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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3.서울 송학대교회 동산에 잠들고 있는 이상원 장로
[[제1469호]  2015년 8월  1일]

이상원(1917-2001) 장로는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에서 아버지 이대성 영수와 어머니 박수련 권사의 사이에서 23녀 중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의 손을 꼭 붙잡고 열심히 교회학교 유년부에 출석하며 신앙을 지키면서 성장을 하였다. 신앙으로 살기로 다짐 했던 그는 기도로 평생을 신앙으로 살았으며, 부모님의 열심 때문에 장로로 장립을 받고 이 땅에서 삶을 마감 할 때까지 오직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게 되었다.

더욱이 일본의 식민지 시대때 많은 고통을 받았지만 그 일 자체를 하나님의 축복으로 알고 더 열심히 기도로 나날을 보내기도 하였다. 1933년 봄에 세례를 받겠다는 굳은 의지를 갖고 매일 같이 새벽기도회 출석을 하면서 간절한 마음으로 모든 소원을 주님께 간구하였다. 드디어 1933년 용사동 장로교회에서 주낙서 목사로부터 학급 세례문답 교육을 받으면서 그 교육 내용을 모두 필기로 남겼으며, 그 내용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암기 하였다.

드디어 학습 세례를 받는 날 신도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교회 교육관으로 모여든 예비 신자들은 꼭 합격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갖고 자신들이 기록한 내용을 펴 들고 암송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드디어 이상원은 당회원들이 모여 있는 당회실에 문을 열고 들어갔다. 당회장을 비롯해서 당회원인 장로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때 이상원은 겸손한 마음으로 인사를 하고 당회원들의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을 하였다. 이때 당회 서기인 장로님의 안내를 받고 다시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 장로 한 분이 대기실에 와서 오늘 세례문답을 받은 교인들은 전원 합격을 하였습니다. 내일 학습 세례식이 있기 때문에 몸 관리를 잘하시고 아침 일찍 교회 당회실로 모여 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전해주었고 몇 가지 주의 사항을 받은 후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때 이상원은 부모님에게 당회장의 질문에 대답을 잘 했다면서 질문 내용을 전부 이야기로 알려 주었다.

이상원은 세례를 받고 세례교인이 된 것을 당회장이 예배 광고시간에 소개를 해주었다. 세례를 받은 이상원은 당회장의 요청에 의해 주일학교 유년부 교사로 봉사도 하고 성가대 대원으로 찬양을 할 수 있도록 부탁을 받았다. 이러한 부탁을 받은 이상원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세례를 받았던 이상원은 총각이었기에 담임목사의 중매로 같은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정신혜를 소개받아 맞선을 보게 하였다. 더욱이 담임목사가 소개한 이상 더 이상 의심할 것 없이 결혼하기로 작정을 하고 1940415일 교회당에서 담임목사의 주례로 결혼식을 거행하게 되었다.

결혼을 하게 된 이상원은 함경북도 청진시에서 사업을 하면서 집에서 그리 멀지 않는 원정교회에 등록을 하고 교회에 출석을 하게 되었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던 이상원은 새 가정을 이루게 된 일에 대해서 너무나 감사하여 새벽기도회도 열심히 나가 하나님께 자신의 모든 문제를 털어놓으며 열심히 기도를 하였다. 그런데 일제의 식민지 생활을 하던 그때 일본이 미국에 패하면서 자연히 조선은 독립을 하게 되었고 이때 이상원은 가족을 이끌고 38선을 넘어 서울 노량진에 자리를 잡고 노량진교회에 출석을 하게 되었다.

해방 후 노량진은 교통의 요지가 되어 한강 이남과 한강 이북을 오고 가는 길에 교통의 요지가 되어 아주 살기 좋은 곳이었기에 스스로 노량진에 자리를 잡았다. 마침 주일 아침에 교회 종소리에 들려오자 그 종소리 나는 곳으로 향하여 걸어가게 되었다. 바로 그곳이 노량진교회가 자리를 잡고 있었고 자신에게는 큰 희망이 되었다. 노량진교회에 출석하게 된 이상원 부부는 안내 집사의 인도를 받고 맨 앞자리에 앉아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이 교회에서 얼마동안 출석을 하였는데 안내 집사의 안내를 받고 담임목사를 만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이상원 부부는 노량진교회에 등록을 하고 열심히 출석을 하면서 새해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들의 신앙을 지켜보았던 담임목사는 서리집사로 임명을 하였다.

이후 이상원 집사는 상도동 쪽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자연히 가까운 교회에 출석하는 것이 새벽기도회에 출석하기가 좋다고 생각을 하고 상도교회로 이명을 하였다. 그가 상도교회에 출석한 지 2년이 지나자 상도교회에서 장로를 선출하게 되었는데 이때 모든 교인들이 이상원 집사의 신앙열에 감동을 받고 많은 교인들이 이상원 집사를 장로로 선출하는 데 많은 표를 밀어주어 자연히 상도교회의 장로로 피택을 받게 되었다. 노회에서 실시하는 장로고시에 합격을 하고 장로로 임직을 받으면서 이상원 장로는 상도교회의 더 없는 좋은 일꾼이 되었다.

이상원 장로는 노량진초등학교 앞에 <태양당>이란 약국을 경영하면서 1955년 종로구 장사동애 있는 중앙신학교에 진학을 하였으며, 1979년 서울남노회 부회장, 1980년에는 서울남노회장로회 회장, 1988년에는 원로장로로 추대를 받기도 하였다. 84세의 나이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송학동산에 고이 잠들었다.

김수진목사<한국교회역사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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