑하는 한국 땅으로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인사례 부인은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우리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서 놀라셨지요? 4월부터 인돈의 건강은 좋지 않았습니다. 6월에 전주에서 있었던 선교회 연차대회에서 의사들은 미국으로 돌아가기를 권했습니다. 우리는 비행기로 떠나 6월 30일에 미국의 둘째 아들 유진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그는 의사입니다. 인돈은 얼마 동안 검사를 받기 위해 병원에 있었으나 지금은 유진의 안락한 집으로 와 있습니다. 그는 아직도 매우 허약한 상태지만 아주 느리게 조금씩 회복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의 사명을 포기하고 많은 한국 사람들을 떠나 이곳에 와 있는 것은 가슴이 쓰린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매일 놀라운 방법으로 우리에게 은혜와 힘을 더해 주십니다. 여러분들이 우리를 위해 그렇게 많이 기도해 주고 있다는 생각이 힘과 위로의 원천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의 기도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서는 69세를 기해 불귀의 객이 되었고, 하늘나라에서는 부르심을 받아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다. 1960년 8월 13일 테네시 주 녹스빌에서였다. 아프면 수술하고 다시 뛰어들고, 또 아프면 수술하고 다시 현장으로 뛰어들어 불사조처럼 일했는데, 이번엔 하나님께서 궁극적인 안식을 허락하신 것이다.

인돈의 셋째 며느리 인애자(Linton, Lois Elizabeth Flower, 흔히 Betty, 1953년 내한)는 인돈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어떤 사람의 삶은 태양에 비유할 수 있다. 그들은 우아하고 찬란하게 떠올라서 한낮을 향해 작렬히 빛을 내다가 선명한 영광 가운데 서서히 가라앉는다. 그들이 여기, 이 땅 위에 있는 동안 뿌린 빛과 따스함은 사라진 뒤에도 볼 수 있으며 느낄 수 있다. 윌리암 올더만 린톤의 삶이 이와 같다.’

 

여수 애양원 나환자 병원에서 나환자 선교사업에 전념했던 보이열 목사는 인돈의 업적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인돈은 한국의 수천 명의 젊은 학생들이 한국의 새로운 미래를 예비하는 데 큰 영향을 준 교육자일 뿐 아니라, 충성스러운 장로교인으로 예수교 장로회 총회와 노회의 모임에 참석하여 유용한 충고와 상담을 한 분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그의 판단을 믿고 그를 크게 신뢰했습니다. 그는 이런 신뢰를 배신하지 않기 위해 매우 세심하게 배려했던 사람입니다. 가치 있고 도울만한 일이 아니면 많은 이야기도 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선교회에서나 노회 그리고 총회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기도 했습니다. 인돈 박사는 현명한 외교관이었습니다. 해방 이후 일본 관원 및 한국 관리들과 여러 해 동안 외교를 하며 지냈습니다. 이들은 그의 교육적 재능과 사랑하는 한국 사람들을 위해 여러 해 동안을 노심초사한 것을 감사하고 있었습니다. 인돈 박사는 복음 사역자였습니다. 그는 약한 많은 교회를 주말에 방문하여 설교자로 교사로 친구로 환영을 받았습니다. 인돈 박사는 언어학자였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그의 말을 잘 알아들었으며 새로 온 선교사들은 그에게서 한국어를 배우는 방법을 교습 받고 충고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는 사냥과 등산과 캠핑을 좋아했으며 그의 유머는 사람을 끄는 예리한 것이 있었습니다. 어린애나 어른이 다 그를 좋아했으며 옳고 그른 것에 대한 매우 높은 기독교 윤리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는 현명한 아버지였으며, 헌신적인 남편이었으며, 진정한 친구였으며 능력 있는 선교사였습니다.”

 

인돈은 사랑하는 아내와 4명의 아들 그리고 자·외손 18명을 뒤에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의 삶, 그의 헌신, 종말을 향한 그의 소망은 성경 말씀 그대로였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라.”(딤후 4:7-8).

 

 

[연재를 마치며] 전기를 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사실에 충실하다보면 무미건조해지며, 픽션을 대담히 도입하면 생존해 있는 후손들을 당황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글은 사실에 충실한 편이며 제가 공저의 한 사람이었던 ‘인돈평전’을 기초로 교정, 재편집했기 때문에 저자의 후손들의 검증을 받은 것들입니다. 연재의 목적은 인돈 선교사를 전국 장로와 선교사 지망자들에게 소개하고 한남대학교 교직원과 학생들에게는 그분의 창학 이념을 알리고 싶어서였습니다. 독자 중에서 단행본으로 내 주지 않겠느냐는 주문도 받아서 끝까지 읽어 주신 분들에게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지면을 할애하신 장로신문에 감사합니다.

 

오승재 장로<한남대 명예교수·오정교회>

[ 저작권자 ⓒ 장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저작권문의
이번호 많이 본기사
타락한 천사, 사탄, 루..
기드온의 ‘금 에봇’
147. 철종의 가계도 ..
59. 초락도 금식 기도..
332. ‘기도합니다’와..
<94-총회총대5>
“사나 죽으나, 선하게 ..
[장로] 평생을 교회·..
<94-총회총대4>
331. ‘고범죄’에 ..
만평,만화
그리스도의 향기를 품은 직장인.....
가을엔 기도로 우리의 영혼을 따.....
우리 나라, 우리 글자, 한글 사.....
공지사항
[정기휴간]5월 10일자
[9월 28일자] 추석연휴 휴간..
회사소개구독신청 지사 Contact Us Site Map

한국장로신문의 모든 콘텐츠(기사) 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ㆍ복사ㆍ배포 등을 금합니다.
청소년보호책임자: 이승담 | Copyright (c) JANGRO.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