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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3.전 국회의원 안만복 장로
[[제1457호]  2015년 5월  2일]

안만복(安萬福, 1910-1995) 장로는 충청남도 서산군 팔봉면 대황리에서 52녀 중 3남으로 출생했다. 집이 너무 가난하여 낮에는 열심히 일을 하고, 저녁이면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아 열심히 공부하였다. 때마침 마을 이장이 재정보증을 서주어 16세에 서산보통학교에 수석으로 편입하였다. 그러나 가정 형편이 너무 어려워 학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안만복은 직접 돈을 벌어 공부하겠다는 생각에 가출을 하였고 함경북도 청진으로 가서 어느 일본인의 가정을 찾아갔다.

다행히 일본인은 자기 집 머슴으로 일하게 해 주었고, 안만복은 고마움에 열심히 일을 하였다. 또 그는 일본인의 도움을 받아 마을에서 운영하는 야간학원에 등록하였다. 그 당시는 조선이 일본의 지배를 받던 시대로 야간학원에서도 일본어를 가르쳤기에 한글을 배우기 위해서는 야간 수업을 마치고 마을 이장님 댁 사랑방에 가서 배워야만 했고 안만복은 그곳에서 열심히 한글 공부를 하였다.

어느 날 그는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이기 때문에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안만복은 뜻있는 마을 청년들을 모아서 일본인의 만행을 토론하기 시작하였다. 안만복과 청년들은 밤을 지새우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이날 참여한 사람 중 친일 분자가 있었고 이러한 모임을 파출소에 알렸다. 일본 경찰은 안만복을 비롯해서 이날 참여했던 조선 청년들을 모두 체포해 갔다. 이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문을 받았고 다시는 이러한 일을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서야 파출소에서 풀려 나오게 되었다. 안만복과 청년들은 처음에는 밀고자를 그냥 둘 수 없다고 하였으나 결국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용서하였다.

1945815일 일본 왕(천황)이 미국에 항복을 하자 조선은 해방되었고 안만복은 밤새 태극기를 만들고 그 다음날 거리로 나가 조선이 해방되었다는 소리를 지르면서 만세를 불렀다. 안만복은 민족의식이 뚜렷해 해방이 되자 치안대를 조직하고 인지면 치안대장을 맡아 인지면을 평온하게 잘 이끌어 갔다.

해방이 되면서 조선에 있던 일본인들이 불안에 떨고 있는 모습을 본 안만복은 그들이 무사히 부산을 거쳐 일본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선처를 베풀기도 하였다.

그 후 안만복은 충청남도 서산군 농민회 회장, 군민회 부회장을 거쳐 2대 국회의원에 출마하여 당당하게 당선이 되기도 하였다. 이 일로 안만복은 서산 지역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인물로 부상하였다.

그러나 5. 16 박정희의 군사 쿠데타로 국회가 해산되자 정치의 뜻을 접었다. 정치를 한다면서 가정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던 안만복은 제자리로 돌아와 일곱 자녀들과 안정된 생활을 하며 화목한 가정을 이루어 갔다. 안만복은 1961년 인지교회 서리집사로 임명을 받은 후 그 일이 너무 감사하여 성수주일을 지키며 십일조를 하나님의 몫으로 챙기면서 신앙의 뜨거움을 몸소 체험하였다. 19654월 장로 선거가 실시 되었고 전 교인이 안만복 서리집사를 장로로 추천하였다. 그는 교회 법에 의해 당회장의 지도를 받으면서 장로로서 해야 할 일이 어떤 것인지 배우고 지방회로부터 장로 고시에 합격하였다.

교회에서는 안만복 피택장로가 장로로 장립을 받는다는 소식을 언론기관인 교계신문과 지방에 속해 있는 모든 교회들에게 알렸다.

그 후 그는 곧바로 이발소로 향하여 머리를 삭발하고 자녀들의 가정에 방문하여 개척교회 세울 것을 결의하였다. 이러한 소식이 지방회에 알려지면서 그를 초청하는 교회가 많았고 그의 간증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다. 간증 집회에 초청한 교회가 무려 150여 교회나 되기도 하였다.

총회 헌법에 의해 70세가 되면 장로로서 은퇴를 하게 되는데 그는 은퇴 후에 더욱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는 서산군 인지면에 수정교회를 설립하고 한동안 설교를 맡았지만 후임자가 결정이 되자 그 자리에서 물러나 전도인으로 돌아가 버스 안에서 말씀을 증거하고 전도지를 나누어 주기도 하였다.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면서 전도지를 배포하기도 하였는데 실수로 오토바이에서 떨어져 병원에 몇 차례 실려 가기도 했다.

중환자실에서도 그는 전도의 열기를 계속 진행을 하였으며, 담당 의사에게 전도 하기도 하였다. 이때 의사도 그의 전도열에 감동을 받고 예수를 믿는 의사로 만들기 시작하였다.

전도 지상주의자였던 안만복 장로는 199581886세의 일기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그의 저서로는 참 사는 길이 있고 그의 가족으로는 장남 안상록 목사, 3남인 안창천 목사, 4남인 안상원 목사, 손자로는 안세영 목사, 안도환 목사, 안희성 목사, 안능한 목사가 있다.

김수진목사<한국교회역사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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