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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령이 가난한 자는
[[제1597호]  2018년 6월  2일]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 임이요.” 기독교 사회 안에서나 밖에서나 가장 많이 인용하는 성경말씀인데 제일 어려운 명제이기도 하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실은 마음이 넉넉한 자요 욕심이 없는 자요 이타심이 강한 자요 물질로도 베풀기를 즐겨 한다. 그런데 부자 나사로는 그 반대의 인간형으로 등장하니 이 둘 사이에서 우리는 어디쯤 와 있는지 항상 궁금하다.

유소년기에 집이 종로구 가회동에 있어서 주변에 부자집들이 많았다. 재동학교 지나 넓은 골목길 안에 당대 최고의 부호 박흥식씨 저택이 있었고 큰길로 죽 올라오면 606호라는 이름의 약으로 거부가 된 제약회사 사장의 양옥이 있었다. 그 집 아이와 겉이 오돌토돌한 흰 고무공 같은 것을 가지고 놀았는데 지금 보니 골프공이었다. 우리 집은 작았지만 바로 앞 집은 윤보선 씨의 친제 윤완선 씨 집으로 뜰이 작은 공원 같았다.

전쟁 중에 지방으로 내려와 중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생활을 위해 서울로 올라왔지만 전후의 대한민국에 빈곤은 널려있었어도 부자라는 존재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가정교사하는 친구들이 잘사는 집에 입주하면 놀러 가서 좀 여유 있는 생활의 모습을 훔쳐볼 수 있었으나 영화에 나오는 서양 부자들에는 까마득히 먼 것이었다. 그런 시절을 지나 이 땅에 산업화의 시대가 열렸고 부자들이 다시 생겨났다.

맨 먼저 우리가 알게 된 이름은 이병철이었다. 신문사 경제부장이 60년대 후반인 당시 삼성물산 이회장의 재산이 7천만불쯤 된다고 일러주어 입이 딱 벌어진 기억이 난다. 박흥식 씨는 사라지고 새로운 재벌들이 하나 둘씩 등장했는데 종합무역상사라는 이름으로 국가경제 발전에 중추적 역할을 하는 선한 존재로서 국민들에게 인식되었다. 소위 압축성장 시대에 고학력의 인재들이 이들 대기업에 뛰어들었고 정·관계의 엘리트층과 연결되어 이 나라의 상류층을 형성했다.

그로부터 반세기를 지나며 세상이 이상하게 변했다. ‘깜도 아닌 것들의 세상’어느 인터넷신문 유명 칼럼의 제목이다. 깜도 아닌 부류에 예시되는 인물들에는 항공사 회장부인뿐만 아니라 험구로 유명한 여당대표, 승용차 뒷좌석에서 발을 올려 운전기사의 머리를 친 건설회사 사장도 등장한다. 전쟁의 파괴와 빈곤으로부터 오늘의 풍요에 이르는 변화에 수십년이 걸렸음에도 사회적 책임감, 노블레스 오블리제 같은 것이 자취를 감춘 것은 웬일인가. 정신 못 차린 졸부 자식들만의 탓인가.

처참한 대량학살의 기억이 식기도 전에 혁명에 혁명이 거듭되고, 독재, 좀 낫게 말해 권위주의 정권을 민주운동가들이 몰아내고 또 그들을 보수라는 이름의 반동세력이 밀어내는 엎치락뒤치락의 정치가 국민을 등에 업고 돌아가더니 이젠 새로 바뀐 정부가 응원하는 가운데 온통 부자 타도의 시대가 된 느낌이다. 부패는 정치구호인데 부자 혐오로 동력을 보충하려 하면 실패하기 쉽다.  

어렸을 적에 부자는 보기 좋았지만 웬일인지 부자가 돼야겠다는 맘은 없었다. 부자가 되려고 일생 각고의 노력을 해도 그 중 일부만 부자의 반열에 오른다. 원래 마음이 가난한 자는 부를 하나님 주신 축복으로 알고 베풀기에 힘쓰는데 교만과 부가 결합하면 최악의 인간으로 타락한다. 오늘날 일어나는 추한 사건들은 가난한 심령을 원하시는 하나님의 특강이라 생각된다.

김명식 장로<소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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