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장로신문
뉴스오피니언교양피플미션말씀특별기고 | 지난연재물
[제1615호]  2018년 10월  20일
기사검색
전장연 총회 교단 교계 동정 연합기관행사일정 특별기획 포토에세이
기독교용어해설
성경어휘심층해설
성경난해구절해설
한국교회선교비화
선교기행
신앙소설
북한통신
성경동화
수필릴레이
그날까지
철학이야기
한국역사 그 뒷이야기
5분사색
장로열전
교회와 복지
역사의뒤안길
대인물열전
Home > 미션 > 장로열전
252.교회 개척자 김동교 장로
[[제1456호]  2015년 4월  25일]

김동교(金東敎, 1901-1971) 장로는 충청남도 서천에서 출생했다. 그는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가정 형편이 어려워 상급학교 진학을 포기했지만 농사일을 돌보며 중등 과정을 독학으로 공부했다. 그 후 김동교는 큰 뜻을 가지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당시 일본은 강제로 을사보호늑약(乙巳保護勒約)을 체결하고 장차 중국 대륙을 자신의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조선을 점령하였고 조선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핍박과 탄압을 받았다.

18945월 청나라 군인 2,100명이 아산만에 상륙하였고 일본 군인이 인천에 도착하자 한반도를 누가 점령하느냐 하는 이권 때문에 청일전쟁이 일어났다. 이 전쟁으로 청나라는 대패하고 일본군이 승리하면서 조선은 자연스레 일본의 지배를 받았고 이를 예측했던 전라도 농민들이 북상하면서 일본 군인 축출 운동이 전개되었다. 18957월에 김홍집 내각이 성립되었고, 이때 일본 낭인(浪人)들이 경복궁에 난입하여 민비(閔妃)를 시해하고 친일내각을 출범시켰다. 이 사건을 을미사변(乙未事變)이라 한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잘 알았던 김동교는 일본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고향을 떠나 부산에서 일본 시모노세키(下關)로 향하는 관부연락선을 타고 일본에도착하였고 다시 목적지인 도쿄(東京)로 향했다. 머리가 영리했던 김동교는 와세다대학에 진학하고 일본인들과 경쟁하면서 열심히 공부하였다.

그러던 중 부인의 생명이 위독하다는 소식이 전달되었고 김동교는 학업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다행히 부인의 병이 호전되었고 김동교는 고향 근처에서 교사 생활을 하다가 호남평야에서 생산되는 벼를 판매하기 위해 도정공장이 있는 전라북도 줄포로 이사를 하였다.

줄포에는 교회가 없어서 자신의 절친한 친구 이태삼과 함께 기도하면서 19356월에 줄포교회를 설립하였다. 줄포에 기독교가 정착하자 많은 사람들이 줄포로 모여들었고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면서 모두들 열심히 전도한 결과 꾸준히 교인들이 늘어갔다. 계속해서 교인들이 모여들자 장로를 선출해야 한다면서 전북노회로부터 장로 선출 허락이 났고 줄포교회에서 일꾼을 선출하였다.

이때 많은 교인들이 김동교 집사를 장로로 선출하였고 전북노회가 주관하는 장로 교육을 다 받은 후 1938515일 호남지방에서 처음으로 30대의 젊은 나이에 장로로 선출되었다. 19435월 일제는 재림사상을 강조하는 성결교회를 폐쇄하였고 줄포교회의 담임 목사인 김창환 목사와 김동교 장로가 체포되어 얼마동안 전주형무소에서 투옥 생활을 하였다.

모든 형기를 마치고 나온 김동교 장로는 줄포에서 가까운 정읍에 정읍교회를 설립하였고 이후 해방이 되자 김동교 장로는 줄포로 돌아와 19483월에 줄포교회를 중축하였다. 그 후 19506. 25가 일어나면서 북한 인민군이 줄포까지 점령하여 김동교 장로는 전남 나주로 피신하였다. 국군과 유엔군이 인천을 상륙하고 다시 9. 28 수복이 이루어지면서 대한민국은 하나님의 보호 속에서 전쟁으로 파괴되었던 모든 건물을 복구하고 다시 사람들이 모여들며 평온한 나날을 맞이하게 된다.

영화사업을 하던 김동교의 아들 김영환은 줄포방앗간을 정리하고 군산으로 이사한 후 군산중앙교회에 출석하다가 장로로 피택을 받고 이어 장립을 받았다. 김영환 장로의 딸이자 김동교의 손녀 김용자는 강근환 목사(현 원로 목사, 전 서울신학대학교 총장)와 결혼하였다. 강근환 목사는 서울신학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교토(京都)에 있는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많은 후배를 배출하였다. 김영환 집사의 부인 김종순 집사는 군산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으며, 그의 전도로 군산 한의원 김태욱 원장은 세례를 받고 그 이후 그의 신앙은 놀라울 정도로 성장하였다. 김태욱 원장은 엄청난 금액의 십일조를 한 번도 빼놓지 않고 하나님께 바쳤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혼자만 받는 것 같았다. 한의원은 남이 부러울 정도로 운영이 잘 되었고 아픈 곳을 잘 치료한다는 소문으로 늘 환자가 많아 군산뿐만 아니라 전북지방에까지 알려졌다. 그의 명성이 널리 알려지자 원장은 더 열심히 기도하면서 진료하였다. 특별히 그는 아침에 문을 열면 직원들과 함께 하나님께 기도하고 시작 하였다. 그리고 진료할 때에도 환자의 손을 붙잡고 기도하는 그 모습에 수많은 환자들이 은혜를 받았다고 한다. 70세가 넘자 그는 원로 장로로 추대 받았으며, 197121271세의 나이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떠났다.

그의 후손으로는 장녀 김정희 전도사, 외손자인 미국 뉴저지교회 김영호 목사가 있고 그의 손녀사위인 서울신대 명예총장 강근환 목사가 있다.

김수진목사<한국교회역사연구원 원장>

[ 저작권자 ⓒ 장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저작권문의
이번호 많이 본기사
타락한 천사, 사탄, 루..
기드온의 ‘금 에봇’
147. 철종의 가계도 ..
59. 초락도 금식 기도..
332. ‘기도합니다’와..
<94-총회총대5>
“사나 죽으나, 선하게 ..
<94-총회총대4>
[장로] 평생을 교회·..
331. ‘고범죄’에 ..
만평,만화
그리스도의 향기를 품은 직장인.....
가을엔 기도로 우리의 영혼을 따.....
우리 나라, 우리 글자, 한글 사.....
공지사항
[정기휴간]5월 10일자
[9월 28일자] 추석연휴 휴간..
회사소개구독신청 지사 Contact Us Site Map

한국장로신문의 모든 콘텐츠(기사) 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ㆍ복사ㆍ배포 등을 금합니다.
청소년보호책임자: 이승담 | Copyright (c) JANGRO.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