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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흥문화(주) 박경진 회장(꽃재감리교회 장로)
[[제1568호]  2017년 10월  21일]

하나님의 특별한 선택으로 갖게 된 믿음, 가장 감사하고 놀라운 일

장애와 가난 속에서 만난 예수님의 사랑 이웃과도 나누고파

 

    만약 곧 예수님을 만나 뵙게 된다면

“2년 전 병원 검사에서 혈액종양이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아 하나님께서 오라고 하시나보다그러니 부르실 때 정리하고 가는 게 저의 할 일이라고 생각했죠.”

진흥캘린더, 진흥팬시, 진흥천사닷컴, 도서출판 진흥, ()진흥투어, 크리스천 리빙 등 사원 100여 명 규모의 진흥문화()를 이끌어 온 박경진 회장은 건강악화와 함께 찾아온 심경변화를 밝히며 사업적으로나 교계에서나 활동을 줄여가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130년의 선교 역사가 담긴 한국기독교역사문화관 사업이 가장 걱정됐어요. 누가 이것을 책임 있게 맡아줄까 고민하다가 모교인 협성대학교에 기증키로 결정했습니다. 박민용 총장님과 상의해 순차적으로 인수와 오픈을 진행했죠. 오는 112일을 오픈 예정일로 결정하고 소장 중이었던 그림들까지 여타의 교회나 학교로 기증하기로 결정한 후 다시 병원을 찾았습니다. 한데 심하면 백혈병으로 악화될 수 있다던 병세가 호전됐고 처방약을 받아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판정을 받았어요.”

박경진 회장은 일선에서 물러나고자 했지만 그를 필요로 하는 곳은 아직 많다. ‘토론토대학교 한국학과후원회의 조직이 태동이 되어 외교부로부터 법인설립을 인정받고 발족한 ()한카문화교류협회에서는 2, 7대 회장을 지냈으며, 한국 캐나다 수교 40주년과 50주년 기념대회를 성황리에 치러 캐나다연방정부 연아마틴 상원위원 감사패를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지난 3309대 회장으로 취임해 55주년 행사를 지휘해줄 것을 요청받았으며 현재 발로 뛰며 행사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또 그는 현재 ()한국미래포럼의 상임회장직을 맡고 있다. 지난 200670만 회원으로 발기해, 2008년 행정자치부 장관의 허가를 얻은 비영리법인 애국시민단체인 미래포럼은 현재 경직된 활동과 자금적인 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나 박 회장은 한 달에 한 번 있는 기도회를 이어가며 명맥을 유지하려고 고군분투 중이라고 밝혔다.

 

삶에 새겨진 생생한 믿음의 흔적들

박경진 회장은 194063일 충남 서산, 빈농의 10남매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왼쪽 눈이 감긴 장애를 안고 태어나 외로운 어린 시절은 보내다가, 1.4후퇴가 일어난 초등학교 2학년 때 피난민들이 그가 다니던 학교에서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고 함께 참여하면서 예수를 믿게 되었다.

고향인 충남 서산의 성현교회는 초가집에서 시작됐는데, 그 교회의 역사가 제 신앙의 역사가 됐어요. 신기하고 재미난 일들도 많았지요. 어느 날 면 내의 한 부자가 예수를 믿게 됐는데, 바로 담배부터 모두 끊고 우리 가족은 이번 주일부터 교회를 간다해서 그 주일 일개 부대가 예배에 참석하는 진풍경을 목격했죠. 그 중엔 제 동창과 그 집 머슴 둘도 있었습니다. 그 부자는 자기 재산의 십일조를 금액으로 환산해 옥전옥답(沃田沃畓)을 교회에 헌금했고 그것은 금세 팔려 예배당을 지을 수 있게 되었지요.”

그는 그의 나이 스물둘에 이마와 눈 쪽에 피부이식을 받아 감겨있던 왼쪽 눈을 뜨게 되었으며 스물일곱에 군으로 늦은 입대를 하게 되었다. 이미 가정을 꾸렸고 아이도 있었지만, 영장이 나온 것은 군대를 가라는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신체검사 때 시력 검사판을 외워서 통과 판정을 받아 군 생활을 시작했다는 웃지 못할 뒷얘기도 있었다.

훈련소에서의 첫 날, 첫 배식을 받았을 때, 내무반장이 3분 안에 먹고 식기까지 씻어놓지 않으면 무조건 얼차려라고 명령했어요. 그런데 뜬금없이 시작 명령이 떨어지기 전에 사병들 중 기독교인이 있으면 식사기도를 해보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번쩍 손을 들고 그곳에 모인 사병들의 평안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이후 훈련기간 6주 동안 그 내무반장은 저에게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남선교회 집회에서 내무반장을 알고 있는 한 장로를 만났고 그가 4-5년 전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요. 그렇지만 저를 놀라게 했던 건 그가 예수를 믿지 않았던 사람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내무반장은 왜 저에게 기도를 시켰고 왜 한 번도 저를 때리지 않았던 걸까요? 어쨌든 그 한 번의 기도로 저는 36개월의 복역 기간 동안 매 한 번 안 맞으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했고 이후 대대병력을 이끌고 주일날 교회에 나가고 중대별로 금식참여를 유도해서 그 쌀로 불우사병을 돕는 일도 하였지요.”

