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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8. 서울 동부교회를 세운 오명환 장로
[[제1475호]  2015년 9월  19일]


오명환(吳明煥, 1890-1969) 장로는 충청남도 천안시 직산에서 오경군과 조씨 댁 사이에서 출생하였다. 철저한 유교의 가난한 삶을 살고 있던 가정에서 출생하였으나, 머리가 영특하고 탐구적인 면이 강하였기에 한문사숙(漢文私塾)에서 천자문(千字文)을 다 외울 정도였다. 이처럼 그의 머리가 영특(英特)하다는 소문이 온 마을뿐만 아니라 이웃 마을에게까지 났었다.

그래서 여기저기서 결혼을 하자는 처녀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결혼은 일생 동안 한 번 밖에 없다는 생각이 있었기에 여러 해를 두고 결혼의 문제는 뒤로 제처 놓았다. 그러다가 15세가 되던 1904년에 집안 어른들의 주선으로 같은 면에 살고 있는 윤상옥이라는 처녀와 결혼하게 되었다.

새로운 가정을 이룬 오명환은 사내로 태어난 자신은 마을에서 살 것이 아니라 큰 도시로 나가야 한다면서 1920 31세의 나이에 고향을 떠나 경기도의 상업도시인 안성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그는 안성에 자리를 잡고 장사를 하게 되었다. 안성 장날에 북을 치고 나팔을 불면서 노래하자 많은 사람들이 그곳으로 몰리기 시작하였다. 이때 말씀을 전하였는데 어떤 사람이 위아래 깨끗한 한복을 입고 있는 그를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바로 그 사람은 안성교회 2대 목사인 박영순 목사였다. 그의 강력한 말씀에 그곳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라고 말았다고 한다.

박영순 목사의 말씀 내용은 “보이는 나라의 세상은 잠깐이고, 보이지 아니한 하늘나라는 영원하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저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살지만 그렇지 아니한 사람은 지옥이라는 저 무서운 세상을 가게 됩니다. 여기에 계신 여러 어리신 분들은 모두 다 좋은 세상에서 살 수 있는 길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이 시간 예수를 믿기만 하면 모두 천국에 갈 수가 있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안성교회의 교인들은 주일만 되면 새벽기도회가 끝나기가 바쁘게 아침 일찍 각 가정을 방문하여 주일 오전 11시 예배에 출석하도록 권유를 하기도 하였다. 이곳에서 얼마동안 생활하던 중 안성교회를 출석한 교인들은 이것으로만 끝나지 않고 짝을 지어서 개인 전도를 실시하기도 하였다.

1938년 오명환은 공무원 체용 시험에 합격을 하고 서울로 진출하게 되었다. 이때 그는 중앙청 호적계에 발령을 받고 근무하던 중 주일이면 서울 중구에 자리 잡고 있는 무교동교회에 출석을 하게 되었다. 그는 교회에 출석할 때마다 혼자만 가서 자리를 체우는 것이 아니라 꼭 새로운 신자를 인도해서 예배를 드렸고 이 일이 1회로 끝나지 않고 열심히 전도를 해서 교회당에 새로운 신자를 많이 초청하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

그런데 그가 살고 있는 동리에서 매주일 무교동까지 가기 힘들기 때문에 가까운 신설동에 교회를 설립해야 겠다는 큰 뜻을 갖고 동대문구 신설동 산 아래 신암학원 낡은 교실 2층 하나를 빌려 월세로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오늘 안암동에 있는 동부교회의 시작이 되었다. 얼마동안 신학생들을 설교자로 세웠으며 신자가 차츰 증가하면서 1년 만에 30여 명이나 모이게 되었다.

이 무렵 일본이 연합군에 의해 패전하자 일본에 있던 많은 한국인들이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으며, 부산과 시모노세키에 왕래했던 연락선이 수없이 사람을 실어 나르기도 하였다. 이러한 상항에서 임종우 목사가 시무했던 교회와 합동하자 50여 명의 교회가 되었다. 그러나 1943 5월 일제의 정책에 의해 재림사상이 강했던 이유로 성결교회를 탄압하기 시작하였다. 여기에 1943 5월 성결교회 박해로 교직자들이 모두 체포될 때  임종우 목사도 6개월간 옥고를 치르게 되었다.

1945 8 15일 일제가 미국에 항복을 하자 해체가 되었던 성결교회가 재건이 되자 임종우 목사는 무교동성결교회(현재 이 교회는 동대문 인근으로 이사를 했으며, 서울중앙성결교회로 부르고 있다.)를 재건하게 되었다. 교인들이 모여 들자 안암동에 200평 대지를 매입하여 130여만 원으로 33평의 교회를 건축한 것이 오늘의 동부교회가 되었다. 이 교회는 성결교단의 대표적인 이만신 목사가 시무를 하였다.  

서울 동부교회를 든든하게 세웠던 오명환 장로는 1969 1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 땅을 떠나서 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 갔으며, 그의 가족은 9남매(2, 7)로 장남 오세현은 의사로서 가난한 자들에게 무료로 많은 치료를 하기도 하였고 차남 오세웅 집사는 국회부의장을 역임하였으며, 7선 의원으로 국가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또한 다섯째 오세춘은 여자 의사로 지역사회에 많은 봉사를 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정신을 갖고 교회와 사회에 봉사할 수 있었던 일은 예수의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은 많은 성결인들의 힘이라고 생각을 하며, 특별히 성결의 정신을 한국 땅에 심어 놓은 일은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은 증거라고 말할 수 있다.  

김수진 목사<한국교회역사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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