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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복지사업가 황용석 장로
[[제1468호]  2015년 7월  25일]

황용석(黃龍錫, 1916-2000) 장로는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본동에서 황동원과 고귀원 사이에서 21녀 중 둘째로 출생하였고 유년시절에 경상북도 김천으로 이사를 하였다. 황용석의 아버지는 매일 같이 술로 나날을 보내었기에 어머니는 한결같이 남편이 술로 부터 해방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던 어느 날 잘 아는 친구가 주일이면 성경책을 들고 다니는 그 모습에 감동을 받았고 자신도 저렇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었다. 어느 날 친구를 따라 교회에 출석을 하게 되었다. 이날 목사님의 설교에 은혜를 받았던 어머니는 남편에게 전도를 하게 되었다.

이에 아버지는 마음의 결단을 내리고 교회를 다니기로 하였다. 여기에 교회를 다니면 자연히 술도 끊을 수 있다는 말에 감동을 받자 그 길로 결단을 내렸다. 이렇게 해서 술을 끊었고 이 가정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을 것을 믿고 매 주일이 되면 아침 일찍 일어나 목욕을 하고 깨끗하게 빨아 놓은 옷을 입고 교회에 출석을 하게 되었다.

황용석이는 1926년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김천공립보통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었다. 황용석은 그곳에서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되었고 학교 다니는 일이 너무나 좋아 학교만 갔다 오면 그 날 배웠던 내용을 복습을 하여, 모든 내용을 암기할 정도로 힘을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또한 보통학교를 다닐 수 있는 일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알고 열심히 공부를 하였다. 모든 과정을 다 마친 황용석은 1932년 김천공립보통학교를 졸업을 하였다. 그러나 중학교에 진학할 수 없었던 황용석은 담임선생의 권유로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에서 운영하는 중등과 과정의 통신과에 입학을 하게 되었다. 황용석은 중학교에 입학할 수 없는 가정 형편이었지만 통신으로 공부할 수 있는 일에 너무 감사하여 마을 어르신들의 가정을 방문하여 인사를 하였다고 한다.

황용석은 19339월 어머니의 권유로 음성 읍내에 있는 남산교회를 출석하게 되었다. 때마침 새 신자 환영식이 거행되었고 그때 목사님의 간절한 기도에 그만 놀라고 말았다.

황용석은 1935330일에 와세다대학 중등과정을 이수하자 졸업식을 거행할 때 성적이 우수하여 수많은 학생들과 학부모가 모인 자리에서 박수 갈채를 받으면서 졸업장을 받게 되었다. 졸업 후 학교장의 추천으로 김천연탄광산회사 서기로 금납출납을 하는 중요한 직책을 맡게 되었다. 황용석은 이 일이 너무나 감사해서 <목사님의 기도>로 모든 일이 잘 이루어졌다면서 가는 곳마다 자신의 신앙을 소개하기도 하였다. 19398월 석탄사업의 위축(萎縮)으로 회사가 경북 김천에서 점촌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황용석은 석탄사업이 위축을 받고 있었지만 그는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하면서 열심히 일했던 결과로 문정탄광 회계주임으로 승진하였다.

이 무렵 7세나 어린 안재희라는 처녀를 소개 받고 목사님의 집례로 교회당에서 성대하게 예식을 올렸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었지만 그 가정만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여기에 점촌에 있는 함창교회에 출석을 하자 함창교회에서는 젊은 일꾼이 교회에 등록을 하였다며 칭찬이 자자하였다. 열심히 교회생활을 하고 있던 이들 부부는 더 열심히 교회를 섬기게 되었다. 그러나 일제는 황용석 부부를 가만 놔두질 않았고 상주경찰서에 수감 되었다. 이때 황용석은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고 3개월 만에 석방되었다.

1945815일 해방이 되고 일본의 대지 1025평을 불하받아 점촌시민교회를 재건축할 때 교회 앞으로 헌납하였다. 점촌시민교회는 해방을 맞이 하여 교인들이 증가하자 장로를 선출하게 되었고 황용석 집사는 제일 많은 표를 받아 장로로 장립을 받았다.

사회에 봉사하기를 좋아 했던 황용석 장로는 19545월 부산 보육원을 방문한 후 신망애육원을 개원하였다. 자신의 모든 재산을 정리하여 강변 자갈밭 14,000평을 매입하여 고아 100여 명을 수용하였으며, 이때 자신의 자녀들을 이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살게 하였다.

19811월에 장남 영일은 부친을 직접 모시고 성지순례를 다녀온 후 강북제일교회 장로로 장립을 받기도 하였다. 신망애육원 출신들은 교육을 잘 받고 목사, 장로, 간호사 등 각계각층에서 활동을 하였다. 1984년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았으며, 19875월에는 보건사회부장관 표창을 받기도 하였다. 그의 후손으로는 장남 황영일 장로, 차남 황영봉 장로, 삼남 황영재 장로, 사남 황영배 안수집사, 오남 황영태 목사, 장녀 황영숙 권사(신망애육원 원장), 차녀 황영애 집사, 삼녀 황영신 사모(윤상훈 목사) 등이 있다.

김수진목사<한국교회역사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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