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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1.독립운동가 우 덕 순 장로
[[제1561호]  2017년 8월  12일]

우덕순(禹德淳, 1876-1950)  충청북도 제천에서 출생하였다. 시골에서 농사일을 하면서 지내다가 어느날 친구의 말을 듣고 여비만 겨우 챙겨 무조건 서울로 상경하였다. 서울에 자리를 잡은 우덕순은 일제의 통감정치(統監政治) 비분강개하여 친구의 도움으로 독립협회라는 애국단체에 가입하고 활동하였다. 그러나 단체는 해산 당하였고 이후 서울 상동교회 내의 청년회에 소속되면서 열심히 교회에 다니게 되었다.

1905 일제에 의해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국내에서는 활동할 여지가 없음을 깨닫고 해외로 망명해 국권 회복을 위한 투쟁을 결심하고 하나님께 기도를 하였다.

그해 겨울 칠순의 노모와 처자식을 남겨두고 시베리아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하였다. 날을 두고 고생하면서 목적지에 도착한 그는 동지들의 재정 지원으로 1906 계동학교(啓東學校) 설립하고 청년교육 사업에 헌신하는 한편, 북간도 관리사 이범윤 등과 연락을 취하여 의병 1 명을 모집하여 김영준 씨를 교관으로 초청하고 의병을 훈련시키기 위해 연추에 훈련소를 만들고 항일 전투력에 힘을 쏟았다.

1908 여름에 대한의군 참모총장 안중근 장군이 이끄는 독립군에 가담하여 국내로 침투하였다. 침투하여 함경북도 경흥 지방, 회령 지방에 일본 군영을 습격하다가 체포되어 7 형을 선고받고 경흥 감옥소에서 복역하다가 감시병의 눈을 피해 탈출에 성공하였다.

이듬해인 1909 봄에는 다시 노령 연추에서 안중근, 김기열 등과 함께 단지동맹(斷指同盟) 결성하여 결사보국(決死報國) 맹세하였으며, 이름을 연준으로 개명하고 담배 행상을 하면서 블라디보스토크 각지를 왕래하며 <대동공보=大東共報, 교민단체인 한국 국민회가 발행한 신문으로 독립의식을 고취함> 모금 동지 간의 연락을 담당했다. 그해 10 26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 재무상 코코프체프와 회담하기 위해 만주 하얼빈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안중근, 조도선, 유동하 등과 함께 거사를 계획하였다. 거사 직전에 하얼빈 김성박의 집에서 그와 안중근은 함께 결의를 다지며 시를 지었다. 먼저 안중근 9 절구 한시를 지었는데 이를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장부가 세상에 있음이여 뜻이 크도다/ 때가 영웅을 만듦이여 영웅이 때를 만들도다/ 영웅이 세상을 봄이여 어느 때에 뜻을 이룰 것인가/ 동풍이 점점 차가와 짐이여 뜻한 바를 필히 이룰 지니라/ 쥐새끼들이 훔쳐봄이여 어쩌다 이런 운명이 되었는고/ 일이 지경에 이르렀음이여 때와 형편이 확연하구나/ 동포여 동포여 대업을 속히 이룰지어다/ 만세 만세 대한 독립만세/ 만세 만세 대한 독립만세.

  이어서 우덕순은 한글 4. 4 민요 형태의 시조를 지었는데 시에서 그의 민족주의 신앙의 실체를 읽을 있다.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너를 한번 만나고자 일평생에 원했지만/ 하상견지(何相見之)만야(晩也)런고  너를 한번 만나려고/ 수륙으로 거리를 혹은 윤선 혹은 화차/ 천신만고 거듭하야 노청양지(露淸兩地) 지날 / 이하 생략.

 거사를 확실히 하기 위해 채가구(蔡家溝)역과 하얼빈역을 거사 장소로 정한 사람은 정차 가능성이 높은 하얼빈역으로 서로 가겠다고 고집을 피우다가 결국은 우덕순이 채가구역에, 안중근이 하얼빈역에 대기하기로 했다. 이토 히로부미를 태운 기차가 채가구역을 지나침으로써 이토 히로부미 저격은 안중근에 의해 행해졌던 것이다. 안중근이 현장에서 러시아 헌병에 체포된   소식을 듣고대한민국 만세 부르다가 역시 러시아 헌병 20 명에게 체포를 당했으며, 국경지방 재판소에서 수일간 심문을 받은 일본 총영사관 경찰서로 인계되었다.

1910 2 6회에 걸친 공판을 마치고 결심공판에서 1 6개월 징역형을 언도 받았다. 9 여순 감옥에서 경성 감옥으로 압송되어 수감 탈출 사건이 탄로나 사형 언도를 받았다가 일본 다이쇼(大正) 즉위로 특사령을 받고 서울 서대문 형무소로 압송되었다. 1931 만주사변으로 일제의 세력이 만주 전역으로 뻗쳤을 , 그는 요시찰 인물로 감시를 받고 차례 투옥을 당했으나 굴하지 않고 교회 장로로서 우리말 보존에 헌신해 오다가 1945 해방과 함께 석방 출감되어 중국 흑룡강성 한인인민위원회 위원장에 추대를 받았다. 그는 해방과 함께 출감이 되었으며, 귀국 1949 대한국민당 최고위원회에 피선되어 배은희, 신익희, 윤치영 등과 함께 건국사업에 투신하였으며, 1950 9 26 공산군에 의해 참살 당했다. 이후 1962 3 정부로부터 건국공로훈장을 수여 받았다.

김수진 목사

<한국교회역사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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