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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9. 2선 국회의원을 역임했던 안만복 장로
[[제1476호]  2015년 9월  26일]


안만복(安萬福, 1910-1995) 장로는 충청남도 서산에서 5 2 3남으로 출생하였다안만복은 비록 학교에 입학은 못했지만 집에서 천자문(千字文) 익히고 사서오경(四書五經) 줄줄 외울 정도면 그의 머리가 어떠했는가를 있다. 그는 부모님의 권유로 16 고향 서산 보통학교 4학년에 편입학을 하였다.

그러나 가정의 형편이 너무나 가난해 학교에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자 그는 돈을 벌기 위해 가출(家出)하여 함경북도 청진에 갔다. 그곳에서 그의 딱한 모습을 보고 측은히 여긴 아저씨는 그를 일본 사람이 운영하는 농장에 소개를 주었다. 농장 주인은 일꾼이 필요했기에 그를 채용하고 일을 하게 하였다.

자리를 잡은 안만복은 농장에서 일을 있는 기회를 얻고 일터를 갖게 일에 너무나 감사하여 다른 일꾼들보다 열심히 일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얼마동안 있으면서 일본 사람 밑에서 일하는 자체를 부끄럽게 생각했던 안만복은 하루 속히 일본인으로부터 독립을 해야 한다는 뜻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었다.

그는 일본 사람이 운영하는 일터를 그만두고 조선도 독립해야 한다는 뜻을 갖고 비밀리 조선의 독립을 위해서 운동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귀향(歸鄕) 하게 되었다. 귀향을 했던 안만복은 마을 청년들을 불러 모아 놓고 세계 정세를 설명을 하고 청년들을 향하여 열변을 토하였다.

우리 조선도 일본 제국주의 국가로부터 독립을 해야 한다 굳은 의지를 설명하고 나섰다. 그의 강연이 끝나자, 설명을 듣고 있던 청년들 청년이 손을 번쩍 들고 발언을 하기 시작하였다.

여기에 모인 우리들도 일본 사람들의 밑에서 굽실거리고 일만 것이 아니라 우리들도 당당하게 태극기를 들고 나가 대한독립만세를 부릅시다.

그런데 같이 연설을 들었던 어느 청년이 일본 경찰관에게 사실을 보고하고 말았다. 그러나 안만복은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그를 불러다가 용서를 주고 조국을 위해 함께 일을 하자고 제의를 하였다. 그러던 뜻하지 않게 세계 2차대전에서 일본이 패망을 하고 말았다.

이때 안만복은 해방된 조국은 치안이 몹시 문란을 하였지만 자진해서 치안대를 조직하고 충남 서산 인지면 치안대장을 맡아 치안을 관리하였다. 특별히 일본인들은 해방된 조선인들의 보복이 두려워 걱정을 하고 있을 안만복은 자신해서 그들이 무사히 일본으로 있도록 협력을 주기도 하였다.

이러한 사실을 알았던 인지면 면민들은 안만복을 초대 인지면 면장으로 추대를 하고 자비로 면사무소 직원들의 월급을 주기도 하였다.

행정이 어느 정도 안정이 되자 좌익 운동을 했던 보도연맹 회원들을 인수하여 우익으로 전향을 시킨 사건으로 유명해지기도 하였다. 이때 좌익에서 활동했던 모든 사람들이 우익에 서서 열심히 일을 하는 것에 감동이 되었던 면민들은 안만복이야 말로 인지면의 지도자라고 모두들 말을 하고 나섰다.

안만복은 서산군 농민회 회장, 국민회 부회장으로 추대를 받고 면민들의 치안을 담당하여 서산군에서는 제일 좋은 지역으로 만들어 놓았다. 2 국회의원 선거 당당하게 의원이 되었고 4. 19 이후 5 국회의원으로 출마를 하여 서산군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5. 16 군사 정변이 일어나 국회가 해산을 일이 있었는데 일로 정치는 접어두고 7자녀의 가장으로서 가정을 다스렸다.

안만복은 어려운 정치 속에서도 그의 훌륭한 인격으로 인해 서산군에서는 훌륭한 지도자라고 자꾸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가정이 많이 받았다고 생각을 하고 마을에 있는 인지교회에 출석을 하게 되었다. 1년이 되자 세례를 받은 서리집사로 임명을 받기도 하였다.

안만복은 주일만 되면 새벽 일찍이 교회에 나가 새벽기도회에 참석을 하고 끝이 나면 빗자루를 들고 교회당 앞마당을 비롯해서 교회 주변을 깨끗하게 청소를 하였다. 그의 믿음을 지켜보았던 교인들은 장로를 선출할 안만복 집사에게 표를 던졌고 자연히 장로로 선출되었다.

지방회의 절차를 밟았던 안만복은 1965 9월에는 장로 장립을 받기도 하였다. 지방 교회였기에 목회자를 초빙하기 힘들 때는 직접 강단을 맡아 설교를 하기도 하였으며, 일로 교회는 더욱 성장해 갔다.

여기에 평일에는 항상 전도지를 들고 다니면서 개인 전도에 힘을 쏟기도 하였는데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전도도 실시하였다. 전도밖에 몰랐던 안만복 장로는 1995 8 18 86세의 나이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늘나라로 가게 되었다.

그의 가족 가운데 장남 안상록 목사, 3 안상천 목사, 4 안상원 목사, 그리고 그의 손자 안세영, 안도환 목사, 안희성 목사, 안능환 목사가 맡겨진 교회에서 열심히 사역을 하고 있다.

김수진 목사<한국교회역사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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