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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5. 비금 덕산교회 초대 장로로 시무했던 김인환 장로
[[제1471호]  2015년 8월  22일]

김인환(1901-1996) 장로는 전남 신안군 비금면 덕대리 망동부락에서 김정규와 남평 문씨댁 사이에서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아들을 낳은 것에 너무 감사하여 동네 잔치를 열었다고 한다.

비금면에 기독교가 전파되기는 19083월 미국 남장로교 선교부 소속 맥콜리(H. D. McCallie, 맹현리) 선교사 조사인 마서규(馬瑞奎)가 목포에서 풍선(風船)배를 빌려 10시간 이상 걸려서 비금도에 도착을 하여 그 즉시 전도를 하면서 시작하게 되었다.

마서규 조사는 전남 해남 출신으로 목포 선교부에서 오웬(Dr. C. C. Owen, 한국명/오원, 또는 오기원) 선교사 구역인 전남 해남에서 조사로 활동을 하였다. 이미 그의 경력을 알았던 목포 선교부에서는 마서규 조사를 첫 번째로 비금도(飛禽島)에 입도(入島)하게 하여 비금 망동부락에 비금 덕산교회(德山敎會)를 설립하였다.

비금 덕산교회가 자리를 잡자 마서규 조사는 일일이 가정을 방문하여 부자가 될 수 있는 길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그때부터 부자가 될 수 있습니다라며 전도하였고 이 말에 감동을 받은 부락민들은 그 귀한 뜻을 마음속 깊이 간직을 하고 비금 덕산교회에 출석을 하게 되었다.

이때 많은 교인들 중에 김인환은 교회에서 운영하는 덕산교회 부속 망동초등학교에 입학을 하고 초등과 과정에서 배우는 모든 과목을 이수를 하게 되었다. 이때 김인환은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하였기에 그냥 나둘 수 없어서 그를 비금 덕산교회 당회에서 비금 덕산교회에서 운영하는 망동초등학교에서 교사로 봉직하도록 임명을 하였다.

교사로 임명을 받은 김인환은 하나님의 큰 축복으로 알고 열심히 학생을 가르치는 일과 또 비금면에 있는 마을마다 순회를 하면서 학생을 모집하기 시작하였다. 이 일로 학생들이 모여 들자 반을 편성하였고 반마다 반장과 부반장을 선출하여 반장과 부반장이 할 수 있는 일을 가르쳐 주기도 하였다.

이에 힘을 얻은 반장과 부반장은 매일 같이 교사의 집에 방문을 하여 기도하는 법과 찬송을 부르는 일을 배웠고 이 일로 인하여 자연히 반()마다 채플 시간을 두고 채플 시간을 통하여 기독교의 진리를 터득하는데 큰 힘이 되기도 하였다. 여기에 힘을 얻은 학교 교사들은 수업이 다 끝난 후에 그 넓은 비금도에 있는 마을을 찾아다니면서 학생을 모집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여론이 좋아지자 자연히 많은 청소년들이 모여 들었다.

이들의 모습을 본 마을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자녀들을 망동초등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해서 줄을 섰다고 한다. 이 학교 초등과 과정을 이수했던 졸업생들은 비금도에 머물지 않고 미국 남장로교 목포 선교부에서 설립한 미션학교에 진학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 남자들은 목포 영흥학교에 진학토록 하였으며, 여자들은 목포 정명여학교 진학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 일로 인하여 비금도에서 출생한 남자는 영흥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에 와서 야학당(夜學堂)을 설립하여, 한글을 배우지 못했던 아주머니들을 불러 모아 한글을 가르쳐 주었으며, 남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정성을 다해서 배움의 길을 열어 주자 비금도에는 한글을 모르는 사람이 하나도 없을 정도였으며 모두 한글로 마음껏 편지를 쓰고, 여기에 남자들은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으면, 여자에게 글을 써서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던 일이 여기저기서 일어나기도 하였다고 한다. 여기에 연애편지가 왕성하자 한때 교회당이 아니라 연애 당이라는 소문도 났다고 한다.

바로 이 일에 열심히 노력했던 김인환은 비금 덕산교회 집사로 봉사를 하면서 야간에 부녀자들을 모아 놓고 글을 가르쳐 주었던 그 일로 인해 덕산교회에서 장로를 선출하게 될 때 글을 아는 교인들은 모두 김인환 집사를 밀어주어서 그가 비금 덕산교회 초대장로가 되기도 하였다. 이미 김인환 씨는 미국 남장로교 선교부에서 설립한 목포 영흥학교에 진학을 하여 모든 과정을 다 마친 후에 목포 영흥학교 보통과 교사로 활동을 하여 많은 인재를 양성하는 데 크게 공언을 했다고 한다.

그는 목포 영흥학교에서 교사로 활동을 하면서 목포 양동교회 협동장로로 봉사를 하기도 하였다. 이 무렵 김인환 장로는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자 미군의 공격을 피해 전라북도 부안군 백수면 대수리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그 후 김인환 장로는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지방에 있는 농촌교회에서 목회를 하다가 다시 고향 가까이에 있는 진도지방, 고흥, 무안 해제 등지에서 목회를 하기도 하였다.

남자들에게만 이러한 혜택이 있었던 일은 아니었다. 역시 미국 남장로교 선교부에서는 여성에게도 남자와 같은 혜택을 주어야 한다면서 목포에 정명여학교를 설립하여 여성들에게 큰 혜택을 받게 하였다. 특히 유명한 소설가 중 한 사람인 박화성 씨가 바로 목포 정명여학교 출신이라고 한다면 모두 다 놀래리라 생각된다.

 

김수진 목사 <한국교회역사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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