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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3.맹인 백사겸 전도인
[[제1505호]  2016년 5월  21일]

백사겸(白士兼, 1862-1914?) 평안북도 평원군 순안면 성주동에서 백씨 가문의 둘째 아들로 출생하였다. 가장인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으며, 1871 9세에 시력을 잃고 소경이 되고 말았다. 1년이 지나자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 하루아침에 고아가 되어 다니면서 밥을 얻어먹으면서 생명을 연명해 갔다. 그러다가 형님이 청년이 되어 남의 머슴으로 들어가면서 형님의 도움으로 생명을 이어 갈수 있었다.

그는 15세에 형님이 벌어 돈으로 복술(卜術)집에 가서 복술을 배워 앞으로 살아갈 길을 준비해 있었다. 그는 대나무 지팡이 하나를 의지하며 점을 치면서 돈을 벌기 시작하였다. 18세가 되자 중매로 결혼을 하여 아들 둘을 낳아 가장을 이루었다.

그러나 복술이 사람들을 속이는 사기라는 것을 알면서도 먹고살기 위해 양심을 속이는 자신에 대해서 회의를 느끼고 백일 기도회를 시작하였다. 기도회가 끝나는 기독교인 매서인 김재옥 씨가 찾아와 전도지를 건네며 읽어 보라고 권하였고 부인이 읽어주는 전도지 내용을 통해, 그는 한없이 울면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다.

그는 자신에게 전도한 김재옥 씨를 따라 교회에 가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없이 통곡 하였다고 한다. 집에 돌아와서 복술 도구들을 모두 불로 태우고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는 혼자 집에 있을 강도들이 침입하여 칼을 들이대자 재산은 남을 속이고 모은 재산이니 가져 가라 하며 몽땅 주어 보낸 , 그는 시원한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였다.

그는 부인이 읽어 주는 성경을 하루에 장씩 모두 암기하고, 찬송가도 열심히 불렀다고 한다. 그가 제일 좋아하는 찬송가인사랑의 하나님  가사를 소개 하면 다음과 같다.

 1 : 사랑의 하나님 귀하신 이름은 / 나이 비록 어려도 있어요.

2 : 천하 만물은 그림책 같으니 / 고은 그림 보아서 사랑 알아요.

3 : 고운 화초밭 오다 개이면 / 하늘에 뻗친 무지개 아름다워요.

 4 : 푸른 하늘의 수많은 별들도 / 하나님의 사랑을 속삭이지요.

백사겸의 별명은걸어 다니는 복음서였는데 그의 신앙의 열정이 어떠 했는가를 말해 주고 있다. 그는 양식이 떨어지면 떳떳하게 구걸하면서 복음 전도자로 살기로 후에 집을 떠나 아내가 남매를 업고 데리고 가고, 그는 지팡이를 짚고 걸어서 정처 없이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하기도 하였다. 개성교회가 건축 중임을 알고, 가지고 있던 부인의 순금 반지와 비녀를 교회에 헌금하고 떠난 일도 있었다.

그가 전도할 때는 강한 설교가 쏟아져 은혜를 받고 예수님을 역사가 일어나기도 하였다. 때로는 난폭한 사람을 만나 매를 맞기도 했지만, 어느 곳에서 때린 사람이 그날 급사해서 사람들이 그를 무서워하고 피하다가 교회에 찾아가  등록을 하고 예수님을 믿는 일이 여기저기서 일어나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가 가는 곳마다 소문을 듣고 신자들이 밥상을 준비했다가 대접을 했던 일도 있었다.

그는 교회마다 찾아다니며 무보수로 전도부흥회를 인도하여 사람들이 회개하고 거듭나는 기적이 나타나 교회가 부흥하고 개척되기도  하였다. 그는 철원지방을 비롯해서 김화 지방, 예수 믿는 도시로 소문난 평양 지방의 여러 교회에서 부흥사로 초청을 받고 열심히 인도했다. 여기에 강원도 북부와 고양, 파주, 개성 경기 북부와 평양에 이르기까지 다니며 복음을 전하여 많은 교회를 세우기도 하였다. 그가 80세가 1938년에 박소천 작가가 그의 전기 <숨은 보배> 출판하기도 하였으며, 그의 장남 백남석은 미국 유학 귀국하여 연세대 교수를 지냈고 차남 백남현은 부친처럼 신실한 신앙인으로 살았다.

이처럼 백사겸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자신도 복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의 후손들이 복을 받고 살았으며 예수 믿는 일이 얼마나 귀한 것을 우리들로 하여금 다시 생각할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만일 맹인 백사겸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지 않았다면 그의 삶이 어떻게 되었을까? 여기에 그가 세상을 떠났을 그가 어디로 갔을까? 땅에 때어나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 그의 삶을 생각해 보면 이상 축복은 없었으리라고 생각이 되어 진다. 이러한 일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주께서 주신 믿음을 믿지 않는 형제들에게 전하는 전도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한다.

김수진 목사

<한국교회역사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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