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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 세탁업으로 출세한 류익표 장로
[[제1473호]  2015년 9월  5일]


류익표(柳翼杓, 1900-1985) 장로는 경상남도 남해군 남해읍 선소에서 류영환의 23녀중 둘째로 출생하였다. 그는 다섯 살때부터 형을 따라다니면서 형이 배우고 있는 천자문(千字文)을 어깨 너머로 배우며 그 어려운 한자를 모두 습득하였다. 그의 부모는 머리가 영특한 류익표를 그냥 집에만 머물게 할 수 없음을 인식하고 마을에서 운영하는 한문서당(漢文書堂)에 보내게 되었다.

류익표는 한문서당에서 가르치고 있는 동몽선습(童蒙先習)을 다 이수하고 그 내용을 모두 외워버리고 말았고 그를 가르쳤던 선생은 그가 명심보감(銘心寶冠)반에 진급할 수 있도록 추천을 하게 되었다. 명심보감을 배우는 과정에서도 류익표는 이미 가정에서 부모로부터 배웠던 한문이기에 줄줄 외우고 있었다.

그의 부모는 류익표를 집에 놔둘 수 없다는 생각을 갖고 191617세가 되자 일본으로 갈 수 있도록 수속을 밟아 주었다. 부산에서 일본 후쿠오카(福岡)를 다니는 관부연락선(關釜連絡船)에 몸을 싣고 부산을 출발하여 밤 12시에 후쿠오카 앞바다에 정착을 하고 아침 8시가 되자 다시 연락선에 시동을 걸어 830분에 후쿠오카항에 도착을 하고 다시 후쿠오카항에서 일본 오사카(大坂))로 가는 열차를 타고 밤새도록 달려갔다.

드디어 일본의 제2의 도시인 오사카역에 도착을 하자 출입국 관리 직원의 조사를 받은 후 하선(下船)을 하였다. 류익표는 오사카에 도착을 하였지만 그가 머물 수 있는 숙소가 가장 큰 문제였다. 그는 오고 갈 수 있는 길이 없자 그는 할 수 없이 노숙자(露宿者)로 몇 날을 보내게 되었다. 이때 뜻하지 않게 한국에서 건너 온 노숙자를 만나 얼마동안 함께 지내다가 오사카 어느 철물점(鐵物店)에 취직을 하게 되었다.

류익표는 낮에는 철물점에서 일을 하면서 식사와 숙소가 해결이 되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조선 청년을 만나게 되었고 자신이 일본에 오게 된 동기를 말하자 그는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는 오사카 상업실수학교(大坂商業實數學校)에 입학을 하게 되었다. 다행히 야간에 입학을 하였기에 낮에는 철물점에서 일할 수 있었다.

이후 류익표는 세탁소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2년간 있는 동안 세탁소를 운영할 수 있는 길을 찾던 중 뜻하지 않게 좋은 장소에 세탁소를 차릴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낮에는 세탁소에서 일을 배우고 밤에는 일본어를 배워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야간으로 운영하는 오사카 일본어학원에 입학을 하고 출석해서 일본어를 배웠다.

일본어에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기자 2년간 세탁소에서 배웠던 그 기술을 갖고 오사카 시내에 세탁소를 차려 놓고 영업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의 친절에 놀란 사람들은 류익표가 운영하는 세탁소에 몰려오기 시작하였다. 세탁소를 운영하면서 어느 정도 재산을 모을 수 있어서 귀국할 수 있는 찬스만 찾던 중 1929430세가 되던 류익표는 조선으로 귀국해서 목포의 중심가인 대성동에 <류 세탁소>를 개업하였다.

그의 <류 세탁소>에는 많은 손님들이 모여들었고, 어느 정도 생활이 안정되자 좋은 처녀를 만나 결혼하여 부부가 함께 운영하면 곧 재산을 모울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차에 중매로 고향 출신 김덕심(金德心)을 만나 혼인을 하게 되었다. 부인의 내조의 힘이 컸던 관계로 세탁소는 날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고 자연히 재산이 모아지기 시작하였다. 재산이 모아지자 목포 시민들로부터 그는 사업에 성공한 사람으로 인정을 받게 되자 1941년 그의 세탁업은 해가 갈수록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였으며, 목포 시민들은 그를 목포 유지로 추대하게 되었다.

1945815일 오전 12시에 일미전쟁(日美戰爭)에 일본이 미국에 항복을 하자 대한민국은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조선 반도는 미국과 소련의 양 대국 노름에 그만 북위 38선을 중심해서 선을 긋고 38도선 이남은 미국 군인이 주둔하게 되었으며, 38도 이북은 소련군 군인이 주둔하게 되었다. 남한에는 미군이 진주를 하자 대민 봉사를 위해서 통역할 수 사람이 요청되었고 류익표 장로의 둘째 아들인 류행운이 목포상업중학교에 재학하던 중 차출되었다. 이때 류익표 장로는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1946년 봄에 둘째 아들인 류행운이 장질부사로 삶을 마감하고 말았고 실의에 빠진 류익표는 매일 같이 술을 마시면서 세월을 보내게 되었다. 그런데 이 무렵 목포 시내에 소재하고 있는 목포 북교동교회에서 한국 교계의 부흥사로 널리 알려진 이성봉 목사를 초청하여 부흥회를 인도하게 하였다. 이날 부흥회에 참석했던 류익표는 지난날의 지은 죄를 낱낱이 회개하였는데 그는 자신의 죄과를 하나씩, 하나씩 회개를 하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이 끝없이 흐르고 말았다.

이러한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더욱이 중생의 체험까지 했던 관계로 그는 철저하게 주님의 종이 되겠다는 굳은 의지를 갖고 시간이 흘러가는 것도 잊은 채 마루장을 두 주먹으로 내리 치면서 회개의 기도를 하게 되었다. 류익표 장로는 83세가 되자 북교동교회 원로 장로로 추대를 받고 봉사하던 중 86세의 나이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떠났으며, 그의 자녀 10남매 중 류재하 목사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총무의 직책을 맡기도 하였으며, 그의 자녀 중 목사 2, 장로 1, 전도사 1, 권사 3명이 교회에서 봉사를 하였다.

김수진 목사<한국교회역사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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