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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한국 농민운동의 선구자 김용기 장로
[[제1477호]  2015년 10월  10일]

김용기(1909-1988) 장로는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면 능내리에서 아버지 김춘교와 어머니 김공윤 사이에서 5형제 중 넷째로 출생하였다그런데 그가 세 살 때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죽음에 이르게 되자 그의 어머니는 보통 걱정이 아니었다용하다는 무당을 불러다가 굿을 하였지만 아무런 효과도 없이 돈만 날리고 말았다그리고 집으로 오는 길에 뜻하지 않게 전도지를 나누어 주면서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무슨 병이라도 다 고칠 수 있습니다”라는 말을 하는 것을 듣는 순간 ‘옳지그러면 용기를 데리고 그 교회에 가야겠다’ 생각하고 교회가 어디에 있는지 물었다“교회는 여기서 10리 길 되는 곳에 용진교회라고 있습니다.

이 말에 그 길로 교회를 찾아 나섰다그런데 그 아이가 숨을 크게 쉬면서 엄마를 부르더니 “엄마나 배가 고파서 더 못 걸어가겠어.” 엄마는 아이가 더 이상 걸어 갈 수 없다는 말에 주위를 살펴보니 주막집이 있기에 주막집 주인에게 “우리 아이가 먹을 것을 자꾸 달라고 하는 데 그냥 있을 수 없어서 이곳에 오게 되었습니다아주머니 뭐 먹을 것이 있으면 아무것이라도 주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부탁하여 주막집 아주머니로부터 주먹밥 얻어 먹이면서 전도지를 읽어 보았다“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여 하심이라.       

그렇게 멀리 있던 교회를 찾아 현관문을 열고 교회당에 들어가자 그렇게 아프던 병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어린 용기의 병이 깨끗이 낫게 되자 그 동리에서 잔치가 벌여졌다그리고 이때 예수를 믿기로 결정한 용기의 가족들은 주일만 되면10리나 되는 용진교회를 부지런히 다니면서 기독교에 대한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그렇게 고집이 세던 안동 김씨들이 예수를 믿기로 작정을 하고 마을 가까운 곳에 봉안교회를 설립하였다이 일로 세도가 당당하던 안동 김씨들이 교회를 다녔지만 아무런 탈이 없이 용기는 잘 자랐다

1919 3월이 지나고 4월이 되자 와부 장날을 기해서 경기도 남양주 와부에서도31독립만세를 부르면서 집집마다 다니면서 태극기를 나누어 주며 독립만세에 참여를 하였다어린 용기는 독립만세를 외치는 광경을 보고 자신의 집에 와서 아버지에게 물어보았다

“아빠만세 부른 사람들을 왜 일본 순사들이 잡아가요?

“일본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강제로 빼앗아 일본나라로 만들었는데 나라를 찾기 위해서 그 사람들이 만세를 부른 거야.

이 말에 용기는 마음속 깊이 나라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초등학교 6년 과정을 마치고 졸업을 한 뒤 다시 중학교를 진학하기 위해서 읍내로 나가 광동중학교를 진학하고 6년 과정을 다 마치고 졸업을 하게 되었다이후 용기는 진학을 잠시 미루고 그 멀고 먼 중국 심양(審陽)을 여행하기도 하였다.

중국의 그 넓은 대륙을 보고 농사짓는 법을 배워야 한다며 곧 귀국하여 아버지를 따라다니면서 열심히 농사를 짓는 동안 용기는 많이 성장을 하였다때마침 중매로 이웃 마을에 사는 김봉화 아가씨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아내 역시 남편을 따라 열심히 농사를 지으면서 흙을 사랑하는 일이 인생에 가장 큰 축복이라면서 열심히 농사일을 하였다

그런데 용기가 23세가 되었을 때 그의 아버지가 위장병으로 고생을 하여 용하다는 무당을 불러다가 열심히 굿을 하였지만 아무 소용없이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이때 그의 아버지는 용기에게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기었다

“용기야너는 농군이 되어야 해”라는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용기는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그는 매일 같이 새벽 4시에 일어나 부인과 함께 30분간 가정 예배를 드리고 예배가 다 끝나면 들녘에 나가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하루 종일 일을 하다가 들어오면 잠들기 전에 꼭 가정예배를 드렸다고 한다오직 농토를 일구어 농사를 짓던 김용기는 뜻하지 않게 4천여 평의 땅을 싼값에 매입하고 <봉안 이상촌>을 계획하고 기도하던 중 양평에서 여운형홍천에서는 이인준광릉에서는 최광렬 등을 만나 집집마다 울타리를 치지 않고 무궁화 꽃을 심어서 담장의 역할을 하도록 하였다마을 한복판에 봉안교회를 설립하고 온 마을 사람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야 한다면서 교회를 중심해서 금주 금연 운동을 전개하였다김용기는 1950 625전쟁으로 황폐해진 농장을 일구어 1955년에는 광주군 황산의 그 넓은 들녘을 개간하여 평생 원하는 가나안 농장을 만들고 또 가나안 농군학교를 설립하여 농촌 지도자를 양성하기도 하였다

그 후 김용기는 가나안교회를 설립하고 그 교회의 장로로 장립을 받고 반석 위에 세웠다사업이 확대되자 강원도 원성군에 제2가나안 농군학교를 설립하였다그의 위대한 정신이 1966년 필리핀에서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해서 상을 주는 막사이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1978년에는 필리핀 사이버대학에서 명예인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으며김용기 장로는 평생을 자신이 재단한 간단한 국민복을 입고 여기에 고무신을 신고 살다가 생을 마감했다

김수진 목사<한국교회역사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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