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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22호]  2018년 12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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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4대 독자로 태어난 김용섭 장로
[[제1460호]  2015년 5월  30일]

김용섭(金容燮, 1918-1999) 장로는 전라북도 옥구군 나포면 서포리 철새의 도래지인 강촌마을에 사는 김동수와 편청운의 사이에서 4대 독자로 출생하였다. 그의 부모는 4대 독자로 태어난 아들을 보다 훌륭하게 키우기 위해서 항구도시인 군산으로 이사를 하였다. 군산은 매년 수많은 쌀을 일본으로 수출했고 일본인들의 마을로 형성되면서 자연히 일본 문화가 들어와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들어 가고 있었다.

이곳에서 성장했던 김용섭은 1925년 일본인이 설립한 군산중앙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군산중학교에 진학하였다. 당시 군산중학교는 전북에서 손꼽히는 학교로 우수한 성적을 가진 학생들이 진학하는 학교였다. 6년제 학교였던 군산중학교에서 김용섭은 열심히 공부하였고 중학교 6년동안 일본식 교육을 받으면서 마음속으로일본식 교육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였다.

다행히 군산중학교에서 좋은 성적으로 졸업을 하고 목재소 기능공으로 취직하였다. 그의 부모는 가정에 경사가 있으면 무당을 불러다 굿을 하였는데 그럴때마다 온 동네가 떠들썩하게 시끄러웠다. 그렇게 열심히 무당을 데려다 굿을 해도 가정형편은 계속 나빠졌다.

그러던 어느날 김용섭은 퇴근길에 십자가 띠를 두르고 예수 천당을 외치는 군산중앙교회 전도대원을 만났고 그는 전도대원의 안내를 받아 군산중앙교회 맨 앞자리에 앉아 목사의 설교를 열심히 들으며 마음에 와닿는 부분은 노트에 열심히 기록하였다. 예배가 끝나고 목사의 안내로 목사실에 들어갔고 목사의 친절에 김용섭은 무척 놀랐다.

그 후 김용섭은 훌륭한 목사를 만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와 부모님을 전도하였고 그 다음 주일에는 온 식구가 한자리에 앉아 예배를 드렸다. 교회에 새롭게 등록하자 목사는 김용섭 식구들을 앞으로 나오라 하여 큰 박수로 환영해 주었다.

교회에 출석한 온 식구들은 1년이 지나면서 학습을 받고 다시 6개월이 지나 세례를 받았다. 김용섭의 열심에 놀란 목사는 21세가 되던 김용섭을 총각 집사로 임명하였다. 그리고 담임목사의 소개로 만난 같은 교회 교인인 손진순 양과 결혼을 하고 안락한 가정을 이루게 되었다.

그러던 중 직장 생활에서 갈등을 느꼈던 김용섭은 만주로 이사를 가려고 준비했지만 담임목사의 만류로 포기하고 군산중앙교회에 열심히 다녔다.

특별히 담임목사는 김용섭을 서리집사로 임명하였고 매 주일마다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봉사하였다. 다시 교회에서 안수집사를 선출할 때 당당히 1등으로 선출이 되었다. 그는 안수집사로 항존 직에 있으면서 군산중앙교회의 회계로서 봉사를 할 때도 조금의 실수도 없이 최선을 다했다.

군산중앙교회가 성장해 가자 장로를 선출한다는 광고가 나왔고 모든 교인들은 한결같이 김용섭 안수집사를 추천하였다. 드디어 투표날 당회장은 공동의회에서 2/3 이상의 득표를 얻은 김용섭이 장로로 피택 되었음을 공표하였다. 그리고 1949522일 군산중앙교회 제2대 장로로 장립 받았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교역자 문제로 분열의 아픔을 겪었으며 성도들을 찾아다니면서 설득을 하고 이단에 빠져 나간 교인들을 일일이 방문하여 기도하고 설득을 하였고 수습이 되는 기쁨을 만나게 되었다. 또한 절간을 판다는 말을 들은 김용섭 장로는 그 절간을 매입하고 그 자리에 교회를 신축하였다. 김용섭 장로는 새벽기도회에 열심히 나가 기도를 하였으며, 그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시고 성도들이 열심히 전도를 하여 군산중앙교회는 날로 부흥되었다. 여기에 개척교회를 도울 때도 피아노를 비롯해서 교회 내에 필요한 성구는 모두 김용섭 장로의 몫이었다.

김용섭 장로는 목재업을 평생사업으로 알고 열심히 일을 하였으며, 이러한 결과로 1948년에는 대림목재 합자회사를 창업하고 대표이사로 취임하였다. 여기에 타지방 공사를 맡으면 그 지역교회의 신축을 목재로 도왔으며, 신학생들의 등록금과 기숙사비까지 모두 지원을 하였다. 여기에 본 교회 건축 시 건축위원장직을 맡아 자신의 자녀들 7남매에게 건축 헌금을 강조하여 훌륭한 교회로 신축을 하였으며, 교회 장학회를 창설하여 모든 학생들에게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해주었다.

그의 지도력을 인정했던 전국장로회 총회에서는 회장으로 추대도 하였으며, 총회 재단 이사, 아시아 태평양 평신도 지도위원장, 군산 YMCA 부이사장을 맡았다. 자녀는 7남매로 모두다 교회를 열심히 섬겼으며, 현재 6남매 모두가 모교회인 군산중앙교회를 섬기고 있다. 김용섭 장로는 19991181세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늘나라로 갔다.

김수진목사<한국교회역사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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