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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5. 전승 뒤엔 패배가, 행운 뒤엔 불운이 따르기 싶다
[[제1375호]  2013년 7월  20일]

장자(壯子)의 우화 한토막 : 장자가 어느 여름날 집 근처 밤나무 숲을 산책하고 있는데, 까치 한 마리가 밤나무 가지에 앉아 있었다. 날기 전에 잡아야지! 하며 돌덩이를 집어들고 던지려고 보니 까치는, 사람이 자기를 노리고 있는 줄도 모르고, 다른 나뭇가지 위에 있는 사마귀(당낭)만 노리고 있었고, 사마귀는 또 자기가 위기에 직면해 있는 것도 모르고 건너편 가지에 있는 매미를 잡으려 달려가고 있었고 매미 역시도 자기 뒤에 있는 죽음의 위기를 모르고, 좋은 세상 만났다는 듯이 목청껏 노래만 부르고 있었다. 그 묘한 먹이사슬 관계를 목격한 장자는 혼잣말로 미물들은 저렇게 바로 자기 뒤도 살피지 못하고, 눈앞만 보고 사는 구나! 그것을 불쌍히 생각한 나머지 돌덩이를 내려놓고, 황급히 밤나무 밭을 빠져나오고 있는데, 이번에는 밤나무 농장 주인이 장자를, 밤 훔치러 온 도둑인줄 알고, 막대기를 들고 소리를 질러가며 쫓아오고 있었다.

 

그렇구나! 영락없이 나의 뒤에도 나를 노리는 추격자가 있었구나! 그러고 보니 사람도 저들 미물과 크게 다를 것이 없구나. 세상 사람들은 나를 두고 현인(賢人)이라 하지만, 나도 속절없는 우인(愚人)일 뿐이다. 장자는 사람들 보기가 부끄러워, 그날 이후로 자기 집 안방에 고개를 숙이고 앉아 몇 달간 두문불출을 했다고 한다. 이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다 경쟁을 하면서 살아가는데, 거기에서 이겼다고 하는 순간부터 누군가에 의해 나의 승리가 패배로 전락될 수도 있고, 나의 인격도 권위와 생명까지도 위협을 받을 수 있다. 우리들의 삶은 항상 그렇게, 쫓기듯이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권투 선수 알리를 이길 자는 이 세상에 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그도 어느 날 누군가에 의해 링 위에 쓰러지더니, 다시는 일어나지도 못하고, 지금은 불치의 신경질환을 앓고 있다고 한다. 1960년대 일본의 레슬링 선수 역도산도 정말 천하무적의 강자였다. 세상에 그를 이길 자는 없는 듯이 보였는데, 그 역시 이름도 없는 야쿠자의 칼에 맞아 저항 한 번 못해 보고 죽고 말았다. 동물이나 사람이나 기업이나 국가나 영원한 승자는 없다. ‘이겼다고 하는 순간부터 강적의 추격을 받게 되는 것’은 세상사는 이치인 것 같다. 행운도 그렇다. 행운이 오면 불운이 그 뒤를 바싹 쫓는다고 한다. 그래서 “불운을 행운의 그림자”라 하는 것이다.

 

우리 말에 좋은 일에는 반드시 사탄이 따라 다닌다는 의미로,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하는데, 그것도 그런 뜻이고, 바울의 “스스로 섰다고 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는 말 역시 방심하는 순간 위험이 온다는 뜻이다. 손자병법에 나오는 전승불복(戰勝不復) 응형어무궁(應形於無窮)이란 말도 승리는 거듭되지 않는 법이니, 승자의 위치를 지키려면 무궁하게 변화하는 형태에 적절히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이다. 대응하라는 말은 방어벽을 치고 대비한다는 뜻이기도 하고 싸워서 이기라(극복)는 뜻도 있고, 여의치 않을 땐 피하라는 뜻이기도 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5월 대미외교도 성공적으로 했지만, 6월 말의 대중외교는 더욱 성공적이였다. 그러나 싸움을 다 이겼고, 앞으로 있을 싸움에도 이길 자신이 있다 하더라도, 긴장을 늦추거나, 방심하거나 교만하면 안 된다. 멍 하니 있다가는 국내에 심각한 내분이 일어날 수도 있고, 가정에서 의외의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나라밖에서 일본이나 북한이나 러시아가 뜻밖의 문제를 가지고 압박해 오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살아있는 생명체는 항상 가상 적을 향해 대항할 의지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은 반드시 승리의 길을 열어주실 것이고 어느 때는 피할 길을 주시기도 한다. 적당한 긴장은 언제나 하고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변우량 장로<새문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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