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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0.희생과 충성으로 옷을 입은 오흥목 장로
[[제1502호]  2016년 4월  30일]

오흥목(吳興睦, 1893-1963) 장로는 충청남도 예산읍 향천리에서 오윤희와 박정운의 3형제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그는 어려서부터 손재주가 좋아서 아버지를 따라 목수 일을 배우면서 일을 많이 도왔다고 한다. 1911 4 마을 사람의 중매로 박홍석을 만나 가정을 이루었다.

1932 4월에 기독교의 복음이 전파되면서 O. M. S 여선교사 데이트(Miss A. S. Tate) 선교사의 지도 하에 충남 예산에 예산성결교회가 설립되었다.

어느날 셋째인 오영석 군이 갑자기 설사를 시작하더니 동리에서 유명하다는 무당을 불러다가 굿을 했지만 계속해서 계속 설사는 멈추지 않고 계속 진행되었다. 다시 한약방에 가서 약을 지어와 한약을 계속 먹었지만 아무런 효과도 보지를 못했다.

무렵 둘째 딸인 순석 양이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였다. 이때 순석 양이 다니는 교회의 전도사를 초청하여 예배를 드렸는데 기도회를 갖은 즉시 설사가 멈추고 건강을 되찾게 되었다. 일로 인하여 하나님을 믿는 가정으로 전환하면서 식구가 교회에 출석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얼마 가족들이 중국 동북지역인 만주(滿洲) 길림(吉林省)으로 이주를 하게 되었다. 그의 아버지와 아들은 목수 일을 하면서 교회당을 건축하게 되고, 교회가 없자, 그의 가정을 중심해서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양성교회를 설립하게 되었다.

이때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하여 다음과 같은 찬송가를 들고 힘차게 부르게 되었다. 가사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 하늘에 가득 영광의 - 하나님 땅에 충만한 존귀하신 하나님 생명과 빛으로 지혜와 권능으로 언제나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 성부와 성자와 성령 구원의 하나님.

2 : 사랑이 넘치는 자비하신 하나님 은혜가 풍성한 구원의 하나님 참회의 심령에 평안을 주옵시고 죄악의 허물을 용서하여 주소서 찬송과 영광과 생명의 구원의 하나님.

3 : 연약한 심령을 굳게 세워 주시고 우둔한 마음을 지혜롭게 하시고 주의 받들어 참되게 살아가며 말씀 따라 용감하게 하소서.

4 : 앞에 나올 우리 맘이 기쁘고 말씀 되어 희망 솟아오른다 고난도 슬픔도 이기게 하옵시고 영원에 잇대어 살아가게 하소서.

후렴 : 우리 예배를 받아 주시옵소서 아멘.  

  무렵 만주지역을 떠돌아다니던 마적단(馬賊團)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약탈하기 시작하였는데 주로 가축을 빼앗아 약탈해 갔었다. 그런데 어느 그의 가정에서 귀하게 키우고 있던 황소가 있었는데 갑자기 사라졌고 황소를 찾기 위해서 마을과 이웃 마을까지 찾아 다녔지만 헛수고였다.

그렇게 찾느라고 애를 썼는데 뜻하지 않게 22 만에 황소가 집으로 돌아오는 기적이 일어나고 말았다. 이때 마을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 가정이어서 하나님이 돌려 보내주었다고 한결같이 말하였다. 사건은 하나님이 살아있음을 보여 주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1945 8 15 해방을 맞이하자 조선 땅에 주둔했던 일본 군인이 무장해제를 당하고 일본으로 돌아가는 귀국길에 오르게 되었다. 이때 해방을 맞이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해방을 맞이했다고 좋아들 하며 평소 부르고 싶었던 애국가를 힘껏 부르기도 하였다.

  오흥목 장로는 후에 삽교교회를 개척하고 교회가 성장하자 두곡교회를 개척하는데 앞장서기도 하였고 교회를 개척할 친히 목수 일을 담당하였다. 이후 교회가 완성되자 지방회의 허락을 받아 장로를 선출하였는데 이때 장로로 선임을 받게 되었다.

당시 삽교교회 치리목사인 허경삼 원로목사는 오흥목 장로에 대하여온유와 겸손, 사랑과 진실, 희생과 충성으로 옷을 입은 이라고 평하기도 하였다.

오흥목 장로는 1963 70세의 나이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늘나라로 가셨으며, 이때 그의 공로를 인정하여  지방회가 주동이 되어 장례식을 거행하였다. 장례식에는 그의 사망을 안타깝게 여긴 많은 사람들이 조문을 하였다고 한다. 가족은 3 1녀를 두었으며, 자녀 3 오영석 목사는 미국 L.A. 시온교회의 원로 목사로 시무하였다.

김수진 목사

<한국교회역사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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