 

가난과 장애의 삶에서 믿음으로 진흥(振興)

196911월 박경진 회장은 아내와 어린 남매와 함께 서울 난곡동 철거민 촌으로 상경해 10여 년 동안 25번의 이사를 다니며 가난의 길을 걸었다. 그가 출석하던 교회의 담임목사는 그의 어려운 형편을 보며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보자며 목회자의 길을 권유했다.

야간신학교에 입학해 주경야독했어요. 그 와중에도 먹고살기 위해 온갖 일을 했지요. 한 날은 문래동을 지나가는데 캘린더 외무사업 모집이라고 쓰여 있기에, 그곳에 들어가 사장의 설명을 듣고 바로 샘플을 받았습니다. 집에 가는 길에 들른 약국에서 그 샘플을 설명해 200개의 캘린더를 주문받았어요. ‘, 이익이 적든 많든 간에 이것밖에 할 게 없겠구나. 천직이다싶었습니다. 그 달 제가 남긴 영업 이익은 쌀 20가마에 달했죠. 그 때부터 장사나 사무 일을 하는 중에도 외무사원 일과 신학공부를 함께 했습니다. 1970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고 1976년에 지금의 진흥문화사를 설립했지요.”

그는 협성신학교를 졸업하던 해인 1982, 새로운 인쇄문화사업을 배우기 위해 일본을 방문하여 큰 도전을 받았다. 거기서 인쇄업의 비전을 품고 그 이듬해 유럽의 기독교문화를 견학했다. 박 회장은 당시 빚 얻는 걸 마다치 않고 기꺼이 여행길에 올랐는데, 해외여행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던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일이었으나, 그 만큼의 가치가 있었다고 한다.

마음속에 뜨거운 것이 차올랐습니다. 유럽의 찬란한 기독교 문화를 보며 한국의 기독 문화는 어떻게 나아가야 하나 고민했습니다. 그 고민의 결과로 위대한 생애라는 기독교 캘린더가 탄생했고, 그 해 50만부가 팔리며 대성공을 거뒀죠. 목회자가 되기 위해 신학교에 입학했지만 졸업하던 그 해부터 사업의 문이 열리면서 동기들과는 다른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1984년부터 급성장의 계기를 맞게 된 진흥문화사는 1989년에는 700여 평의 사옥 및 진흥빌딩 등을 건축하고 사원 100여 명의 규모로 성장했다. 여기에 박 회장 슬하의 삼남매도 든든한 사업 파트너가 되어주었다. 큰 딸은 회사건물 1층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으며 큰 아들은 진흥문화주식회사 사장, 작은아들은 온라인, 오프라인의 기독교백화점을 운영 중이다. 이렇듯 다복한 가정과 경제적, 사회적 성공 이후, 박경진 회장은 지금의 내 모습은 굳건한 신앙과 좋은 사람들의 도움 때문이라고 믿는다라는 그의 고백처럼 나눔의 삶을 살기로 다짐했다.

하나님의 특별한 선택으로 예수를 믿게 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하고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복음은 가난과 장애로 어렵던 제 삶에 하면 된다는 믿음도 선물로 가져왔지요. 많은 사람들과 이 믿음을, 그리고 이 믿음의 열매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진흥문화사는 창사 20주년이던 1996년부터, 외국에 입양된 후 한 번도 한국을 방문해 보지 못한 해외입양아들을 2주간 한국에 초청하는 해외입양아초청 모국방문행사를 시작해 지금까지 21번째 행사를 이어오고 있다. 2000년부터 시작된 진흥장학회는 2013년 박경진 회장이 사재 10억 원을 출연하면서 ()진흥장학재단으로 발전했으며 매년 고등학생 60여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개혁, 스스로를 돌아보고 회개할 때

현재 인쇄시장은 어려움에 빠져있다. 나름 탄탄한 시설과 규모를 갖췄던 회사가 하루아침에 문을 닫는가 하면, 두 회사가 합병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캘린더 전문회사 중에서도 장소, 인원, 시설이 온전히 갖춰진 보기 드문 탄탄한 업체인 진흥문화사 역시 이 같은 현실은 피하기 어렵다.

누구한테 이야기도 하기 전에, 제 마음 속에는 종종 불안감이 몰려오는 환경에 처해 있습니다. 저희 세대와 젊은 세대 사이에는 소통이 끊기고 기업들은 예전처럼 유지, 발전이 어렵게 됐습니다. 우리에게는 신앙이 있으니 하나님께서 함께 해달라고 기도할 뿐이지요.”

박경진 회장은 여러모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나라의 현실 앞에 크리스천이 할 일은 오직 기도뿐이라고 결론지었다. 더불어 올해로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한 만큼 한국교회가 먼저 깨어서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먼저 제가 감히 한국교회의 개선방향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을까 싶습니다. 500주년이면 500년이 흘렀다는 거네요. 500년의 세월 가운데 이토록 물질문명의 풍성함이 넘치는 때가 있었을까요? 그런데 그런 축복받은 환경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자화상은 어떠한가 생각해 봅니다. 저는 지금처럼 사람의 생각이 타락하고 하나님과 거리가 먼 시대가 있었을까 싶습니다. 육신적으로는 풍부에 처했지만, 영혼은 가난하고 비참했던 이런 시대가 지난 500년 동안 또 있었을까요? 이런 시대일수록 교회마다 성도마다 깨어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회개하며 다시 복음 앞에 서야 합니다.”

/윤미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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